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촉발한 바이오안보

“악의적 합성핵산 설계·재현 막아야 한다”

2026-07-14 13:00:07 게재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미국 합성핵산 스크리닝 의무화 입법 추진 … 오픈AI·구글 딥마인드·앤트로픽도 공동 서명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이 바이오산업의 혁신을 가속하는 동시에 생물학적 위험(Biosecurity)도 키우면서 미국이 합성 DNA 스크리닝을 의무화하는 입법에 본격 착수했다. 특히 올 6월 4일 오픈AI, 구글 딥마인드, 앤트로픽, 마이크로소프트 AI 등 경쟁 관계에 있는 글로벌 인공지능 기업들이 생명공학·공중보건·국가안보 전문가들과 함께 의회에 공동 서한을 제출하며 규제를 요구했다. 인공지능 산업계가 스스로 규제 필요성을 인정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이는 자율규제 중심이던 바이오안보 정책이 법적 의무 규제로 전환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26 글로벌 바이오헬스산업 동향’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인공지능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는 가운데 악의적 행위자가 병원체를 설계 재현할 수 있는 지식 장벽이 낮아질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미국에서는 합성 핵산 스크리닝 의무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내 입법 논의의 핵심은 합성 디옥시리보핵산(DNA)와 리보핵산(RNA) 주문 과정에서 △위험 유전자 서열을 사전에 검색 △구매자의 신원 확인 △주문 기록을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전문 생물학 지식을 빠르게 제공하면서 과거 전문가만 수행할 수 있었던 병원체 설계와 재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정책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인공지능 발전이 낮춘 생물학 연구 진입장벽 = 미국 의회에 제출된 공동 서한은 인공지능 기술이 생명공학 연구를 혁신하는 동시에 악의적 사용자의 위험 병원체 설계 능력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핵심 배경으로 제시했다.

엔트로픽은 자사 클로드 모델이 아데노 관련 바이러스 기반 유전자치료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음을 밝힘과 동시에 동일 역량이 생물보안 위험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동안 합성 DNA 산업은 국제유전자합성컨소시엄(IGSC)을 중심으로 위험 서열 검사와 고객 확인 등을 자율적으로 운영해 왔다. 그러나 회원사가 아닌 업체에는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한계가 지속적으로 지적됐다.

이에 따라 공동 서명에 참여한 기관들은 합성 핵산 공급업체와 합성장비 제조업체에 대해 △구매자 적법성 확인 △위험 유전자 서열 검사 △주문 및 서열 데이터 보관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주(州)별로 다른 규제가 아니라 연방 차원의 통일된 기준 마련도 요구했다.

특히 이미 미국 의회에는 ‘생물보안 현대화 및 혁신법(S.3741)’과 ‘핵산 표준 및 생물보안법(H.R.3029)’이 발의돼 있어 이번 공동 서명이 입법 추진의 정치적 동력을 크게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가 생물무기를 만들지는 않더라도 대비는 필요 = 합성핵산 기술은 대표적인 ‘이중용도(Dual-Use)’ 기술이라고 설명된다.

동일한 기술이 mRNA 백신과 세포·유전자 치료제 개발에는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위험 병원체 제작에도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병원체 연구를 위해 박사급 전문지식과 풍부한 실험 경험이 필요했다. 하지만 최근 대규모 언어모델(LLM)이 복잡한 생물학 실험 절차를 단계별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위험성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다만 서명에 참여한 기관들은 현재 인공지능이 실제 생물무기를 제작할 수 있다는 명확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이 이미 박사급 수준 이상의 생물학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만큼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적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악의적 행위자가 병원체를 설계 재현할 수 있는 지식 장벽이 낮아질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미국에서는 합성 핵산 스크리닝 의무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자율규제에서 법적 의무로 시장 재편 = 현재 글로벌 합성 DNA 공급량의 약 80%는 IGSC 회원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이미 위험 서열 검색과 고객 확인 절차를 시행하고 있지만, 나머지 20%는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미국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기존 스크리닝 지침 역시 권고 수준에 불과해 신규 사업자나 비회원 업체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논의 중인 두 법안은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다. S.3741은 상무부가 의무 규정을 제정하는 강제 규제 방식이고 H.R.3029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를 중심으로 자발적 표준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다만 두 법안 모두 AI와 바이오 융합이 초래하는 생물안보 위험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AI 시대 새로운 규제 체계 구축이라는 방향성은 동일하다.

◆바이오안보 시장도 새 성장산업으로 부상 = 합성 DNA 스크리닝 의무화는 규제 강화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산업도 만들어낼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는 합성 핵산 공급업체다. 위험 서열 검색 시스템과 고객 검증 체계, 주문 기록 관리 시스템 구축에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이미 국제유전자합성컨소시엄 기준을 적용해온 대형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반면, 소규모 업체와 벤치탑 DNA 합성장비 제조업체는 신규 규제의 직접 대상이 되면서 시장 재편이 가속될 것으로 분석된다.

동시에 인공지능 기반 바이오안보 기술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공지능이 독성 단백질 서열을 변형해 기존 스크리닝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패러프레이즈 프로젝트’를 수행한 결과 기존 탐지 시스템을 통과하는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데이터베이스 방식만으로는 인공지능이 설계한 새로운 위험 서열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의미다. 인공지능 기반 위험 탐지 기술 수요가 크게 증가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에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도 AI 시대에 대응하는 차세대 스크리닝 표준과 평가 데이터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도 제도 정비 불가피 = 이러한 미국 내 움직임은 국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합성생물학 육성법’을 제정해 연구개발과 바이오파운드리 구축 등 산업 육성 기반은 마련했다. 하지만 합성 핵산 스크리닝과 이중용도 연구 관리 등 바이오안보 제도는 아직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 법안이 시행되면 미국 시장에 합성 DNA 제품이나 합성장비를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도 미국이 요구하는 스크리닝 인증을 사실상 충족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즉 바이오안보가 더 이상 규제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술보다 빠른 규제는 가능할까. 보고서는 합성 DNA 스크리닝 의무화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현재 위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는 이미 알려진 병원체만 탐지할 수 있어 AI가 새롭게 설계한 변형 서열까지 찾아내기 어렵다.

실제로 미국 MIT 연구진이 FBI 감독 아래 실시한 레드팀 실험에서는 38개 DNA 공급업체 가운데 36개 업체가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재구성에 필요한 DNA 주문을 걸러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염기쌍(bp) 이하의 짧은 DNA 조각은 현재 주요 스크리닝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또 다른 보안 사각지대로 지적된다. 산업계는 충분한 기술과 표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만 강화되면 연구비용 증가와 오탐지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보고서는 향후 미국이 국립표준기술연구소를 중심으로 적응형 규제와 거버넌스 샌드박스를 도입해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규제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AI와 합성생물학이 결합하는 시대에는 산업 육성과 생물안보를 동시에 고려하는 통합 거버넌스 구축이 글로벌 바이오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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