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취한 자들의 경제, 깨어 있는 자들의 비명
반도체가 뜨겁다. 방산이 뜨겁다. 주식시장은 인공지능(AI)이라는 이름의 마법에 취해 환호하고 있다. 6월 대한민국 월간 수출이 사상 최초로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반도체 수출만 448억달러, 전년대비 200% 가까이 폭증했다. 세계 4대 수출강국의 반열, 연간 수출 1조달러 시대의 개막. 대한민국 경제가 질주하고 있다고 모두가 축배를 들어도 좋다고 한다.
과연 정말 그런가.
같은 날 원·달러 환율이 1554.9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의 최약세다. 수출이 사상 최대인데 환율도 사상 최악이라는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환율은 숫자로만 머물지 않는다. 수입 원자재가격을 끌어올려 6월 물가상승률을 3.2%까지 밀어 올렸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5억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전세가는 공급부족 속에 치솟으며 서민의 주거 사다리마저 걷어차고 있다. 환율, 물가, 집값. 이 정도면 경고등이 한참 전에 들어왔어야 한다. 그런데 운전대를 잡은 이들도, 뒷좌석의 승객들도, 모두 종합주가지수라는 숫자에 취해 있다.
그 경고등 아래서 가장 먼저 쓰러지는 이들이 있다. 2024년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연간 폐업자가 100만명을 넘었다. 2025년에도 97만6000개 사업체가 문을 닫았다. 전체 폐업률 8.64%. 제조·도매·소매·음식·숙박·서비스 등 소상공인이 밀집한 6대 업종의 폐업률은 11.08%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소매업 15.4%, 음식업 15.1%로 10곳 중 1~2곳 이상이 매년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폐업을 결심하는 시점에서 매출은 이미 정상의 40% 이상이 줄어든 뒤다. 평생을 바쳐 일군 가게의 셔터를 내리는 그들의 어깨 위에는 평균 1억원이 넘는 부채가 얹혀 있다. 이것은 통계가 아니다. 비명이다.
환율 1550원이 수출 대기업에게는 환차익이지만 수입 식자재와 원부자재에 의존하는 소상공인에게는 그대로 원가상승이다. 가격을 올리자니 손님이 떠나고, 올리지 않자니 적자가 쌓인다. 늘어난 원가를 판매가에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55%에 달한다는 것은 그 진퇴양난의 크기를 말해준다. 분기당 평균 이익은 1179만원으로 쪼그라드는 사이, 은행 문턱이 높아지자 비은행권 대출은 5년 새 87.7%나 불어났다. 3~10년차 기반을 갖춘 사업체까지 무너지는 비중이 35.5%로 올라섰다. 준비없이 시작한 자만 쓰러지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이를 악물고 버텨온 자마저 무너지고 있다.
수출 1000억달러와 폐업 100만의 공존.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민낯이다. AI 반도체가 만들어낸 화려한 숫자의 이면에서 골목의 불은 하나씩 꺼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99%를 구성하고 고용의 83%를 책임지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비명이 축배의 환호에 묻히는 순간, 그 축배는 독배가 된다.
취한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1000억달러의 환호 뒤에서 셔터를 내리는 100만의 한숨을.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축배가 아니라, 깨어 있는 눈이다.
이상명 교수
기업가정신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