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디지털 혁신

“우울증 치료할 수 있고…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

2026-06-23 13:00:02 게재

마인즈에이아이 대표 “자살 위험에서 벗어나는 방법 알려줘야” … 디지털기술로 우울증 진단, 인지행동치료 제공

우울증과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우울증 환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 치료 현장은 여전히 △정신과 전문의 부족 △짧은 진료시간 △심리치료 접근성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디지털치료제(DTx) 등 디지털 기술이 이러한 한계를 보완할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자 디지털 정신건강 기업 마인즈에이아이를 창업한 석정호 대표는 의료현장에서 마주한 문제들을 기술로 해결하기 위해 직접 창업에 나선 사례다. 우울증 평가 솔루션 ‘마인즈내비’와 VR 기반 디지털치료제 ‘치유포레스트’를 개발한 석 대표는 정신건강 분야에서도 객관적 진단과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동시에 국내 디지털의료기기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인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 체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18일 서울 강남구 미래의학연구센터에서 진행된 석 대표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디지털 정신건강 산업의 가능성과 과제를 짚어봤다.

석정호 마인즈에이아이 대표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20년 넘게 우울증과 자살 고위험군 환자를 진료하면서 많은 환자들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한 동시에 국내 정신건강 의료체계의 한계를 체감해 왔다.

정신건강학과 전문의들은 하루 수십명의 환자를 진료해야 하고 환자에게 꼭 필요한 인지행동치료(CBT)는 시간과 수가의 한계로 충분히 제공되지 못한다. 그 결과 환자들은 약물치료에 의존하게 되고 정작 자살 위험성을 낮추는 심리적 개입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결국 창업으로 이어졌다.

석 대표는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한 서비스산업핵심기술 개발사업에서 ‘자살예방을 위한 디지털 평가 및 개입 서비스 개발 과제’를 수행하면서 정신건강전문가로서 이 연구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과제가 종료된 뒤 사업화를 맡을 기업을 찾지 못하자 스스로 창업을 선택했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 예비창업패키지 지원을 받아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신용보증기금의 퍼스트펭귄 기업 선정과 벤처캐피털 투자를 유치하며 본격적인 사업화에 착수했다.

석 대표는 “진료실에서 반복적으로 느낀 것은 우울증 환자들이 약만으로는 충분히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며 “특히 자살 위험성은 심리치료를 통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는 기술을 배워야 의미 있게 낮아진다”고 말했다.

석종호 마인즈에이아이 대표. 사진 이의종

◆가상현실 속 치료사가 우울증 환자를 만난다 = 마인즈에이아이의 대표 제품인 ‘치유포레스트’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치유포레스트는 가상현실(VR)기술을 활용한 디지털치료제다. 환자는 가상현실 공간에서 실제 치료사와 대화하듯 인지행동치료와 변증법적 행동치료(DBT)를 경험한다. △우울증의 원인과 치료 원리 △스트레스 관리법 △감정 조절 방법 △인간관계 의사소통 기술 △자살위기 대처 전략 등을 6주 동안 단계적으로 학습한다.

석 대표는 “병원에서 의사가 30분씩 환자를 붙잡고 인지행동치료를 해주기 어려운 현실이라면 기술이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실제 치료사가 제공하는 핵심 치료기법을 VR 속에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임상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초기 탐색임상시험에서 치유포레스트는 기존 약물치료군과 비교해 우울 증상 개선 효과는 동등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자살 위험성 감소 효과는 VR 치료군에서 더욱 뚜렷했다. 확증임상시험에서는 약물치료군에서도 일부 감소가 나타났지만 VR 치료군에서는 자살 위험 점수가 빠르게 낮아진 뒤 추적관찰 시점까지 유지됐다.

석 대표는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며 “자살 충동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견디고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치유포레스트는 올해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5월에는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됐다. 환자 만족도 조사에서도 10점 만점 기준 평균 7~8점 수준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치유포레스트 사진 마인즈에이아이 제공

◆세계 최초 바이오마커 기반 우울증 평가 솔루션 = 석 대표가 더욱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제품은 우울증 평가 솔루션 ‘마인즈내비’다. 현재 우울증 진단은 환자의 자기보고 설문과 정신과 전문의 면담이 중심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증상을 과장하거나 직무상 불이익을 우려하는 사람은 오히려 축소할 수 있는 제한점이 존재한다.

석 대표는 “정신과 영역도 혈당검사처럼 객관적 수치가 필요하다”며 “우울증 진단에 바이오마커를 접목한 것이 마인즈내비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마인즈내비는 아침 기상 직후와 취침 전 채취한 타액을 분석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 패턴을 측정한다. 여기에 △어린 시절 트라우마 △회복탄력성 △현재 우울 수준 △자살 위험도 등 다양한 심리 지표를 결합한다.

그 결과 정신과 전문의 진단과 비교한 임상시험에서 민감도 97.2%, 특이도 95.2%를 기록했다. 우울증 환자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능력과 건강한 사람을 정상으로 분류하는 능력 모두 높은 수준을 입증한 것이다.

특히 석 대표는 “현재 세계적으로도 우울증 진단에 타액 호르몬을 결합한 사례는 거의 없다”며 “정신건강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는 새로운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마인즈내비 사진 마인즈에이아이 제공

◆AI가 정신건강 진단의 수준을 바꿔 = 마인즈에이아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석 대표는 현재 확보한 심리 데이터와 바이오마커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명가능 인공지능(XAI)을 활용한 차세대 정신건강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현재는 코르티솔 중심 분석이 이뤄지고 있지만 앞으로는 신경염증, 미토콘드리아 기능 변화, 유전자 다양성 등 다양한 바이오마커를 추가할 계획이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별 우울증 발생 원인과 위험요인을 설명하는 수준까지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석 대표는 “지금은 두세개 변수만 보지만 앞으로는 10개, 20개 이상의 바이오마커를 동시에 분석하게 될 것”이라며 “AI가 어떤 요인이 해당 환자의 우울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해 주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술보다 더 큰 문제는 규제 = 그러나 석 대표는 기술 개발보다 사업화가 더 어렵다고 말한다. 치유포레스트는 식약처 허가와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받았지만 마인즈내비는 2025년 4월 식약처 허가 이후 1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신의료기술평가 과정에서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석 대표는 “전세계에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평가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며 “식약처가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했는데도 또 다른 기관에서 다시 심사를 반복하는 구조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식약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신의료기술평가 체계가 중첩되면서 스타트업들이 시장 진입 시기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석 대표는 “스타트업은 매출이 발생해야 투자도 받고 연구개발도 지속할 수 있는데 규제가 시장 진입을 늦추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시장 즉시 진입제도 확대와 평가체계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 산업의 미래는 디지털 = 글로벌 시장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초기에는 미국과 캐나다를 목표로 했지만 최근에는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한 동남아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다. 싱가포르에서 인정받으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확산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현재는 시리즈B 투자 유치를 진행하면서 현지 파트너와 사업화 전략을 협의하고 있다. 기업 임직원 정신건강관리(EAP) 시장도 주요 타깃이다. 기업 생산성과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정신건강 관리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석 대표는 정신건강 디지털의료 시장의 미래를 낙관한다. 예전에는 생명의전화에 전화했다면 지금은 챗GPT와 대화한다. 환자들이 AI와 몇 시간씩 이야기한 내용을 출력해 진료실에 가져오는 시대라는 것이다. 석 대표는 “현재 AI 상담은 보조적 역할이지만 앞으로는 주요 치료수단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신과 의사는 AI가 제공하는 치료의 질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울증은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 = 석 대표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정신건강 치료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환경이다. 석 대표는 대학 시절 친한 친구를 자살로 잃은 경험을 계기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선택했다. 이후 수많은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며 자살을 막아낸 경험은 지금도 석 대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석 대표는 “우울증은 암처럼 불치병이 아니다. 적절한 치료와 지원이 있다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 다만 환자들이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며 “디지털 기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쉽고 빠르게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석 대표는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정신건강 분야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건강 문제를 더 이상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성격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 시대가 됐다. 석 대표의 도전은 정신건강 치료가 병원 진료실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새로운 전환점을 보여주고 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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