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지역간 교육격차 커져

2026-05-22 13:00:26 게재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 과목·교사 부족에 내신 불이익 우려 지적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 2년 차를 맞았지만 농산어촌과 소규모고교에서는 오히려 교육 기회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 선택권 확대를 목표로 도입된 제도가 학교 규모와 지역 여건에 따라 선택과목 개설과 대입 경쟁력 차이로 이어지면서 “고교학점제가 소규모고교 학생들에게 더 불리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학교 통폐합 흐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고교학점제가 사실상 “학교 규모에 따라 선택권 자체가 달라지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택과목 확대에 필요한 교원과 수업 기반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는데 제도만 먼저 시행되면서 소규모고교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21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고교학점제는 소규모고교의 교육 기회를 보장하고 있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경북·전남 지역 소규모고교는 과목 개설 수와 교사 수 모두 일반 규모 고교에 비해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학생 수 100명 이하 또는 6학급 이하 학교를 소규모고교로 정의해 분석했다. 조사 결과 고2 기준 평균 선택과목 개설 수는 서울이 40개였지만 경북은 30개, 전남은 27개에 그쳤다. 특히 같은 지역 안에서도 격차가 컸다. 경북 소규모고교의 평균 과목 개설 수는 20개였지만 일반 규모 고교는 32개였고, 전남 역시 소규모고교는 21개, 일반 규모 고교는 29개였다.

이는 단순 과목 수 차이를 넘어 학생 진로 선택 폭 자체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일반 규모 학교 학생들은 심화수학·융합과학·진로선택 과목 등을 비교적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지만 소규모고교 학생들은 학교에 개설된 제한적 과목 안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농산어촌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희망 과목이 개설되지 않아 진로와 무관한 과목을 선택하거나 공동교육과정 참여를 위해 장거리 이동을 반복하는 사례도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계에서는 “선택권 확대를 목표로 도입된 고교학점제가 실제로는 학교 규모에 따라 선택 가능한 과목 자체가 달라지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사 수 차이도 뚜렷했다. 경북 소규모고교 평균 교사 수는 12명으로 일반 규모 고교 40명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전남 역시 소규모고교는 평균 9명, 일반 규모 고교는 33명이었다.

교사 부족은 곧 선택과목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는 구조지만 소규모 학교에서는 개설 가능한 과목 자체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한 교사가 여러 과목을 맡는 ‘다과목 지도’와 전공이 아닌 과목을 가르치는 ‘상치교사’ 운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학생 선택 중심 수업보다 개설 가능한 과목을 맞추는 운영이 우선되는 상황”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선택권 확대를 위한 제도가 오히려 학교 현장에서는 “운영 가능한 과목 중심 체제”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특성화고에서는 실습교사 부족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용접 등 실습 중심 과목조차 교원 부족으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산업 현장 안전과 직결되는 실습 교육이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것은 학생 안전교육 측면에서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소규모고교의 공동교육과정·온라인학교 의존도 역시 높게 나타났다. 경북 소규모고교의 순회교사 운영 비율은 72.2%, 교외 공동교육과정 운영 비율은 44.4%에 달했다. 전남 역시 각각 58.8%, 41.2%로 높았다.

공동교육과정은 여러 학교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는 방식이고 온라인학교는 원격수업 형태로 운영된다. 하지만 학생 이동 부담과 시간표 충돌, 학습 관리 한계 등이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농산어촌 지역에서는 장거리 이동 자체가 학생 부담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입 내신 불이익 논란도 커지고 있다. 2028학년도부터 내신 5등급제가 적용되는 가운데 소규모 학교는 학생 수 자체가 적어 선택과목이 소인수 강좌로 쪼개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학생 수가 아예 없거나 극소수에 그칠 수 있다.

특히 공동교육과정과 온라인학교 성적은 절대평가로 처리되는 반면 일반 규모 학교는 교내 상대평가 선택과목 운영이 가능해 결과적으로 대입에서 또 다른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학생들이 적성과 진로보다 “내신에 유리한 과목” 위주로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학교 규모가 작을수록 고교학점제의 과목 선택권 보장 취지가 구현되기 어렵다”며 “향후 대입 경쟁에서도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교육계에서는 고교학점제가 지역·학교 규모별 교육격차를 오히려 구조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계 관계자는 “서울과 농산어촌 학교의 선택과목 구조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며 “제도 취지는 학생 선택권 확대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학교 규모에 따라 선택권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해 소규모고교 지원의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통한 행정·재정 지원 근거 신설과 함께 최소 필수교사 기준 마련, 최소 교사 미달 학교 순회교사 차출 금지, 교육청 직접 강사 인력풀 운영, 공동교육과정 통학 지원 체계 구축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교육계에서는 단순히 제도를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학교 규모별 교육 여건 차이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가 고교학점제 안착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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