인공지능(AI)이 바꾸는 재판③
사법부 AI 예산 112억원 ‘분산투자’
재판·양형지원 이원화 구조로 추진
수사기관 대비 격차 확대·대응 한계
수사 단계에서는 인공지능(AI) 도입을 넘어 고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재판 단계는 여전히 ‘분산 투자’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기관은 수십억~수백억원 단위로 AI 인프라를 통합 구축하는 반면, 사법부는 기능별로 예산이 나뉘어 대응 체계가 분산돼 있다는 것이다. 수사 단계에서 축적된 정보와 분석 역량이 재판 단계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재판지원 AI를 별도 사업이 아닌 기존 정보화사업 안에 포함해 추진하고 있다. 재판지원 AI(47억원)는 ‘2026년도 사법부 예산’의 ‘사법업무 전산화’ 항목 내 기능 단위로 운영되며,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 구축, 시스템 운영이 하나의 예산 체계 안에 묶여 있는 구조다.
반면 형사재판·양형 지원 AI는 ‘2026년 사법부 정보화사업 계획’에 따라 별도의 플랫폼 구축 사업으로 추진되며, 1차년도 예산은 65억7800만원 규모로 편성됐다. 두 사업을 합산하면 사법부 AI 예산은 112억원 수준이다. 재판지원 AI는 전체 사법부 예산 2조5001억원의 0.2%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동일한 AI라도 재판지원과 양형 지원이 분리된 구조로 추진되면서 사법부 AI 예산은 단일 사업처럼 집계되지 않는다. 전산화 기능과 별도 플랫폼 구축 사업이 혼재된 형태로, 예산 체계 자체가 분산돼 있는 구조다.
이 같은 구조는 수사기관과 대비된다. 법무부는 ‘2026년도 예산’에서 ‘범법자 행동분석 기반 AI 법무행정 시스템 구축’에 61억3100만원, AI 기반 위험인물 입국 차단 및 민원 상담 시스템에 29억원을 반영했다. 경찰청 역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마약채널 탐지(7억2000만원), 딥페이크 분석(7억5000만원), AI 기반 치안 시스템 고도화(68억6000만원) 등 개별 사업을 다수 편성했으며, 디지털 치안 연구개발(R&D) 예산만도 약 682억원 규모에 이른다.
수사기관이 AI와 디지털 수사 인프라를 통합적으로 확장하며 수십억~수백억원 단위 투자를 이어가는 것과 달리, 사법부는 재판지원과 양형 지원이 분리된 구조로 예산이 편성돼 있다. 이로 인해 수사 단계에서 축적된 정보와 분석 역량이 재판 단계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재판지원 AI는 재판 과정에서 필요한 법률정보 리서치와 참고자료 검토를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판례 검색과 요약, 쟁점 정리 등 재판 준비 단계에 활용된다”며 “인공지능의 답변은 참고자료일 뿐이며 최종 판단과 책임은 법관에게 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재판 단계의 디지털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이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 보고한 ‘2026년도 사법부 예산안 검토보고서’는 “재판 단계의 디지털 대응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사법부의 예산 구조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형사재판과 양형 판단을 지원하는 AI는 재판지원 AI보다 한 단계 나아간 영역으로 평가된다. 다만 형량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헌법적·기술적 논쟁이 뒤따르고 있으며, 이는 향후 검토 과제로 남아 있다.
법조계에서는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수사 단계에서 AI 활용이 확대되면서 사건 분석과 정보 축적이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재판 단계에서는 관련 지원 체계가 제한적인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슬아 변호사(법무법인 대진)는 “수사 단계에서는 AI와 데이터 분석을 적극 활용하는 반면, 재판 단계에서는 활용이 제한적인 구조가 이어질 경우 정보 접근과 대응 역량에서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방어권 측면에서도 제도적 균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법부 내부에서도 변화 가능성은 열려 있다. 재판지원 AI는 지능형 검색과 자료 요약 중심의 1단계를 거쳐, 현재 쟁점 분석과 자료 정리 기능을 포함한 2단계로 확장되고 있으며, 향후 사건 분석과 검토보고서 작성 지원까지 포함한 4단계 고도화가 추진되고 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재판지원 AI는 판단을 대신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재판 준비를 지원하는 도구”라며 “기능 확대에 맞춰 예산과 사업 구조도 단계적으로 조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AI 도입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다. 수사와 재판 사이의 기술 격차가 확대될 경우 사법 절차 전반의 균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부 AI는 확대 이전에 체계 정비가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