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포드, ESS<에너지저장장치> 사업 본격 진출
전기차 배터리 활용해 전력망 시장 공략
AI 전력수요가 자동차산업 지형변화 초래
미국 자동차업체들이 전기차(EV) 판매 둔화 속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사업 모델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기술혁신의 병목은 에너지” = 1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 에너지저장 스타트업 피크에너지 테크놀로지스와 손잡고 전력망용 에너지저장 배터리 사업에 진출한다.
최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겨냥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GM 최고제품책임자(CPO) 스털링 엔더슨은 “과거 기술혁신의 병목이 반도체 성능과 인터넷 속도였다면 현재 병목은 에너지”라며 “전력회사와 대형 전력소비자를 위한 에너지저장 시스템을 개발하고 전기차를 전력망 자산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경쟁사인 포드가 이미 20억달러 규모의 에너지저장 사업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나왔다. 포드는 중국 배터리 기업 CATL 기술을 활용해 ESS용 배터리 생산을 준비하고 있으며, 최근 관련 사업이 AI 수혜주로 부각되면서 주가 상승을 견인했다.
◆GM, 나트륨배터리 개발까지 나서 = 자동차업계가 ESS 시장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가 자리하고 있다.
GM은 당초 연간 100만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능력을 구축할 계획이었지만 지난해 미국 판매량은 17만대 수준에 그쳤다. 판매량 기준으로는 테슬라 다음이지만 여전히 전기차 사업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자동차업체들은 전기차용 배터리를 단순 차량 부품이 아니라 전력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산업이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미국내 데이터센터 건설이 급증하면서 전력망 안정화와 전력저장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는 미국의 계통용 배터리 수요가 2030년까지 100GWh 이상으로 현재의 두 배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GM은 이 시장을 겨냥해 나트륨이온 배터리 개발에도 나선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리튬과 코발트 사용량이 적고 화재 위험도 낮아 ESS용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GM은 배터리 재활용 기업 레드우드 머티리얼즈와 협력해 폐전기차 배터리를 ESS로 재활용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GM의 전략을 자동차 제조업체가 에너지 기업으로 진화하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과거 자동차 회사들의 경쟁력이 엔진과 변속기, 전기차 배터리 성능에 있었다면 앞으로는 전력 저장과 공급, 전력 거래 플랫폼 운영 능력이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도 제주도서 V2G 시범서비스 = GM과 포드의 ESS 사업 확대는 한국 자동차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이미 전기차 플랫폼(E-GMP)에 V2L(Vehicle-to-Load) 기능을 상용화했다. V2L은 전기차에서 외부기기로 전력을 공급하는 기술이다.
또 지난달 15일에는 제주도에서 전기차를 ‘바퀴 달린 보조배터리’로 활용하는 ‘V2G’(Vehicle-to-Grid, 전기차-전력망 연계) 시범서비스를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본격 시행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시범서비스 확대를 계기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국내 V2G 생태계 조성 및 산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국내 배터리업계에도 새로운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로 수익성 압박을 받고 있지만 ESS 시장 확대로 수요처를 확장할 수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AI 시대에는 반도체만큼 전력 인프라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앞으로 자동차 회사의 경쟁 상대는 다른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전력회사와 에너지 플랫폼 기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