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 ‘역대급 고평가’ 경고

2026-07-06 13:00:20 게재

이익대비주가 닷컴버블 근접

빅테크서 반도체로 이동

미국 증시가 다시 사상 최고권을 향해 오르고 있지만 시장 내부에서는 정반대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겉으로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글로벌 주가지수가 완만하게 상승하며 투자심리를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밸류에이션은 역사적 고점에 가까워졌고, 인공지능(AI) 랠리의 주도주도 기존 ‘매그니피센트7’에서 반도체 기업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매그니피센트7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메타, 테슬라 즉 미국 증시를 이끌어온 7개 초대형 기술주를 뜻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팬뮤어 리버럼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의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을 기준으로 현재 S&P500의 밸류에이션이 “명백한 버블 영역”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CAPE는 최근 주가를 과거 10년 평균 이익으로 나눈 지표로, 단기 실적 변동을 줄여 장기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쓰인다. 1929년 대공황 직전 S&P500의 CAPE는 32.6배였고, 2000년 닷컴버블 당시에는 44.2배까지 올랐다. 현재 CAPE는 41배로 닷컴버블 정점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이미 1929년 수준은 넘어섰다.

문제는 주가만 비싼 것이 아니라 이익 전망도 과도하게 높아져 있다는 점이다. 팬뮤어 리버럼은 현재 기업 이익 자체가 장기 추세보다 크게 높아져 있다며, 이를 정상화하면 S&P500의 조정 CAPE가 67.6배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는 기존 역사적 버블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과거 버블은 주가가 이익보다 빠르게 오른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주가와 이익 기대가 동시에 부풀어 오른 ‘이중 버블’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이 쉽게 꺾이지 않는 이유는 AI 투자 기대가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다만 투자자들이 보는 수혜주의 성격은 바뀌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알파벳, 아마존 같은 초대형 기술(빅테크) 기업들이 AI 투자의 주인공으로 평가받았다. 막대한 설비투자를 감당할 수 있고, AI 서비스를 통해 미래 매출을 키울 수 있다는 기대가 주가를 밀어 올렸다.

올해 들어서는 의심이 커졌다.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AI 서버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이 투자가 충분한 현금흐름으로 돌아올지에 대한 검증은 아직 부족하다.

FT의 칼럼니스트 케이티 마틴은 투자자들이 이제 “AI 지출 잔치가 실제 매출로 이어질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빅테크 주가는 올해 부진한 반면,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에 ‘매그니피센트7’ 평균 수익률이 영국 국채보다도 낮았던 반면,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80%가량 올랐다.

이는 AI 거래의 중심이 ‘돈을 쓰는 기업’에서 ‘그 돈을 받는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전쟁에서 무기상이 돈을 번다는 비유처럼, AI 경쟁에서는 클라우드 사업자보다 엔비디아, 마이크론, 브로드컴, 반도체 장비·메모리 기업이 더 직접적인 수혜주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과 대만처럼 반도체 비중이 높은 시장이 글로벌 증시보다 강한 흐름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순환매가 곧 안전 신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AI 수요가 실제 생산성 향상과 매출 증가로 연결되지 못하면 반도체 주문 역시 언젠가는 조정될 수 있다. 반대로 AI 인프라 투자가 계속된다면 반도체 기업의 이익 전망은 더 올라갈 수 있지만, 그 경우 시장 전체의 밸류에이션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마틴은 AI 주도주가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시장은 AI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빅테크 기업들을 보상했다. 올해는 그 지출이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지 의심이 커지면서 반도체와 장비를 파는 기업으로 매수세가 이동하고 있다. 지수는 안정적으로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이미 불안한 손바뀜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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