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말라카해협…흔들리는 해양 질서

2026-06-12 12:59:56 게재

세계경제 잇는 바닷길 위기 커지는데 … 자유·개방 해양질서 위한 다자주의 연대 나설 때

10일(현지시간) 오만 무산담 반도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에 선박들이 정박한 채 대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15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말라카해협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에티파-프로메테아스호’ 옆을 작업자가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국제 해협을 규율하는 해양 질서가 와해될 때 그 피해는 국제 사회가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우리는 이번 중동 전쟁에서 이를 목도하고 있으며 동시에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제 우리 눈과 귀에 친숙해진 두 이름 호르무즈해협과 말라카해협은 전 세계 물류와 에너지 공급망의 생명줄 역할을 하는 가장 핵심적인 해상 초크포인트(전략적 요충지)다. 두 해협은 단순히 배가 지나가는 길을 넘어 지정학적 위기 발생 시 글로벌 거시경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막강한 위력을 갖고 있다.

에너지·물류 생명줄 된 두 해협

세계 에너지 시장의 심장부인 호르무즈해협은 이란과 오만의 영해 사이에 위치한 좁은 수로로 페르시아만 유전 지대에서 생산된 원유가 대양으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한다. 매일 평균 2000만배럴 이상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이 수로를 거쳐 간다. 또한 전 세계 LNG 교역량의 약 20%가 이곳을 통과하며 주요 생산지는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이다. 이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약 85~90%가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등 동아시아 및 남아시아 국가들을 목적지로 한다. 한국 역시 수입 원유의 약 70~73% 수준을 이 해협에 의존하고 있어 이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국내 유가와 물가에 즉각적인 제2차 영향을 유발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해협을 우회하는 육상 파이프라인을 일부 운영하고 있으나 그 용량은 전체 물동량의 일부분에 불과해 해협이 봉쇄될 경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대체할 수단이 사실상 없다.

말라카해협은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사이에 위치한 해협으로 아세안 3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이 연안국이다. 중동, 아프리카, 유럽과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무역로다. 매년 10만척 이상의 선박이 통과하며 전 세계 해상 교역량의 22~30%, 금액으로는 3조2000억달러 이상의 재화가 이 해협을 통해 이동한다. 호르무즈해협을 빠져나온 중동산 원유가 동아시아로 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수로이다. 매일 약 2320만배럴의 원유가 통과하며 해상 원유 수송량 기준으로 보면 호르무즈해협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원유 초크포인트이기도 하다. 원유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각종 공산품, 반도체 부품, 원자재, 식량 등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따라서 말라카해협의 병목 현상이나 해적 행위, 지정학적 갈등은 전 세계 제조업 공급망 전반에 ‘입력 부족’을 야기할 수 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은 수입 원유 및 LNG의 70% 이상을 이 해협에 의존한다. 이로 인해 미·중 갈등 시 말라카해협이 봉쇄되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하며, 이를 우회하기 위해 파키스탄이나 미얀마를 관통하는 육상 통로를 개척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요약하자면, 호르무즈해협은 수도꼭지의 밸브와 같아서, 이곳이 잠기면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쇼크(shock)가 발생한다.

반면, 말라카해협은 글로벌 공장들과 소비시장을 연결하는 컨베이어벨트 같아서,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실물경제의 물류와 제조업 공급망 전체가 마비되는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최근에는 호르무즈해협의 리스크가 크게 부각되면서 말라카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의 보험료와 물류비가 동반 상승하는 이른바 ‘말라카 프리미엄’ 현상도 세계 경제의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동전쟁 발발 3개월이 지났는데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이어진 전쟁의 장기화는 원유 가격을 수직으로 끌어올리며 세계 경제를 순식간에 위기로 몰아넣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입은 충격은 유독 컸다. OECD는 바로 한국 성장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뚝 떨어뜨렸다.

통과통항권이 지키는 해양 질서

유엔해양법협약은 호르무즈해협이나 말라카해협 같은 국제해협의 통항 질서를 어떻게 규율할까? 이 두 해협은 전 세계 에너지와 물동량이 집중되는 핵심 수로다. 이 해협들을 둘러싼 통항 권리와 연안국의 주권 다툼을 규율하는 유일한 국제적 기준이 바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이다. 1982년 제정된 이 협약은 영해의 범위를 기존 3해리에서 12해리로 확장했으며 이로 인해 전 세계 수많은 주요 해협(폭이 24해리 미만인 곳)이 연안국의 영해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만약 영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연안국이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타국 선박을 막아설 수 있기 때문에 이 협약은 국제무역의 흐름을 보장하기 위해 제3부(제34조~제45조)에 국제해협에 관한 특수조항을 신설했다.

핵심은 통과통항권(the right of transit passage)이다. 이 권리는 국제해협의 한쪽 공해에서 다른 쪽 공해로 신속하게 통과하는 목적이라면 모든 선박과 항공기가 자유롭게 통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일반 영해 질서(무해 통항권)에서는 연안국의 안전을 해치지 않는 ‘무해 통항’만 인정되므로 군함의 통과가 제한되거나 잠수함은 반드시 수면 위로 부상해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 또한 항공기 비행은 전면 제한된다.

반면, 국제해협의 통과통항권은 잠수함의 수중 항행이 허용되며 상공의 비행 자유도 보장된다. 연안국은 임의로 이 통항을 중단시킬 수 없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말라카해협은 UNCLOS 하의 ‘통과통항권’이 비교적 잘 정착된 모범사례로 꼽힌다. 연안국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모두 UNCLOS 가입국이다. 따라서 해협 내에서 외국 군함과 잠수함, 상선의 통과통항권을 전면 보장한다.

연안국의 권한과 의무 관련, UNCLOS 제42조 및 제43조에 따라 연안국은 항행의 안전을 증진하기 위해 항로 지정, 해상교통분리제도(TSS)수립 또는 대체, 해양오염방지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실제로 3국은 공동으로 해적 소탕을 위한 순찰을 시행하고 있으며 통항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관리한다. 단, 통항 자체를 금지하거나 통행세를 징수할 수는 없다.

호르무즈해협은 폭이 좁아 통항로가 이란과 오만의 영해를 가로지르는데, UNCLOS의 해석을 둘러싸고 국제법적 갈등이 종종 발생한다. 갈등의 핵심은 미국과 이란의 UNCLOS 지위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란은 이 협약에 서명만 하고 비준은 안한 상태로, UNCLOS 상의 통과통항권은 협약을 최종 비준한 국가 간에만 적용된다고 주장하며, 미 비준국이나 적대국 선박에게는 통과통항권이 아닌 훨씬 엄격한 ‘무해 통항권’만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협약에 가입은 하지 않았으나 ‘통과통항권은 협약 제정 이전부터 존재해 온 국제관습법이므로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가가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한다. 말라카해협은 주변국들이 유엔해양법협약을 준수하며 항해의 자유(통과통항권)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반면, 호르무즈해협은 이란의 협약 미 비준 상태와 미국의 미 가입 상태가 맞물려 국제법(관습법) 해석 차이에 따른 지정학적 화약고로 남아있다.

아울러 유엔해양법협약은 호르무즈해협이나 말라카해협 같은 국제 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해 원칙적으로 단순 통항만을 이유로 통항세(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협약 26조는 외국 선박에 대한 과세 금지와 구체적인 예외 조건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동 조 1항은 “외국 선박에는 오직 내수나 영해를 통항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어떠한 수수료도 부과할 수 없다”, 동 조 2항 예외 규정으로 “통항하는 선박에 구체적인 특정 서비스(specific services rendered)를 제공한 경우에는 그 대가로 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다” 라고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한국·아세안, 자유 항행의 공동 전선

말라카해협과 호르무즈해협은 우리 경제와 아세안 경제 모두에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국제 수로이다. 유엔해양법협약이 규율하는 자유·개방적 해양 질서 수호는 국제법의 보편적 원칙이다. 이를 준수하고 신장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다자주의 연대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해양 협력은 아세안의 최대 관심사에 속한다. 지난 5월 8일 개최된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해양 협력은 핵심 의제 중 하나였으며 정상들은 ‘아세안 해양협력 정상 선언’을 통해 UNCLOS를 포함하여 국제법에 기반을 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공약을 재확인했다. 또한, 금년 초 캄보디아의 UNCLOS 가입에 따라 이제 모든 아세안 회원국이 UNCLOS 당사국이 되었다.

공해상에서 항해의 자유는 규칙 기반 국제 질서의 축을 이루는 핵심 원칙이다. 한국과 아세안은 개방형 통상 국가로서 이를 기반으로 자유 무역 체제의 최대 수혜자로 입지를 굳혀왔으며 동시에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하며 번영을 구가하여 왔다. 이 핵심 가치를 지키는데 한국과 아세안이 선두에 서야 할 때가 왔다.

정해문 전 태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