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타워크레인 ‘월례비’, 대법원도 인정한 ‘정당한 임금’
최근 일부 언론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을 겨냥한 거센 여론몰이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조종사들에게 지급해 온 이른바 ‘월례비’를 두고 불법적인 ‘뒷돈’이라거나 상대를 겁박해 갈취하는 ‘부당 금품’으로 악의적인 낙인을 찍고 있다. 심지어 이를 근거로 조종사들의 생명줄과도 같은 면허를 취소하겠다는 위헌적 발상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현장 노동자들은 일련의 사태를 보며 참담함과 분노를 느낀다. 법원의 명확한 판결마저 철저히 무시한 채 수십년간 누적된 건설현장의 구조적 모순과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비겁한 작태이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올바른 건설 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한 개혁이 결코 아니다. 진실을 호도하고 노동자를 악마화하는 마녀사냥에 불과하다.
건설업계는 월례비 때문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한다며 억울한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으나 이는 철저한 기만이자 적반하장이다. 월례비는 어느 날 갑자기 노동자들이 무리하게 억지를 부려 뜯어낸 돈이 아니다. 오히려 건설사들이 공기단축이라는 자신의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위해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에게 무리한 추가작업, 아찔한 위험작업, 그리고 혹독한 연장근로 등을 강요하면서 그 대가로 자발적으로 지급해 온 ‘성과급 성격의 임금’이다.
안전수칙 준수가 ‘태업’이라고
이는 노동계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다. 2023년 대법원 역시 “타워크레인 월례비는 사실상 임금에 해당한다”며 정당성을 인정했다. 건설사의 이윤추구를 위해 단단히 굳어진 오랜 관행을 이제 와서 노동자의 일방적인 ‘갈취’로 포장하는 것은 최고재판소의 판단마저 부정하는 억지다.
나아가 건설업계는 월례비를 주지 않으면 조종사들이 작업속도를 고의로 늦추는 ‘태업’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한 프레임이다. 조종사들이 작업속도를 조절하고 꼼꼼하게 현장을 살피는 것은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법령에 명시된 ‘안전작업 매뉴얼’을 준수하기 위한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조치다. 건설사들은 하루하루가 막대한 자본과 직결되는 공기를 맞추기 위해 월례비를 미끼로 생명을 위협하는 무리한 속도전을 노동자들에게 공공연히 강요해 왔다. 자신의 생명과 직결된 불법적이고 위험한 지시를 단호히 거부하고 마땅히 지켜야 할 정당한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을 두고 ‘태업’이라 비난하는 것은 건설업계의 천박한 안전의식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다. 숱한 중대재해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기 위한 비겁한 변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해결해야 할 정치권과 정부는 도리어 건설업계 편에 서서 노동자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 하반기에 재추진하겠다는 ‘건설기계관리법 일부 개정안’ 등은 그 궤를 같이하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대법원조차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인정한 임금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부당 금품’으로 둔갑시키고 이를 빌미로 노동자의 유일한 생존권인 면허까지 취소하겠다는 것은 폭력적인 노동탄압의 극치다. 노동계의 정당한 외침은 철저히 외면한 채 정부는 오직 노동자 옥죄기에만 혈안이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진짜 적폐 척결해야
‘진짜 대한민국, 노동이 존중받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출범한 대한민국 건설 똑바로 범국민대책위원회의 투쟁에서도 알 수 있듯, 진정 건설현장의 정상화와 법치를 원한다면 칼끝은 힘없는 타워크레인 노동자가 아니라 건설현장 기저에 독버섯처럼 뿌리내린 구조적 적폐를 향해야 마땅하다.
기형적인 월례비 관행을 잉태한 근본원인은 바로 ‘저가 수주 경쟁’과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있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며 공사비를 후려치고 턱없이 부족해진 비용과 시간을 현장 노동자의 뼈와 살을 갈아 넣어 메우려는 착취 구조가 존재하는 한 건설현장의 안전은 결코 담보될 수 없다.
아찔한 허공에서 매일 생명을 담보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는 결코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키고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인 노동자들이 무사히 퇴근할 수 있는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드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다. 건설업계와 언론은 대법원이 인정한 월례비를 불법으로 매도하는 여론 호도를 당장 멈춰야 한다. 정치권은 생존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면허취소 법안 추진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정부는 비겁한 노동자 때리기를 멈추고 불법 다단계 하도급 근절에 앞장서야 한다.
김경수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
노동조합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