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합의 '한국경제 청신호' 켜질까…2%후반 성장률 가시권

2026-06-16 13:00:01 게재

미·이란 전쟁 107일 만에 종전 MOU 체결 … 호르무즈해협 ‘통행료 없는 개방’ 선언

환율 1511원대로 급락, 유가 안정세 … 전문가 “6월중 1400원대 환율 복귀 가능성”

반도체 초호황에 종전효과 가세 경제정책 정상화 물꼬 … 고물가 후유증 해소는 과제

가뭄 끝에 단비가 왔다.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웠던 중동전쟁이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미국과 이란이 전쟁 발발 107일 만에 종전합의 양해각서(MOU) 서명소식이 전해지면서 외환·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전반에 일대 전환점이 마련되고 있다. 양국은 오는 19일 스위스에서 서명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의 전면 재개방이 임박, 천정부지로 치솟던 국제 유가와 달러화 가치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고환율·고물가에 비상이 걸렸던 한국 경제에도 완연한 청신호가 켜지는 모습이다.

특히 중동 리스크 속에서도 반도체 초호황기(슈퍼사이클)에 힘입어 1분기 깜짝성장을 찍었던 한국 경제는 종전 선언을 계기로 하방압력이 크게 줄었다. 재정경제부 안팎에선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이 2% 후반대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에 힘이 실린다. 다만 전쟁 초기 발생한 충격이 실물경제에 반영되는 시차가 있고, 최근 3%를 돌파한 소비자물가 누적 후유증을 관리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확대거시재정금융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 사진 기획예산처 제공

◆환율 1400원대로 떨어질까 = 16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의 종전합의 공식발표 직후인 전날 원달러 환율은 8.7원 급락한 1511.1원에 마감했다. 지난 1일(1504.3원) 이후 10거래일 만에 가장 낮은 수치로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를 가장 먼저 반영했다.

환율 급락의 첫 배경은 국제 원유시장의 안정이다. 1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합의가 마무리됐다”며 오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공식 서명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발표하자,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불안감이 일시에 해소됐다.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료 없는 개방을 전적으로 승인한다. 세계의 선박들은 엔진을 가동해 석유가 흐르도록 하라”고 선언하며 시장을 안심시켰다. 이에 따라 뉴욕 상업거래소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80.80달러로 직전 거래일 대비 4.8% 급락했다. 브렌트유 역시 3.9% 떨어진 83.8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공급 정상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경우 브렌트유가 올해 4분기 70달러, 내년에는 60달러 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낙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유가 하락은 글로벌 자금시장 내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완화해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DXY)는 전쟁 위기감이 고조됐던 이달 초 100.31을 기록했으나 종전 기대감이 반영되며 지난 15일 99.52까지 밀려났다.

전문가들은 대외 리스크에 취약한 원화의 특성상 상방 압력이 대부분 해소된 만큼 이달 안에 환율이 1400원대로 복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제 환율이 더 오를 이유는 특별히 없으며 이달 내 1400원대 진입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환율이 1400원대 초반에 안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신중론도 만만찮다. 유가하락이 물가와 금리조정으로 이어지는 실물경제 경로에 최소 두세 달의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외환수급 측면에서 외국인의 과거 주식매도 물량에 따른 역외 달러 매수 수요가 잔존해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서 최근까지 24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기록하며 코스피 시장에서만 75조5690억원을 팔아치웠다. 그럼에도 증시 전문가들은 글로벌 우주기업 스페이스X 상장 등 초대형 해외 투자 건으로 인한 국내 증시 자금 이탈압력(공급 충격)이 일단락됐고 외국인 수급이 매수세로 돌아선 만큼, 환율 하향 안정화 기조 자체는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성장률 2.6% 벽 넘어설까 = 중동 리스크라는 거대 암초가 사라지면서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의 고점은 한층 더 높아질 전망이다. 재정경제부는 이르면 이달 말 발표할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 새로운 성장률 전망치를 담을 예정이다. 지난 1월 설정했던 기존 목표치인 2.0%를 너끈히 상회할 것으로 점쳐진다.

실제 올해 상반기 한국 경제는 극적인 드라마를 썼다. 지난 2월 말 중동전쟁이 발발했을 때만 해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정부는 그린북을 통해 ‘경기하방 위험증대’를 경고했다. OECD는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대폭 하향 조정하며 경고등을 켰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인공지능(AI) 수요 폭발 등으로 반도체 초호황기가 도래하면서 중동전쟁의 와중인 지난 3월과 4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8.3%, 48.0% 급증했다. 특히 반도체 단일품목 수출은 각각 151.4%, 173.5%라는 가공할 만한 성장세를 기록, 대외악재를 압도했다. 그 결과 지난 4월 발표된 1분기 경제성장률 잠정치는 전기 대비 1.8%를 기록, 한국은행의 당초 전망치(0.9%)를 두 배 가까이 웃돌며 5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새로 썼다.

핵심 수출지표가 선방하자 국내외 경제기관들은 전쟁 기간임에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선제적으로 올려 잡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5%, 한국은행과 OECD가 각각 2.6%를 제시하며 두세 달 사이에 전망치를 0.9%p 수직 상승시켰다.

여기에 ‘종전’이라는 초대형 호재로 추가적 상방압력이 가해지게 됐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경제전망에서 제시한 중동 상황 시나리오에 따르면 미국·이란 간 종전 협상 타결과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 등 ‘조기 진정’이 이뤄질 경우 국내 성장률은 올해와 내년에 각각 0.1%p씩 추가 향상되는 효과를 얻는다. 이에 따라 올해 한국 경제가 2.6%를 넘어 2.7~2.8% 대의 ‘2% 후반대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장밋빛 관측이 현실화하고 있다.

대외 지정학적 불확실성 제거는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에도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는 비상 거시경제 점검체제를 가동하며 위기 방어에 힘을 실어왔다. 종전이 현실화하면 잠재성장률 회복과 규제 완화, 신산업 육성 등 구조적 성장 모멘텀 확보에 온전히 정책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3.1% 고물가 후유증 해소가 관건 = 실물경제 역시 중동의 물길이 열리면서 극심했던 비용부담을 덜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되는 분야는 석유화학업계다. 국내 화학산업의 핵심 원재료이자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는 중동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해협 봉쇄가 풀리면서 원재료 수입선이 완전히 정상화될 궤도에 올를 것으로 보인다.

봄철 농가와 물류업계를 긴장시켰던 비료 원료 ‘요소’ 역시 수입 걸림돌이 사라져 공급망 리스크를 털어내게 됐다. 수출 기업들의 목을 죄던 글로벌 해상 운송비 부담도 급감할 전망이다. 관세청 조사에 따르면 중동사태 고조로 지난달 중동지역 해상수출 평균 운송비는 2TEU(40피트 컨테이너)당 681만원으로 전년 대비 2배 폭등해 중소 수출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해상항로가 안전을 되찾으면 선박들의 우회항로 이용부담이 사라져 물류비용이 절감되고 수출 채산성 개선으로 직결된다.

다만 세계를 강타한 전쟁의 상흔이 온전히 치유되기까지는 ‘고물가 후유증’이란 숙제를 풀어야 한다. 지정학적 위기가 남긴 인플레이션 불씨가 시차를 두고 민생경제에 지속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를 기록하며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아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크게 위축시켰다.

원유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수입 물가를 거쳐 국내 주유소 가격이나 가공식품, 공공요금 등 가구 체감 물가에 반영되기까지는 통상 수개월이 소요된다. 재정부 관계자는 “전쟁 당시 생산시설 타격을 입었던 원유 공급망과 파생 물가가 정상화되고 국민이 물가안정을 체감하려면 올해 연말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역시 환호성을 지르기보다는 당분간 철저한 비상대응체제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국면 전환을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최근 “물가와 고용 등에 대해 각별한 경각심을 유지하면서 중동전쟁의 여파를 최소화하고 민생 안정을 유도하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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