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10억배럴 원유 비축전
중동전쟁때 IEA 32국 비축유 4억배럴 방출 … 각국 신규 비축 수요만 5억배럴
로이터는 22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이 3개월 넘게 사실상 봉쇄돼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의 5분의 1이 차단되고 브렌트유가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하자, 비축시설이 부족한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에너지 안보 강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 초기 국제에너지기구(IEA) 32개 회원국은 사상 최대인 4억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했다. 중국도 10억배럴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대 비축유를 활용해 전쟁 기간 원유 수입을 3분의 1 이상 줄였다. 고유가 때 시장에서 물러나 수십억달러를 아끼고 경제 충격을 낮춘 것이다.
반면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인도와 파키스탄, 태국 등은 비축유 부족으로 보조금과 연료 사용 제한, 근무일 단축까지 동원해야 했다. 이에 각국은 재정 여력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전략비축유와 가스 저장시설을 확충할 전망이다.
가장 시급한 곳은 세계 3위 원유 수입국인 인도다. IEA는 인도가 2030년까지 세계 석유 수요 증가를 가장 많이 이끌 것으로 보고 있지만, 현재 비축유는 수입량 기준 8일분에 불과하다. IEA 기준인 90일분을 확보하려면 4억배럴 이상을 추가로 비축해야 하며, 배럴당 70달러 기준 약 280억달러가 든다.
인도 정부는 국영 석유천연가스공사에 175만톤, 약 1300만배럴 규모의 저장시설 건설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완공되면 인도의 비상 저장 능력은 약 3분의 1 늘어난다.
전쟁 전 원유와 LNG 수입의 약 90%를 중동에 의존한 파키스탄도 비축 확대를 추진 중이다. 수입량 90일분을 확보하려면 약 3500만배럴이 추가로 필요하다. IEA 회원국이면서도 비축 기준을 지속적으로 지키지 못한 호주는 최소 50일분의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7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아시아 최대 정유 허브인 싱가포르도 석유·가스 저장시설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유럽은 LNG가 전체 가스 공급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이 가운데 미국산 비중이 60%를 넘어서면서 정부 통제 저장시설을 추가로 지을 가능성이 있다.
산유국도 해외 저장시설 확대에 나섰다. 한국과 일본, 이집트, 북서유럽에서 저장시설을 운영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아람코는 위기 때 수출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추가 확장을 검토하고 있다.
로이터는 각국의 신규 저장 계획에 원유와 석유제품 약 5억배럴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전쟁 이후 방출된 세계 비축유 약 4억배럴도 다시 채워야 한다. 여름까지 추가 방출이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하면 전체 추가 수요는 약 10억배럴에 달할 수 있다.
다만 IEA는 중동 생산 회복으로 내년 세계 석유 공급이 수요를 하루 400만배럴 이상 웃돌 수 있다고 전망한다. 비축 수요가 수년에 걸쳐 분산되면 유가가 급등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걸프 지역의 공급 회복이 늦어질 경우 비축 경쟁이 국제유가를 다시 끌어올릴 가능성도 있다.
로이터는 이번 호르무즈 사태가 비축유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키면서 각국의 전략비축 확대 경쟁을 촉발했다고 분석했다. 비축유는 위기 때 버틸 수 있는 완충 장치이자, 고유가 국면에서 원유 구매를 줄일 수 있는 협상력의 기반이라는 것이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