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K-증시, 그래서 괜찮아졌습니까
패착이었다.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투자 거품론, 반도체 경기 고점론이 제기되는 터에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두 배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허가한 것 자체가 화근이었다. 이 ETF는 매일 주가가 오르면 더 사고, 내리면 더 팔아 레버리지 비율을 맞춘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리밸런싱 주문이 장 마감 직전 집중된다. 게다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구성하는 두 종목, 삼전닉스 시가총액은 코스피시장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로 압도적이다.
덩치 큰 반도체 투톱이 AI 거품론·반도체 고점론을 타고 오르내리는 판에 이를 두배로 좇는 상품에 자금이 몰리니 등락 폭은 더 커졌다. 그 탓에 걸핏하면 프로그램 매도·매수 호가를 일시 정지시키는 사이드카와 주식매매 거래를 중단시키는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상승률 세계 1위인 K-증시에서 변동성 금메달 기록까지 잇따르자 외신과 전문가들의 비판과 조롱이 이어졌다. ‘카지노’ ‘게임 참가자들이 죽어나가는 오징어게임 같은 증시’(월스트리트저널), ‘코스피니라미’(‘코스피를 주시한다’는 뜻의 일본 신조어) ‘롤러코스피’(롤러코스터+코스피), 기상 이변에 빗댄 ‘증시 이변’ 등.
외신도 비판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코스피가 9000포인트를 돌파하며 새로 쓴 한국 자본시장 역사의 빛이 바랬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벗어나 ‘코리아 프리미엄’을 기대하던 시점에 되레 정부가 저평가 빌미를 제공한 형국이다. 특히 K-팝과 K-드라마, K-푸드 등이 애써 구축한 한류 이미지까지 갉아먹는 ‘오징어게임’ 증시 비판은 뼈아프다. 오발탄 정책의 후과는 컸다. 급등락이 반복되면서 손실이 누적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투자자의 투자 원금을 갉아먹는 것은 물론 코스피·코스닥시장 전반이 침체하며 삼전닉스 ETF를 사지 않은 다수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피해를 안겼다. 그 결과 주식투자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정책은 타이밍이 관건이다. 이미 발표돼 시행 중인 정책의 악영향과 후유증이 심각해 내놓는 보완 대책일수록 더욱 그렇다. 시장과 국민 재산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정책이 잘못됐다고 인식했으면 즉각 거시·금융정책 책임자인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의 ‘F4’ 공조 체제를 가동해 대책을 마련했어야 옳았다.
금융감독원은 레버리지 ETF 출시 20여일 만인 6월 18일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닷새 뒤 이찬진 금감원장은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나 후회한다”고 말했다. 한은도 7월 5일 레버리지 ETF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애초에 출시되지 말았어야 할 상품이었다. 판단 착오로 출시를 허용했으면 적어도 금감원장이 “후회한다”고 털어놓기 전에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금감원장의 후회 토로 이후에도 거의 한 달 만에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지적하자 이튿날 부랴부랴 발표했다.
그나마 보완 대책도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기본예탁금을 1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높인다고 투자자들이 거래를 포기할 정도의 장벽이 될까. 더구나 이는 당장 하는 것도 아니고 8월부터 시행된다. 1주씩 매매할 수 없고, 20주씩 사고팔게 하는 것도 장 마감에 쏟아지는 물량을 줄이거나 변동성을 낮출 장치는 못 된다.
정부는 이제라도 정책 실패를 솔직히 인정해 사과하고, 혼란의 책임을 묻고, 보다 강력한 대책을 강구해야 마땅하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운용 규모 제한, 리밸런싱 배율 축소,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단계적 상장 폐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기업의 가치와 성장성을 중시하는 ‘가치 투자’ ‘성장 투자’,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투자 분위기를 조성하자.
한국의 주식 회전율은 200.8%로 중국(296.7%) 터키(253.1%)에 이어 세계 3위다. 그만큼 ‘단타’에 치중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많다. 증시의 투기판화를 차단하려면 자신만 소외될까 두려워하는 심리에 ‘빚투’(빚내서 투자)로 화를 자초하는 행위를 삼가도록 해야 한다.
‘K-증시 명예회복’ 긴요하다
건전한 투자 분위기 조성에는 10대 청소년 시절부터 조기 경제교육을 하는 것이 긴요하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용돈 관리와 저축, 주식투자 등 생활 속 경제교육을 통해 건전한 시장질서, 기업을 보는 안목을 기르도록 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신생아 계좌에 1000달러를 넣어주고 뉴욕증시 대형주 중심 S&P500에 연동하는 펀드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한국 레버리지 상품이 주요국 반도체 주식을 흔든다는 외신 보도와 투자은행 분석이 잇따랐다. K-증시가 글로벌 증시의 위험 증폭기 역할을 한다는 오명을 빨리 씻어내야 한다. ‘9000포인트 회복’ ‘1만포인트 달성’보다 K-컬처에 걸맞은 ‘K-증시 명예회복’이 훨씬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