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40% 급락…‘공급 쇼크’에서 ‘공급 과잉’으로

2026-07-06 13:00:26 게재

미·이란 평화협상 후 쌓여있던 중동 원유 쏟아져

중국 수요 부진에 OPEC+ 감산 여부 고민 늘어

미국과 이란의 평화합상 이후 중동산 원유가 대거 시장에 유입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락하고 있다.

놀라운 반전이다. 전쟁 당시 우려됐던 ‘공급 부족’은 ‘공급 과잉’으로 바뀌었다. 시장에서는 몇 주 전만해도 세계 원유재고가 위험할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하지만 지금 시장의 관심은 ‘원유 부족’에서 ‘누가 먼저 감산할 것인가’로 전환되는 양상이다.

◆물량 한꺼번에 풀렸지만 생산시설은 정상가동 못해 = 6일 인터콘티넨털 익스체인지(ICE) 유럽선물거래소에 따르면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3일 기준 배럴당 71.59달러를 기록했다. 고점이었던 4월 30일 120.34달러보다 40.5% 하락했다.

중동전쟁 기간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며, 전쟁 직전인 2월 27일 72.95달러 수준으로 회복했다.

최근 유가 급락의 가장 큰 배경은 미국과 이란의 평화협상이다. 양국이 6월 중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합의하면서 전쟁 기간 수출하지 못했던 6000만배럴 이상의 원유가 한꺼번에 시장에 풀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미국 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전쟁 이전 수준에 가까운 수출을 재개했고, 미국이 대이란 제재 일부를 면제하면서 그동안 거래가 제한됐던 이란산 원유도 다시 국제시장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미국이 전략비축유(SPR)를 지속적으로 방출하고 있는 데다 전쟁 기간 구축된 우회 공급망도 유지되면서 공급증가 속도가 시장 예상보다 빨라졌다.

반면 수요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전쟁 이전보다 하루 약 500만배럴 적은 수준의 원유를 수입하면서 시장의 초과 공급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JP모건은 “그동안 시장 밖에 묶여 있던 원유가 한꺼번에 복귀하면서 일시적인 공급 과잉이 발생하고 있다”며 “후르무즈를 빠져나오는 원유의 유일한 대규모 구매처는 중국뿐”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상당수 중동지역 원유 생산시설은 여전히 정상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조사에 따르면 6월 석유수출국기구(OPEC) 생산량은 2월보다 여전히 28% 낮은 수준이다.

◆원유 남는데 휘발유·디젤은 여전히 부족 = 흥미로운 점은 원유시장과 석유제품 시장이 서로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원유는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급락하고 있지만 휘발유와 디젤은 여전히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의 디젤 선물가격은 원유보다 배럴당 약 50달러 높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미국 휘발유 재고도 계절 평균을 밑돌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디젤 수출 감소와 함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운항이 아직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에너지의 파트릭 푸야네 CEO는 “중동 산유국들은 원유재고 처분을 위해 판매에 적극 나섰다”며 “반면 선주들이 호르무즈해협 운항을 꺼리면서 휘발유와 디젤은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 휘발유와 디젤 가격은 원유 가격이 배럴당 95~100달러일 때와 비슷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며 “시장 균형을 회복하기까지는 3~4개월 정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 최대규모의 국제경제포럼으로 꼽히는 렌콩트르 에코노미크에서의 발언이다.

◆중국 수요와 OPEC+ 감산이 시장 향방 결정 = 시장에서는 이제 원유 가격보다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등 주요 투자은행들은 잇따라 내년 원유시장의 공급 과잉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유럽·아시아 주요 원유 선물에서는 이미 공급이 수요를 웃돌 때 나타나는 ‘콘탱고’(Contango) 구조가 형성되며 공급과잉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정유사들이 주로 구매하는 오만산 원유는 두바이 가격보다 배럴당 4달러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고, 콩고 제노원유는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14달러 낮은 가격에도 구매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실은 초대형 유조선은 인도까지 1만마일(약 1만6000㎞) 이상을 항해했지만 2주 이상 구매자를 맞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향후 국제유가가 △미·이란 평화체제 유지 △중국의 원유 수입 회복 △OPEC+의 감산 여부 등 세 가지 변수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리스타드에너지의 호르헤 레온 지정학 분석책임자는 “앞으로의 핵심은 OPEC+가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감산에 나설 의지가 있느냐 여부”라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정상화되고 재고가 다시 쌓이기 시작하면 산유국들은 시장 점유율과 유가 방어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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