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중소기업, 저임금 경쟁보다 기술·품질로 승부

2026-06-19 13:00:02 게재

하청 넘어 독자적 기술기업으로 성장 … 국가적 인재공급·산학협력·금융지원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력 확보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제도 개편 요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복지 격차에 다시 한번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국과 같은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어떨까. 독일 역시 대기업이 생산성과 혁신, 인재확보 능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임금과 복지에서도 일정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독일의 많은 중소기업은 특정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히든챔피언으로 성장하며 독일 경제의 핵심 축을 이루고 있다. 그 경쟁력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독일 중소기업은 세계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바탕으로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적인 기술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산별협약에 기반한 직무·자격·숙련 중심의 임금체계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생산성 향상을 뒷받침하는 기반이다. 여기에 이원화 직업교육을 통한 숙련인력 공급, 대학·연구기관과 기업 간 협력 네트워크, 정책금융과 수출지원 제도, 산업클러스터 중심의 혁신 생태계가 더해지면서 중소기업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리바엔지니어링은 독일의 유리·금속 건축물 외장공사 전문 중소기업으로 숙련인력 확보를 위해 ‘직업훈련 4.0(Ausbildung 4.0)’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의 목표는 직업훈련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것으로 모든 훈련생에게 태블릿을 지급하고 학습 콘텐츠와 근태관리, 휴가 신청, 훈련일지 작성 등을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에서 운영한다. 많은 기업이 훈련생 부족을 겪는 것과 달리 리바는 지원자가 많아 기업 가치와 문화를 공유할 인재를 선발하는 데 집중한다. 경영진과 정보통신(IT) 부서, 직업훈련 담당자의 협력과 적극적인 디지털 투자를 바탕으로 전체 직원의 약 20%를 훈련생으로 운영하며 미래 인재를 직접 육성하고 있다. 출처 www.saatkorn.com

삼성전자 노조가 반도체 사업 호황을 반영한 성과급 제도 개편을 요구하면서 최대 6억원에 이를 수 있는 보상 규모가 화제가 됐다. 특정 실적을 전제로 한 최대치이지만 수억원대 성과급이 논의되는 현실은 기본급 인상조차 쉽지 않은 많은 중소기업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보상격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독일도 한국과 같이 제조업 비중이 높은 산업국가다. 흔히 독일을 ‘중소기업 강국’으로 부르지만,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생산성 연구개발 인재확보 등 여러 측면에서 대기업의 우위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독일 중소기업은 독자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인다. 한국 중소기업과 무엇이 다르며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독일의 250인 이상 대기업 노동생산성은 10~19인 규모 기업의 약 2배, 50~249인 규모 기업보다도 약 75% 높다. 자동차·기계·화학 산업에서는 대규모 설비투자와 자동화, 연구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면서 생산성 격차가 확대된다.

혁신 역량에서도 대기업의 우위는 뚜렷하다. 독일의 히든챔피언 기업들이 매출 대비 높은 연구개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절대 투자 규모에서는 대기업과 경쟁하기 어렵다. 글로벌 기업들은 자체 연구소와 막대한 연구개발 예산을 바탕으로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도 대기업의 인공지능(AI) 활용률은 중소기업보다 두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인재 확보 역시 중소기업이 안고 있는 과제다. 2026년 숙련인력확보역량센터(KOFA)에 따르면 독일의 숙련인력 부족 문제는 71.7%가 중소기업에 집중돼 있으며 부족 인원은 28만명을 넘는다. 높은 임금과 브랜드 인지도를 갖춘 대기업은 우수 인력 확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산별협약이 만드는 임금격차의 완충장치 = 독일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및 복지 수준의 차이는 존재한다. 대기업은 휴가수당, 크리스마스 상여금, 기업연금, 성과급 등에서 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독일에서 임금 수준은 기업 규모가 아니라 직무와 숙련 수준이 결정한다.

산별협약은 산업·업종 전체를 대상으로 노사가 임금 노동조건 사회안전망 등을 합의하는 제도로 직무의 책임 범위와 난이도 숙련도 자격요건 등을 기준으로 임금체계를 설계한다. 직업훈련 이수 여부, 마이스터 자격, 학위와 전문기술, 문제해결 능력과 의사결정 권한 등이 임금결정에 반영된다.

이 때문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직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에게는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유사한 임금 기준이 적용된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의 저임금을 원가절감 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된다. 산별협약은 중소기업의 저임금 경쟁을 억제하고 기업 규모에 따른 노동자 차별을 완화하는 중요한 제도로 평가된다.

◆거래처 다변화가 경쟁력의 조건 = 독일과 한국의 중소기업 생태계는 하청기업 비중과 거래 구조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제조업 중소기업의 상당수가 대기업과 하도급·수탁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대기업 중심의 수직적 생산체계가 발달해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제조업 중소기업의 하도급 참여 비중은 40~50% 수준이며 자동차·전자산업에서는 특정 원청에 의존된 기업이 60~70%에 이른다. 이 때문에 원청의 납품단가 정책과 경영상황이 협력업체의 수익성과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면 독일은 하청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많은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기술력과 전문성을 갖춘 공급업체로 성장해 왔다. 유럽연합(EU) 조사에 따르면 독일을 포함한 서유럽 15개국의 중소기업 중 하청업체 비율은 약 16% 수준이다. 자동차·기계·화학 분야 부품업체들도 특정 대기업에 의존하기보다 여러 고객사와 거래하며 시장을 다변화하고 있다. 독일의 저축은행과 협동조합은행은 대출 심사에서 특정 거래처 의존도가 높은 기업을 위험도가 높은 기업으로 평가해 거래처 다변화를 유도한다.

◆기술력과 제도가 만든 독일형 중소기업 ‘성공’ = 독일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경쟁하기보다 정밀부품, 특수장비, 산업 맞춤형 솔루션 등 기술장벽이 높은 틈새시장을 공략해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히든챔피언을 다수 배출했다.

이러한 경쟁력은 기업의 노력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독일은 이원화 직업교육으로 숙련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대학·연구기관·산업계 협력을 통해 기술혁신을 지원한다. 또한 산업은행(KfW)와 지역 저축은행이 장기 투자자금을 제공하고 무역투자진흥청과 해외상공회의소가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한다. 여기에 지역 산업클러스터와 산업협회의 협력 네트워크가 더해져 중소기업의 성장 기반을 뒷받침한다.

독일 중소기업의 강점은 대기업과의 격차가 없어서가 아니다. 독자적인 기술력과 글로벌 틈새시장 전략,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에 있다. 숙련인력 양성, 산별협약, 장기금융, 산학협력, 수출지원 제도가 결합되면서 중소기업은 하청업체가 아닌 독자적인 기술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는 독일 제조업 경쟁력의 중요한 토대다.

정미경

독일정치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