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 AI 규제 칼날…앤스로픽 IPO 먹구름

2026-06-17 13:00:05 게재

구체적 사전 설명 없이

“90분 안에 조치” 통보

각국 AI 주권 논의 자극

지난 2월 19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AI 임팩트 서밋(AI Impact Summit)에서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최고경영자(CEO)가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앤스로픽이 미 정부의 수출통제 조치 이후 최신 AI 모델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스페이스X 상장 흥행 이후 앤스로픽과 오픈AI 등 차세대 AI 기업의 기업공개(IPO)에 대한 기대가 커진 상황에서, 미국 정부의 돌발 규제가 새 불확실성으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앤스로픽의 최신 AI 모델인 미토스 5와 페이블 5에 대해 수출통제 조치를 내렸다. 미국인이 아닌 인력과 해외 고객이 해당 모델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취지였다. FT에 따르면 앤스로픽은 구체적인 우려 사항도 전달받지 못한 채 90분 안에 조치를 이행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앤스로픽은 이를 선별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고 두 모델의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이번 조치는 AI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앤스로픽은 그동안 AI 안전성과 규제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해온 대표 기업이다. 그러나 오히려 정부 규제의 첫 대형 충격을 맞으면서, 최첨단 AI 모델이 기술뿐 아니라 정치와 안보 판단에 따라 언제든 판매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FT는 이번 사태가 앤스로픽의 상장 기대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앤스로픽은 최근 연간 매출 환산 기준 약 500억달러에 근접했고, 시장에서는 1조달러 수준의 기업가치까지 거론돼 왔다. 이는 매출 대비 약 20배 수준으로, 과열 논란 속에서도 다른 AI 기업보다 비교적 합리적인 평가라는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핵심 제품을 정부 결정으로 팔 수 없다면 높은 기업가치를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 분위기는 이미 뜨거웠다. 최근 스페이스X가 상장 후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민간 우주기업뿐 아니라 AI 인프라와 차세대 기술기업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가 달아올랐다. 투자자들은 다음 대형 IPO 후보로 앤스로픽과 오픈AI를 주목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좋은 AI 모델을 만드는 것”과 “그 모델을 안정적으로 팔아 돈을 버는 것”이 다른 문제라는 점을 보여줬다.

앤스로픽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빅테크의 AI 투자와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앤스로픽은 아마존, 구글 등 하이퍼스케일러의 주요 고객이자 파트너다. 하이퍼스케일러는 AI 데이터센터 확장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을 뜻한다. 앤스로픽 같은 모델 기업이 빠르게 성장해야 클라우드 사용량과 AI 서버 투자도 정당화된다. 반대로 앤스로픽의 성장 전망이 흔들리면 AI 데이터센터 투자 회수에 대한 의문도 커질 수 있다.

중국 AI 모델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FT 평론은 미국 모델이 아무리 뛰어나도 정치적 이유로 접근이 차단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 글로벌 기업들이 대체 모델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딥시크, 큐원, 키미 등 중국계 모델은 성능 격차를 좁히는 동시에 낮은 가격과 자체 서버 운영 가능성을 앞세우고 있다.

가격 경쟁도 부담이다. AI 모델 기업들은 엔비디아처럼 강한 가격 결정력을 갖고 있지 않다. 고성능 반도체와 서버, 전력, 연구인력 비용은 계속 늘어나는 반면, 경쟁이 심해지면 모델 사용료는 낮아질 수 있다. FT Lex는 앤스로픽 사태가 AI 기업들에 기술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교훈을 줬다고 평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사태가 각국의 ‘소버린(주권) AI’ 논의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최첨단 AI 모델이 성능 면에서 앞서 있더라도, 정부 결정에 따라 접근이 갑자기 차단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미국 동맹국과 글로벌 기업들은 앞으로 AI 인프라를 구축할 때 특정 미국 모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안전한지 다시 따져볼 가능성이 있다. 최고의 모델보다 매일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모델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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