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 대책 ‘3대 병기’는 관세·AI·부처공조
하반기에도 할당관세 확대해 물가 잡는다
LNG·LPG 무관세·식품원료 17종 집중
인공지능 기반 상시 물가 모니터링 가동
재경부·농식품부·해수부 벽 허물고 대응
정부의 물가 관리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융합한 과학적 예측 시스템을 도입하고 부처 벽을 허물고 융합대응에 힘을 싣고 있다.
정부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를 개최하고, 하반기 물가안정을 견인할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대책의 골자는 과감한 할당관세 운용을 통한 수입 원가 절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융합한 과학적 예측 시스템 도입,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문 전방위적 정책 공조다.
◆먹거리·원자재 관세 인하 지속 = 정부가 내놓은 첫 번째 정책 수단은 ‘할당관세 확대’다. 서민 장바구니 물가부담 완화와 기업의 제조원가 절감을 겨냥했다. 재경부는 이날 ‘2026년 하반기 할당관세 및 조정관세 운용방안’을 최종 확정하고, 민생 현장에서 체감하는 수입 물가 압력을 원천 차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오는 7월부터 액화천연가스(LNG)와 액화석유가스(LPG, 프로판·부탄), LPG 제조용 원유에 대한 할당관세율을 ‘무관세’로 적용한다. 당초 정부는 하반기 국제 원자재 시장 동향을 고려해 LNG에 1~2%, LPG와 제조용 원유에 1% 수준의 할당관세를 부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가 상승압력과 민생부담을 고려해 관세를 면제하기로 정책방향을 선회했다. 발전용 LNG에 대한 개별소비세 15% 감면 조치도 올해 말까지 연장된다. 휘발유(15%)와 경유(25%)에 대한 유류세 인하 조치는 7월 말까지 유지된다. 기한 종료 예정이던 LPG 부탄(25%)의 유류세 인하 역시 한 달 더 연장된다. 이를 통해 도시가스, 전기요금, 물류·운송비 등 공공·산업 인프라 비용의 동반 상승을 억제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들의 일상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 물가 안정화 조치도 촘촘해졌다. 서민 식생활과 밀접한 돼지고기, 닭고기, 설탕, 가공용 원당 등 총 19개 핵심품목의 할당관세 적용기한이 올해 말까지 6개월 더 연장된다. 과일류 3종(바나나, 망고, 파인애플)과 식품원료 17종, 사료원료 2종 등 총 22개 품목에 대한 농산물 관세지원도 대폭 확대된다. 계란가공품, 냉동과일 등 기존 13개 품목은 지원 기간이 연장됐다. 포도농축액, 기타과실주스, 팜박, 감자변성전분 등 9개 품목이 하반기 할당관세 대상에 신규 편입됐다. 정부는 특히 식품원료 17개 품목을 ‘할당관세 집중관리품목’으로 지정, 관세인하 혜택이 기업의 마진으로 흡수되지 않고 실질적인 소비자가격 인하로 이어지도록 유통 단계별 엄격한 사후점검을 병행할 방침이다.
◆AI로 물가인상 징후 포착 = 정부는 또 행정전반의 디지털 혁신을 적용해 ‘AI 기반 상시 물가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한다. 현장 인력중심의 사후 조사 방식이 가진 시차와 데이터 한계를 극복하고, 물가 불안 징후를 사전에 포착해 선제대응하겠다는 취지다.
재경부와 국가데이터처가 주도하는 이 시스템은 대형마트와 이커머스 등 온·오프라인 유통가격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웹 스크래핑 기반 빅데이터 플랫폼에서 출발한다. 수집된 방대한 정보는 생성형AI와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품목별로 정제·표준화돼 상시 분석된다. 규격이나 포장 단위, 가격 변동 주기가 제각각이라 수작업으로 모니터링하기 어려웠던 라면·빵 등 가공식품 13개 품목과 세탁세제·화장지 등 공산품 8개 품목을 포함한 총 21개 민생 필수품이 우선적인 AI 집중 점검 대상이다.
정부는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가격변동 위험단계를 ‘안정-주의-경계-심각’ 등 4단계로 분류한다. 가격 이상 징후나 공급망 교란이 포착되는 즉시 관계부처에 경보를 발령하는 시스템을 내년부터 본격 공유한다. 특히 AI 알고리즘을 통한 미래상승 가능성 시뮬레이션 기능이 탑재된다. 가격이 급등한 뒤에야 부랴부랴 대책을 세우던 ‘사후약방문’식 구조에서 벗어나 선제적 수급 조절을 가능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유통업계의 불공정 거래 행위나 담합 가능성을 상시 감시하는 데도 이 첨단 분석 기술이 투입된다.
◆부처 벽 허물고 융합대응 = 물가관리의 정밀성을 높이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정책 공조와 부처 간 칸막이 제거도 추진된다. 재경부의 모니터링 플랫폼을 중심으로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등 생산·수급을 담당하는 부처들이 AI 기술과 데이터를 연계하며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기존에 애호박, 양파, 배추, 마늘 등 4개 품목에 한정되어 있던 ‘AI 기반 생산량·가격 예측 시스템’을 하반기부터 서민 수요가 높은 사과와 무까지 확대해 총 6개 품목으로 늘려 운영하기로 했다. 농촌경제연구원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데이터 경진대회를 통해 발굴된 민간의 우수한 AI 수급 모델을 감자, 대파, 건고추, 배, 상추 등 주요 수급관리 품목의 가격예측에 적용한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회원국 물가 동향에 따르면 글로벌 공급망 정상화와 주요 선진국들의 긴축 통화정책 속에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OECD 평균치를 밑도는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재경부는 전했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연장 조치와 석유최고가격제 도입 등 미시적인 민생 대책들이 거시경제의 안정과 유기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번에 구축된 과학적 관리 시스템과 안정적 지표를 바탕으로 물가 안착 기조를 굳건히 다지는 한편, 현장 유통망 점검과 다각적인 민생 지원 조치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