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쇼핑몰 변질 우려…미야코노조시에서 답을 찾다
일본 고향납세 1위 미야코노조시, ‘가성비’로 유혹, 기부액은 ‘육아복지’ 집중
박리다매·‘선택과 집중’ 승부수 통했다 … 젊은세대 중심 한해 1600가구 이주
한국, ‘세액공제 퍼주기’와 ‘천편일률 답례품’ 함몰 … 구조적 재정손실만 ↑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 4년 차를 맞아 2000억원대 시장을 바라보는 중대한 분수령에 섰다. 2023년 도입 당시 650억원이었던 기부금 규모는 2025년 1515억원으로 급증하며 양적 성장을 이뤘다.
정부는 기부 상한액을 기존 5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상향하고, 10만~20만원 이하 소액 기부자의 세액공제율을 기존 100%에서 140%까지(지방세 포함) 인상하는 파격적인 당근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지금처럼 지자체가 답례품 구성과 세제혜택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면, 이 제도는 지역 활성화라는 본래 취지를 잃고 ‘세금으로 운영되는 관제 온라인 쇼핑몰’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18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종학 선임연구위원은 ‘재정포럼’ 2026년 5월호를 통해 일본 미야코노조시(都城市)의 사례를 통해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도 ‘내실 있는 제설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선택과 집중’의 승부수 = 인구 16만명의 미야코노조시는 일본 고향납세 제도에서 ‘살아있는 신화’다. 2014년 이후 일본 전체 기부액 1위를 다섯 차례나 차지했다. 연간 기부액이 1500억원(약 170억엔)을 웃돈다. 우리나라 전체 기부금을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은 철저한 ‘마케팅적 역발상’이다. 이케다 다카히사 시장은 “모든 특산물을 홍보하려다가는 아무것도 알릴 수 없다”며 답례품 품목을 시의 대표 자산인 ‘소고기·돼지고기’와 ‘본격 소주’ 두 가지로 압축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지역 내 다른 업체들의 반발이라는 ‘공정성 논란’이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케다 시장은 “우리 시가 ‘고기와 소주의 도시’로 인식되는 것이 결국 전체 지역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며 생산자들을 설득했다.
특히 미야코노조시는 대량 공급을 통해 단가를 낮추는 ‘박리다매’ 전략을 취했다. 같은 금액을 기부했을 때 타 지자체보다 훨씬 풍성한 양의 고기를 제공, 기부자들 사이에서 ‘가성비 1등 도시’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했다. 인지도 상승은 곧 기부 확대로, 기부 확대는 지역 축산농가의 매출 증대와 고용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했다.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에 전략적 투자 = 미야코노조시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뼈아픈 교훈은 기부금을 사용하는 ‘전략적 투명성’에 있다. 대다수 한국 지자체가 기부금을 일반 예산처럼 섞어 쓰거나 모호한 기금 사업에 투입하는 것과 달리, 미야코노조시는 ‘당해 연도 기부금 전액 적립, 이듬해 전액 사용’ 원칙을 고수한다.
더 주목되는 점은 사용처의 집중도다. 미야코노조시는 기부금의 약 46%를 오직 ‘육아 및 교육 지원’에 쏟아붓는다. 보육료를 전면 무상화해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세대의 보육료를 시 예산으로 지원한다. 또 중학생 이하 자녀의 의료비를 전액 지원해 부담을 없앴다. 기부금제 활용에 디지털 전환(DX)을 결부했다.
‘IAM’ 앱을 도입해 기부 절차와 서류 처리를 원스톱으로 해결, 행정 비용은 줄이고 편의성은 극대화했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는 수치로 증명됐다. 2023년 한 해에만 1600여 가구가 미야코노조시로 이주했으며, 이 중 80% 이상이 20~40대 젊은 층이었다. 단순히 ‘돈을 걷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돈을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데 투자해 정주 인구를 늘리는 지방 소멸 대응의 정석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형 제도의 현주소 = 반면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는 여전히 ‘외형 경쟁’이라는 늪에 빠져 있다. 시행 초기 각 지자체는 지역적 특색이 없는 쌀, 김치, 지역사랑상품권 등 천편일률적인 답례품을 내세우며 기부자 유치에만 급급했다.
최근에는 제도개선이라는 명목하에 ‘인센티브 포퓰리즘’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26년부터 시행될 소액 기부 세액공제율 인상은 기부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이지만, 국가 전체 재정 관점에서는 심각한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액이 커질수록 국세 수입은 감소한다. 국세의 일정 비율(19.24%)을 재원으로 하는 지방교부세 역시 동반 감소하게 된다. 결국 지자체가 기부금을 10억원 걷더라도, 전체 지자체에 배분되는 교부세가 그 이상 줄어드는 ‘제 살 깎아먹기’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
외형 위주의 실적 압박도 문제다. 공무원들이 지인들에게 기부를 강요하는 이른바 ‘기부 할당’ 논란이 끊이지 않는 점도 문제다. 기부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기부자가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직 모집 액수로만 지자체 역량을 평가하는 문화가 포퓰리즘적 행정을 부추기고 있다.
◆‘세금 깎아주는 제도’ 벗어나야 = 원종학 연구위원은 “우리 지자체들이 미야코노조를 단순히 ‘기부금 대박 도시’로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기부금을 통해 ‘어떤 미래를 설계했는지’에 주목하자”고 강조한다.
미야코노조시의 성공은 △지자체장의 강력한 브랜드 리더십 △기부금 사용처의 명확한 공개를 통한 신뢰 구축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행정 효율화라는 삼박자가 맞물린 결과다.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가 지속 가능한 제도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세제혜택 강화나 고가 답례품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원 연구위원은 “내 기부금이 이 지역 아이들의 도서관을 짓고,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목적형 기부 사업’의 발굴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기부금을 얼마나 많이 걷느냐가 아니라, 걷힌 재원으로 지역의 미래 경쟁력을 어떻게 높였는지를 평가하는 질적 전환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