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개헌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면
지난 1987년 개헌은 거리와 광장의 민주화 요구가 임계점을 넘어서며 정치권의 변화를 이끌어낸 결과였다. ‘직선제 쟁취’라는 선명한 목표 아래 응축된 시민사회의 에너지는 9차 개헌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당시의 개헌이 ‘국민의 명령’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개헌 내용이 국민들이 열망했던 주권의 실질적 회복과 직접적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9년이 지난 2026년 5월, 헌법전문 개정과 계엄요건 강화를 골자로 한 개헌 시도는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야당의 반대 때문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번 개헌안이 국민의 목소리에 공명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2월 국회가 발표한 여론조사는 개헌을 향한 민심을 명확히 보여준다. 전체 응답자의 68.3%가 개헌에 찬성했고 그 이유로 ‘사회적 변화 및 새로운 문제에 대한 대응 필요성(70.4%)’을 꼽았다. 국민 대다수가 87년 체제의 노후화를 실감하며 이를 대체할 새로운 시대적 그릇을 원하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 추진된 의제는 국민의 실제 갈증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개헌 우선순위에서 ‘생명권·안전권·정보권 등 기본권 추가(35.1%)’와 ‘대통령 권한 및 권력구조 개편(26.0%)’에 대한 요구가 압도적이었다. 반면 이번 개헌의 핵심이었던 ‘전문 개정’은 8.3%에 그쳤다. 국민은 관념적인 문구 수정보다 삶을 규정하는 실질적 권리와 권력의 균형추를 바로잡는 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던 셈이다.
시기적 판단에서도 국민은 신중했다. 국민투표 시점으로 2026년 지방선거(34.9%)보다 2028년 총선(43.6%)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개헌이 특정 정국의 돌파구나 단기적 정치 이벤트로 소모되기보다 충분한 숙의를 거친 ‘질서 있는 개혁’이 되길 바라는 요구로 풀이된다.
결국 이번 개헌 좌절은 ‘무엇을, 언제,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정치권의 제안이 국민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결과다. 1987년의 성공은 반대세력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여론이 하나로 집중됐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시도는 기본권 확대나 구조적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하나의 흐름으로 모으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그렇다고 개헌의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론조사에서 보듯 헌법 개정을 향한 국민적 공감대는 여전히 확고하다. 다만 지금의 멈춤은 개헌이 정치적 수사가 아닌 국민의 실질적인 삶과 일치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개헌의 재점화 여부는 정치권의 전략이 아니라 국민이 우선순위로 꼽은 ‘기본권’과 ‘권력구조’에 대해 얼마나 냉철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