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개혁보수 정치가 성장하려면
한동훈과 오세훈이 ‘가까스로’ 승리를 거두었다. 무소속 한동훈은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은 서울 시장 선거에서 각각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그 덕분에 보수정치 재편의 키맨과 차기 대선주자의 위상을 차지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들이 그런 위상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으나 다른 무엇보다도 ‘개혁보수의 이미지’를 보유한 덕분이다. 허상이든 아니든 개혁보수 이미지는 ‘윤 어게인’을 외치는 국민의힘(장동혁 대표체제)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을 찍을 의사가 없거나 미약한 유권자들이 그들에게 표를 줄 유인과 명분이다. 12.3 불법계엄사태 이후 개혁보수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이전보다 한층 더 커졌기에 특히 그렇다.
과거에는 개혁보수가 보수 내부의 한 분파 정도로 이해할 여지가 있었다면 12.3사태 이후에는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방어와도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다. 그 핵심에는 보수 주류 및 사회 일부의 극우화 경향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극우성향 집단은 강한 안보주의, 보수정당과의 친화성에 더해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낮은 신뢰를 특징으로 한다. 이런 점에서 개혁보수의 필요성은 단순한 보수 재편의 문제가 아니라 극우화된 보수와 민주주의 수호 보수 사이의 구획을 다시 세우는 문제다.
개혁보수의 성장과 성공을 이끌려면
하지만 개혁보수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커졌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성장과 성공의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개혁보수 이미지와 선거 승리 자체가 한동훈과 오세훈의 위상과 입지를 지속적으로 보장하고 강화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지에 부합하는 실체를 지녀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개혁보수를 성장과 성공의 길로 끌고 갈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그럴 의지와 실력이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개별 선거에서의 표만이 아니라, 국가운영에 꼭 필요한 신뢰도 준다.
그럼 어떻게 해야 개혁보수를 성장과 성공의 길로 이끌 수 있을까? 개혁보수는 이미 민주화 이후 자기쇄신, 정책 현대화, 탄핵 이후의 정당 분화라는 형태로 여러차례 실험되었다. 문제는 그 실험들이 지속가능한 조직 구조, 안정된 지지 기반, 선명한 이념・정책 정체성 등을 갖추는 데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실패를 반복했다는데 있다.
이를 감안할 때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개혁보수가 왜 필요한가를 다시 선언하는 데 있지 않다. 어떤 조직적 정책적 시민사회적 매개를 통해 그것을 실제 정치세력으로 만들 것인가를 논의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계엄과 극우화에 대한 명확한 규범적 단절 선언이다. 헌정질서와 사법 절차를 부정하는 동원, 선거부정 음모론, 역사왜곡, 폭력적 집회 정당화를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공론장 형성에도 앞장서야 한다.
둘째, 기존 보수와 다른 정책 패키지의 개발이다. 노동 복지 주거 지역불균형 세대갈등 안보를 둘러싼 보수적이되 민주주의 친화적인 정책 의제를 생산하고 토론하는 네트워크를 조성해야 한다. 이때 한국정치의 이념구조가 경제・안보를 넘어 사회문화적 이슈로까지 확장되고 있고, 이에 따른 새로운 정치균열의 형성과 유권자의 이념적 재편가능성이 있다는 논의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정책 패키지를 개발함에 있어 새로운 정책 이념의 조합을 모색할 필요성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셋째, 비판적 보수 유권자와 중도층을 연결할 조직적 중간지대의 구축이다. 시민사회와 지속적인 연결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개혁보수가 반복적으로 실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당과 시민사회 사이의 안정된 매개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싱크탱크, 직능단체, 종교계의 중도 네트워크, 지역 공론장 등을 통해 리더십 역량 육성과 정책 의제 형성을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동훈 오세훈은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나
한동훈과 오세훈이 이런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진정한 개혁보수 정치인이라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니라면 비판을 넘어선 경쟁세력에 대한 딴지걸기와 모욕과 비방과 소모적 갈등의 조장, 자기과시적인 언동과 행보로 개혁보수라는 이름을 오염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