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대형원전·기장 SMR<소형모듈원자로> 확정…한국 에너지정책의 분수령

2026-06-18 13:00:01 게재

송전망 확충, 전력수요 전망 정확성, 재생에너지·원전 공존 필요

정부가 신규 대형원전 2기 건설 부지로 경북 영덕군을, 국내 첫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 부지로 부산 기장군을 최종 선정했다. 2011년 이후 약 15년 만에 신규 원전 입지가 확정된 것이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산업, 전기차 확산으로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원전 건설 자체보다 송전망 확충, 전력수요 예측, 재생에너지와의 공존 등 복합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리원전 전경.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송전망 효율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만 = 원전 확대 정책의 최대 걸림돌로는 송전망 문제가 꼽힌다.

영덕에 건설될 신규 원전은 수도권과 중부권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해야 하지만 현재 국내 송전망은 이미 상당부분 포화 상태에 근접해 있다.

특히 동해안 지역은 원전과 재생에너지 설비가 집중돼 있음에도 수도권으로 전력을 보내는 핵심 송전선로 건설이 주민 반발과 인허가 문제로 수년째 지연되고 있다.

최근에는 태양광뿐 아니라 원전까지 출력제어를 받는 사례가 늘었다. 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를 소비지까지 보내지 못해 출력을 줄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HVDC)망 구축을 서두르고, 원전·재생에너지·에너지저장장치(ESS)를 통합한 계통계획 마련이 시급하다. 전력계통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N-2 기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송전 효율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N-2는 전력망의 주요 설비 두 개가 동시에 고장 나더라도 대규모 정전 없이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전력계통의 신뢰도 기준이다.

◆건설기간까지 포함하면 향후 100년까지 생각해야 = 전력수요 예측 역시 중요한 변수다.

정부는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증가에 따라 2040년 최대전력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근 전력수요 전망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국회미래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과거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시기별로 과소 또는 과대 예측을 반복해 왔다고 분석했다.

원전은 건설에만 10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따라서 수요예측이 빗나갈 경우 과잉투자 또는 전력부족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신규 원전(APR1400)의 설계수명은 60년이며, 이후에도 안전성과 경제성이 입증되면 10년 단위의 계속운전이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설계수명 80년이 승인된 원전도 운영 중이다.

현재의 기술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향후 건설되는 원전은 운전기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결국 신규 원전 건설 여부는 단순히 2040년이나 2050년이 아니라 사실상 향후 수십 년에서 100년 가까운 전력수요까지 고려해야 하는 장기적 의사결정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2~3년 단위의 수요 전망 재검증과 함께 액화천연가스(LNG)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 SMR 등 다양한 전력원을 병행하는 유연한 전략도 요구된다.

◆ ESS 구축과 전력시장 개편 등 병행 필요 =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원전 확대와 재생에너지 보급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두 전원이 전력망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설비가 급증하면서 출력제어가 늘었고, 최근에는 원전 역시 계통 안정성을 이유로 출력을 줄이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원전 확대와 재생에너지 확대가 반드시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대규모 ESS 구축과 전력시장 개편, 실시간 전력거래시장 활성화 등을 통해 계통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송전망 확충 없이 발전설비만 늘릴 경우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제로섬 경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원전 정책의 성패는 원전을 몇 기 더 짓느냐가 아니라 생산된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소비지에 공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변화하는 산업구조와 기술발전 속도에 맞춰 전력수요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고, 원전과 재생에너지, ESS, 송전망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과제다.

영덕 대형원전과 기장 SMR 건설은 단순한 발전소 신설 사업을 넘어 향후 수십 년간 한국 전력산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이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탄소중립,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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