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통합돌봄·한국형 주치의제 결합, 보건복지 핵심 과제
질환예방·건강관리 위한 일차의료체계 강화 필수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과 한국형 주치의제의 결합이 향후 보건복지정책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종한 한국커뮤니티케어협회 회장은 21일 서울 가톨릭대학교에서 열린 ‘대한가정의학회 FM EXPO 26’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대부분이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임상예방서비스와 건강관리 조정기능을 제공하는 일차의료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고령화는 의료비 증가를 동반한다.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2014년 6.5%에서 2019년 8.0%로 상승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또한 65세 이상 노인의 89.4%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25.3%는 일상생활 수행능력(ADL) 제한, 14.5%는 인지기능 저하를 겪고 있다.
◆병원 쏠림과 취약한 일차의료 = 문제는 이러한 건강 문제가 의료 영역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성질환 관리, 생활습관 개선, 재활, 방문건강관리, 돌봄서비스가 함께 제공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의료와 복지, 건강과 돌봄이 분절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한국 의료체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일차의료의 취약성이다. 한국은 선진국 가운데 드물게 ‘문지기(Gatekeeper)’ 기능이 없는 의료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환자들은 동네의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형병원 전문의를 찾아간다.
여기에 행위별 수가제 중심의 보상체계가 더해지면서 의료기관 간 경쟁은 심화되고, 환자들은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임 회장은 이러한 구조가 일차의료 기능 약화, 만성질환 관리 부실, 의료 이용 왜곡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건강보험 보장성은 65% 수준에 머물러 있고 국민 80% 이상이 실손보험에 가입하는 구조가 형성돼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농촌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인구소멸 지역의 보건지소 가운데 공중보건의사가 배치되지 못해 정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곳이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즉 커뮤니티케어를 추진해왔다. 커뮤니티케어의 비전은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포용국가’다. 핵심 축은 주거, 건강, 요양·돌봄, 서비스 연계 등 4개 분야다. 노인이 병원이나 시설로 이동하지 않고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필요한 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그동안의 선도사업은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드러냈다. 돌봄과 복지 서비스는 확대됐지만 의료 부문의 참여가 부족했다. △재택의료센터 △통합재가센터 △일차의료기관 등 핵심 인프라가 충분히 확충되지 못했고 사업 간 연계 역시 미흡했다. 통합돌봄이 성공하기 위해 의료가 중심축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돌봄 중심축 ‘한국형 건강주치의’ =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대안이 바로 한국형 건강주치의제다. 주치의제는 단순히 특정 의사를 지정하는 제도가 아니다. 환자의 건강 상태를 장기간 관리하고, 질병 예방과 만성질환 관리, 돌봄 서비스 연계까지 담당하는 통합관리 체계를 의미한다.
세계보건기구(WHO), OECD 등 국제기구들은 이미 일차의료 중심 체계 강화를 보편적 의료보장 달성의 핵심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일차의료가 강한 국가일수록 의료비는 적게 쓰면서도 의료성과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 국가들은 지난 30년간 일차의료 개혁을 추진하면서 △주치의 등록제 △문지기 기능 강화 △다학제 팀 진료 △지불제도 개편 △일차의료 서비스 확대 등을 시행해 왔다.
임 회장은 “환자 중심 일차의료(PCMH) 모델로 전환하고 가치기반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형 주치의제의 핵심은 의사 혼자 진료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학제 팀 기반 운영에 있다. 주치의가 환자의 질환과 약물, 건강상태를 총괄 관리하고 간호사·약사·영양사·사회복지사·재활치료사 등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다. 이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면 건강 악화를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이 불필요한 응급실 이용과 입원을 줄이고, 대조군 대비 약 20% 수준의 의료비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독거노인과 중증 만성질환자, 장애인, 치매 환자처럼 복합적 욕구를 가진 대상자에게는 의료와 돌봄의 통합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임 회장에 따르면 한국형 주치의제와 커뮤니티케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우선 의사·간호사·약사·사회복지사 등이 참여하는 다학제 주치의팀을 제도화해야 한다. 방문진료 수가 현실화와 위험도 기반 보상체계 구축도 필요하다. 또한 지역별 일차의료지원센터를 설치해 교육과 컨설팅, 사례관리 기능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의과대학과 간호대학 교육과정에서도 지역사회 중심 일차의료 교육을 강화하고 주치의 인증제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재원 개혁 역시 과제다. 우리나라 의료보장성을 선진국 수준 90%로 올려야 한다. 임 회장은 약가 비중이 전체 의료비의 18~20% 수준으로 높고 비급여 지출도 많은 만큼, 약가 조정과 비급여서비스의 급여화를 통해 확보한 재원을 일차의료와 통합돌봄에 투자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한 민간 실손보험 의존을 줄이고 장기요양·재활·만성질환 관리까지 지원하는 ‘제2 공적 보충형 의료보험’ 도입 필요성도 제기했다.
임 회장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나라다. 지금의 병원 중심·치료 중심 의료체계만으로는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사회적 고립, 돌봄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초고령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주치의제를 결합한 새로운 보건복지 패러다임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