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보수의 뇌는 왜 음모론에 더 솔깃해할까

2026-06-23 13:00:02 게재

6.3 지방선거가 끝난 지 20여일이 넘었지만 선관위가 쌓은 불신의 벽은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고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서울 잠실 개표장 시위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참정권 제한에 대한 분노로 시작됐던 시위는 극우 인플루언서들과 부정선거론자들의 ‘음모론 비즈니스장’으로 전락해버렸다.

시위 초기 핸드볼경기장 앞을 메웠던 “선관위 무능 규탄” “우리의 표를 돌려달라”는 상식적인 목소리 대신 “사전투표 조작” “수개표 실시” “부정선거 척결” 같은 성마른 구호가 난무한다. 현장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동시에 흔드는 아스팔트 극우 집회의 전형적인 풍경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이들과 거리를 두면서 참정권 회복을 외치는 평화집회도 꾸준히 열리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양상이다.

‘위험 민감성’ 파고드는 음모론자들의 ‘공포 마케팅’

문제는 음모론자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보수층에 상당히 먹혀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AI)이 금융망 비밀번호까지 뚫는 지금 같은 시대에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석기시대 방식으로 부정을 저지른다는 주장, 그리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도 이재명정부의 부정선거 결과라는 궤변이 통한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이런 류의 음모론에 더 솔깃해하는 것은 보수쪽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나 마가(MAGA) 진영의 ‘부정선거’ 주장에서 볼 수 있듯 이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공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뇌 구조, 그리고 바뀐 미디어 환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생물정치학의 개척자 존 히빙(John Hibbing) 내브래스카-링컨대 교수 등은 책 ‘정치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통해 보수 성향의 유권자일수록 대뇌 변연계에 위치한 ‘편도체(Amygdala)’의 활성화 수준이 현저히 높다는 뇌 영상 연구들을 소개한 바 있다. 편도체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감지하고 공포(Fear)를 처리하는 뇌 부위다. 이는 보수주의자의 뇌가 위험에 더 민감함을 의미한다. 실제 보수주의자들은 낯선 환경, 갑작스러운 사회변화, 외부집단의 유입을 자신과 소속 집단의 생존을 위협하는 신호로 인식할 확률이 생리적으로 더 높다고 한다.

근래 들어 극우 유튜브와 미디어들은 보수의 이런 ‘위험 민감성’을 파고든다. 이들은 “선거가 조작됐다” “부정선거 증거를 찾았다”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자극적인 선동으로 ‘음모론 비즈니스’를 펼치면서 조회수를 올리고 후원금을 거둬들인다. ‘보이지 않는 주사파’나 ‘급진 좌파’가 국가기관을 장악할 수 있다는 보수 유권자들의 불안감은 결국 스스로를 ‘공포 마케팅’의 타깃으로 내몰아버렸다.

이들에게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좌파가 선거시스템을 장악한 확실한 증거로 둔갑한다. 객관적 통계나 선관위의 해명 같은 이성적 반박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이들에게 ‘객관적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통제불능의 불확실한 세상이 가져올 공포보다 ‘악마가 지배하지만 원인이 명확한 세상’이 더 낫다. 그냥 싸우면 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음모론은 복잡한 세상을 해석하는 유일한 논리적 구조이자, 보수진영의 패배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회피하게 해주는 일종의 심리적 도피처라고 할 수 있다. AI가 금융보안을 뚫는 첨단의 시대라 할지라도, 인간의 합리적 이성은 보수의 뇌가 가진 원초적인 공포와 진영논리를 자극하는 극우 음모론자들의 ‘감정해킹(Emotion Hijacking)’ 앞에서 무력해지는 셈이다.

극우 폭력에 침묵하는 보수개혁은 말치레일 뿐

어쨌거나 보수의 뇌가 공포에 민감하다고 해서 모든 보수주의자가 음모론에 무릎 꿇는 것은 아니다. 아니 훨씬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참정권 침해에 분노하면서도 부정선거 음모론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대표한다는 한국 보수 정치권을 보면 조금 뜨악하다는 느낌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편승해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모면하려는 국민의힘 장동혁 지도부야 그렇다고 치고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조차 지금 잠실체육관 앞을 장악한 음모론자들에게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은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진영 내 표 계산과 이재명정부를 압박할 ‘정치적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는 정치공학적 셈법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하지만 운동선수들의 생업을 인질로 잡는 극우의 폭력에 침묵하는 보수라면, 그들이 말하는 ‘개혁’은 결국 권력을 잡기 위한 말치레일 뿐이다. 세상에 비겁으로 리더가 된 이는 없다.

남봉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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