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쇠구슬 충돌’로 플라스틱 만든다

2026-05-10 15:53:30 게재

용매 없이 고분자 정밀 합성·원료 회수 가능성 확인

기계적 힘으로 중합·분해 제어…순환형 소재 기술 주목

국내 연구진이 플라스틱을 만들 때 쓰이는 유기용매 없이도 고분자를 정밀하게 합성하고, 다시 원료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화학 반응에 열이나 용매 대신 ‘기계적 충돌’을 활용한 방식으로, 친환경 플라스틱 생산과 재활용 기술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시된다.

연세대학교 화학과 김병수 교수 연구팀은 쇠구슬 충돌로 화학 반응을 유도하는 기계화학(Mechanochemistry) 기반 고분자 합성 기술을 개발했다고 10일 밝혔다.

기존 플라스틱과 기능성 고분자 생산은 대부분 유기용매와 복잡한 공정을 필요로 한다. 특히 원하는 길이와 구조를 가진 고분자를 만드는 정밀 중합 기술은 고성능 소재 개발 핵심으로 꼽히지만, 고체 상태에서 이를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연구팀은 회전하는 용기 안에서 쇠구슬이 반복적으로 충돌하는 ‘볼밀링(ball milling)’ 환경에 주목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계적 힘만으로도 화학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연구팀은 원자 이동 라디칼 중합(ATRP) 방식을 적용해 다양한 메타크릴레이트 기반 단량체를 실험한 결과, 용매 없이도 폴리메타크릴레이트(PMA) 계열 고분자를 정밀하게 합성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연구팀은 단량체 구조에 따라 고분자가 생성되는 방식뿐 아니라 분해되는 경로까지 달라진다는 점을 규명했다.

부피가 큰 치환기를 가진 고분자에서는 주사슬보다 치환기 부위 절단이 상대적으로 우세하게 나타났으며, 이런 특성은 계산화학 기반 시뮬레이션으로도 확인됐다.

이번 연구 특징은 ‘합성’과 ‘분해’를 하나의 기계화학 반응 안에서 동시에 분석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질량분석과 계산화학 분석을 통해 고분자의 어느 부분이 어떤 방식으로 끊어지는지 확인했고, 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힘-유도 분해 경로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또 단순히 플라스틱을 잘게 부수는 수준이 아니라, 기계적 힘만으로 고분자가 다시 원래 단량체 상태로 되돌아가는 ‘해중합’ 가능성도 확인했다. 향후 플라스틱 생산과 재활용, 원료 회수를 하나의 공정으로 연결하는 순환형 소재 기술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기존 ‘소재 생산 중심’ 고분자 기술에서 나아가, 생성과 분해를 함께 설계하는 방향으로 전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김병수 교수는 “기계적 힘만으로 고분자를 정밀하게 합성하고 분해 거동까지 체계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향후 용매 사용을 줄인 친환경 고분자 합성과 순환형 플라스틱 소재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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