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인도네시아의 자원 통제…실리적 우회로 찾아야

2026-06-26 13:00:02 게재

프라보워 정부 독점 무역 계획서 물러섰지만 가격 검증 새 장벽 세워 … 자원민족주의 대응책 필요

인도네시아 프라보워 수비안토 행정부의 급진적인 자원 통제 정책이 시장의 반발로 제동이 걸렸다. 지난 5월 20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정부령 제24호를 통해 국유투자 관리기관 다난타라 산하의 PT 다난타라 숨베르다야 인도네시아(이하 DSI)를 석탄, 팜유, 합금철 등 핵심 원자재의 유일한 수출 대행사로 지정하고, 해외거래 전체를 국가가 독점 중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간의 자율적인 무역 권한을 박탈하려던 이 수출 일원화 구상은 발표 직후 시장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며 한발 후퇴하는 모습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 전경 AFP=연합뉴스

6월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 증권거래소(Indonesia Stock Exchange) 건물에서 주가가 표시된 전광판이 보이고 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인도네시아를 신흥시장(emerging markets)에서 프런티어시장(frontier market)으로 재분류할 가능성을 검토하는 절차를 2026년 11월까지 연장했다. EPA = 연합뉴스

발표 이튿날 자카르타 종합지수(JCI)가 3.54% 폭락했고 루피아화 가치 역시 급락하며 자본유출 조짐을 보였다. 글로벌 바이어와 현지 수출업체들이 규제 리스크를 우려해 선적을 취소하면서 물류 마비 사태가 예고됐다. 프라보워 행정부는 결국 DSI가 독점적 무역상(Trader) 역할을 수행하려던 계획을 유예했다고 이달 11일자 자카르타포스트는 보도했다. 기존처럼 생산자와 바이어 간 직접 거래를 보장하되, 수출 단가와 대금 흐름을 사후에 정밀하게 통제하는 가격 감독 및 중개 역할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비효율을 피하면서, 디지털 감시망을 통해 정책적 실익을 극대화하려는 고도화된 수출 통제 모델로의 전환으로 해석된다. 겉으로는 가시적 독점 구조를 완화한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사후 세무조사와 단가 감시 같은 보이지 않는 규제를 강화한 것으로 이해된다. 결과적으로 우리 기업들은 이전보다 더 치밀하고 정교하게 공급망을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수출독점 대신 가격감시로 선회

프라보워 행정부가 DSI를 설립하려 한 근본 목적은 수출가격을 낮게 신고해 세금과 로열티를 줄이려는 원자재 수출업자들의 저가 수출송장(Under-invoicing) 관행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세수 누수를 방지하고, 역외 계열사로 이익을 빼돌리는 이전가격(Transfer Pricing)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취지이다. 글로벌금융청렴기구(GFI)에 따르면, 송장 조작과 이전가격 악용으로 인해 2016년 인도네시아는 총 세수의 6%에 달하는 65억달러를 부과하지 못했다고 추정했다.

한편, S&P 보고서는 1991년부터 2024년까지 인도네시아의 누적 저가 수출송장 규모가 무려 9080억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인도네시아 수사당국은 대형 팜유 수출기업들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과 고강도 세무조사를 단행했다. 정부가 무역 독점이라는 일차원적인 규제 대신에 세무 조사와 디지털 가격 검증이라는 훨씬 지능적인 칼을 빼 들었음을 의미한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세수 누수를 막겠다며 가격 검증을 강화했지만, 이는 해외직접투자(FDI) 유치를 성장축으로 삼는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의 가격 결정권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자유무역을 가장한 수출 통제에 가깝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평가사 역시 DSI의 가격 검증 시스템이 해외 본사와 현지 법인 간의 정상가격 거래까지 과도하게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외국인 투자 기업의 합법적인 마진 구조를 훼손하고 투자금 회수의 예측 가능성도 저해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일례로 현지 석탄·팜유 개발 기업들이 적정가격에 기반해 본사로 물량을 인도하더라도,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를 조세 탈루로 오인해 과도한 세금을 부과한다면 해당 기업들은 신용등급 강등과 현금흐름 악화라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당국이 전면적인 무역 독점 방침을 철회한 점은 다행스럽지만, 기업의 가격 책정권을 침해하는 보호주의적 가격 감시망은 향후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 인도네시아의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잠재적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저가 송장 차단 명분, FDI에는 부담

인도네시아의 DSI 체제 도입은 원자재 흐름과 이익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고도의 지능형 자원민족주의 전략이다. 인도네시아의 자원민족주의 강화와 수출통제 움직임에 대응해, 우리 역시 국익을 수호하고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하기에 앞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번 조치를 이토록 강도 높게 밀어붙이는 정치적 배경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수의 전문가는 인도네시아가 DSI를 전격 도입하고 단속을 강화한 속내로 중국계 외국인 투자 기업들의 불투명한 거래 관행의 척결을 꼽는다. 실제로 지난 5월 초, 주인도네시아 중국상공회의소(CCCI)는 프라보워 대통령에게 니켈 원광 가격 산정 방식과 채굴 쿼터에 대한 불만을 담은 공식 문서를 보낸 바 있다. 이에 대해 5월 중순 인도네시아 재무부 장관은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의 비즈니스는 철저히 보장하되, 불법 행위 및 편법 거래에 대해서는 타협 없이 강력히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와 동시에 저가 원자재 덤핑 및 국외 이익 도피를 막기 위해 세관과 경찰력을 동원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한편, 프라보워 대통령은 5월 20일 직접 의회 본회의에서 DSI 설립을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통상적으로 자원 통제나 세무 관련 제도 정비는 소관 부처인 통상부나 재무부 장관의 영역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고 통치자가 직접 전면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행보이자 정권 차원의 확고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처럼 최고 통치권자가 직접 진두지휘하는 사안인 만큼, 우리가 이번 조치에 대해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자칫 한국 기업마저 인도네시아 사법·세무 당국에 불투명한 이전가격 관행을 고수하는 자본으로 오인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급하게 대응하기보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관계의 추이를 자세히 관망하며 대응 수위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

중국 겨냥한 자원민족주의의 정치학

먼저 고부가가치 친환경 투자를 희망하는 인도네시아의 정책 기조를 협상 레버리지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친환경 배터리 가치사슬, 수소 및 고효율 탄소 저감 기술이라는 확실한 청정 카드를 쥐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역시 이 분야에 관심이 매우 높다.

둘째, 그동안 적법하고 투명한 비즈니스를 전개해 온 한국은 규범 준수와 ESG 가치를 공유하는 유사 입장국과 연대해 제도적 완충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단독 대응보다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효율적이면서도 더욱 안전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국이 일본과 연대해 “투명한 회계 및 ESG 규범을 준수하는 우수한 한·일 투자사에 대해서 DSI의 가격 불일치 통관 유보 조치를 선제적으로 면제해 달라”고 공동 요구한다면, 인도네시아 당국도 장기적인 경제적 우방을 지키기 위해 이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한국 정부는 한-인도네시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이행위원회에서 DSI 리스크 조율을 시도할 수 있다. 다만 DSI의 역할이 독점적 무역에서 세무·가격 감독으로 전환된 만큼, 협상 테이블에 올린 의제 발굴에는 신중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저가 수출송장 차단과 조세 회피 엄단을 주권 국가의 고유 권한으로 인식하고 있고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직접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CEPA·ESG로 통상 완충장치 세워야

따라서 DSI 체제 자체의 무효화를 직접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다. 더욱이 이번 조치가 특정국을 겨냥한 것으로 분석되는 만큼, 우리가 성급하게 전면에 나설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에 따라 CEPA 이행위원회에서 우리가 우선순위로 다루어야 할 과제는 우리 기업이 현지에서 겪는 까다로운 가격 심사를 면제받고, 공식 문서로 명확한 세무 기준을 확약 받는 것이다.

특히 현지 합작 투자와 제련 다운스트림 등 후방 산업 생태계 구축에 이바지한 한국 기업을 위해, DSI 기준 가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이전가격 조사 시 사전 조율 기간을 보장하는 내용을 공식 협정문에 명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적법한 기준으로 본사에 원자재와 소재를 보낼 때, 현지 정부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통관이 묶이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세무 사전승인제도(APA, Advance Pricing Agreement)와의 연동이나 성실 투자기업 우대 통관 패스트트랙의 도입을 확약 받을 필요도 있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2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