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재점화에 국제유가 꿈틀…‘석유최고가격제’ 어쩌나

2026-07-23 00:00: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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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수순 밟던 석유 최고가격제, 정세변화에 재조정 기로

국제유가 30% 폭등하면서 주유소 기름값 상승 전환 임박

24일 제8차 최고가격 발표 … 일단 ‘동결’에 무게 실리나

한국 경제를 옥죄는 ‘고유가 청구서’가 다시 날아들었다. 정부 셈법이 더 복잡해졌다. 민생물가 안정을 위해 도입한 ‘석유류 최고가격제’는 단계적 폐지 수순을 밟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종전 협정이 없던 일로 되고 다시 중동정세가 불붙고 있어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중동상황 악화를 강하게 우려했다. 이 대통령은 “원래 계획에 의하면 사실 더 내리든지 폐지됐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할 것 같다”며 정책 궤도수정을 시사했다.

2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오는 24일 오후쯤 제8차 석유제품 최고가격을 재조정한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유가가 올라가는 상황을 감안해 결정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구 부총리는 민생경제에 최우선 중점을 두고 경제부처가 총력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물가 안정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며 제도의 단계적 폐지보다는 연장 또는 동결 쪽에 강하게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일 청와대에서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재명 대통령,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20일 만에 30.3% 폭등한 두바이유 = 국제유가 지표는 위험 수위를 가리키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쌍방 공습이 재개되며 지난달 17일 체결됐던 종전 서명은 무의미해졌다.

브렌트유는 22일(현지시각) 기준 배럴당 91.69달러까지 치솟으며 90달러 선을 완전히 넘어섰다. 종전 직후 하락했던 71.6달러(7월 1일 기준) 대비 불과 20여일 만에 28% 이상 급등한 수치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4.58달러로 84달러 선을 돌파했고, 국내 수입 비중이 절대적인 두바이유는 82.49달러를 나타냈다. 이달 초 63달러 선까지 내려갔던 두바이유는 불과 20일 만에 30.3% 폭등했다.

국제 석유제품 가격도 통제 불능 수준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 휘발유 가격은 배럴당 114.14달러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경유와 등유는 각각 153.96달러, 149.41달러로 치솟아 두 달 전 고점 수준으로 회귀했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 가격 역시 지난달 25일 66달러에서 95달러를 돌파해 43.9% 급등했다.

◆호르무즈·홍해 ‘동시 봉쇄’ 공포 = 유가 급등의 핵심 뇌관은 글로벌 원유 수송로의 연쇄 차단 우려다. 미·이란 무력충돌로 세계 최대 석유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재봉쇄됐다. 여기에 주요 우회로인 홍해마저 막힐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예멘 후티 반군은 친미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전면적인 해상 봉쇄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사우디가 얀부항을 통해 원유를 우회 수출하던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통행이 막힐 가능성이 짙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해운 분석업체 클레플러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마저 제 기능을 잃을 경우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25%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홍해를 거쳐 아시아 시장으로 향하는 사우디 얀부항의 원유 250만 배럴의 발이 묶이면 아시아 국가들의 타격이 클 전망이다.

◆주유소 기름값 9주 만에 상승전환? = 국내 주유소 기름값도 폭풍 전야다. 아직까지 소비자가 체감하는 주유소 판매 가격은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반등은 시간문제다.

7월 3주 차 주유소 판매 휘발유 가격은 전주 대비 리터당 15.5원 내린 1877.5원으로 9주 연속 하락했다. 경유는 17.6원 하락한 1862.5원을 기록했다. 실내등유 역시 8.6원 인하된 1595.0원을 나타냈다. 지역별로는 제주가 휘발유 리터당 1914.8원으로 전국 최고가를 기록했고 최저가 지역인 대구는 1850.1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러한 하락세는 곧 멈출 공산이 크다. 주유소 판매가격보다 1주 앞서 집계되는 7월 2주 차 정유사의 석유제품별 공급가격이 이미 상승 전환했기 때문이다. 정유사의 휘발유 공급가격은 지난주보다 리터당 1.3원 상승한 1783.0원을 기록했다. 실내등유 역시 2.3원 오른 1378.4원을 나타냈다. 국제유가 상승분이 통상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 판매가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구조를 고려하면 주유소 기름값의 가파른 상승 전환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8차 석유최고가 ‘동결’ 유력 = 정부는 진퇴양난의 늪에 빠졌다. 당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2일 발표한 ‘2026 한국경제보고서’를 통해 최고가격제가 재정부담을 키운다며 단계적 폐지를 공식 권고했다.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일 경우 정유사 손실보전을 위해 천문학적 재정을 쏟아부으며 제도를 유지할 실익이 적다는 판단이었다.

실제 정부는 지난달 27일 7차 석유 최고가격을 전체 품목에 대해 리터당 150원씩 인하하며 제도종료의 명분을 쌓고 있었다. 현재 적용 중인 최고가격은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이다. 종전 서명 직후 주유소 기름값은 휘발유 1871.66원, 경유 1856.28원(23일 0시 기준)으로 종전 서명일 대비 각각 6.8%, 7.4% 안정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중동정세가 다시 악화되면서 OECD의 폐지 권고를 수용할 수도, 추가 인하를 단행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됐다. 그렇다고 8차 최고가격을 섣불리 올리기도 쉽지 않다. 최근 인하됐던 주유소 기름값이 최고가격에 맞춰 급등하게 되면 서민 물가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 안팎에서는 8차 석유 최고가격을 일단 ‘동결’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중동상황의 전개 양상을 좀 더 지켜보자는 관망세가 우세한 분위기다. 이 대통령 역시 유가 상승 상황에서 매점매석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며 엄중한 대응을 정부에 주문했다.

◆도입선 다변화로 총력 방어 =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정부는 원유수급 방어막을 겹겹이 치고 있다. 양기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홍해가 막히더라도 9월까지 원유 수급에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시장의 불안심리 차단에 나섰다.

정부에 따르면 7~8월 원유는 전년 평균 대비 110% 이상 초과 확보했다. 9월 도입 원유 역시 90% 수준을 이미 확보해 둔 상태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 전략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동산 원유 비중은 지난해 69%에서 올해 1~5월 62% 수준으로 낮아졌다. 특히 4~5월 물량 중 중동산 비중은 50~54%까지 대폭 하락했다. 미국과 알제리 등 비중동 지역 물량으로 적극 대체한 성과다.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중단했던 비축유 스와프(SWAP·교환) 제도의 재개도 적극 검토 중이다.

결국 24일 발표될 8차 석유최고가격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서민물가 안정이라는 명분과 재정 건전성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정부의 외줄 타기가 임박했다. 글로벌 원유 수급경쟁이 심화되면 세계시장의 원유가격 릴레이 인상은 불가피하다. 단기적인 최고가격제 ‘동결’이라는 미봉책을 넘어 장기화되는 중동 리스크에 대응할 근본적인 에너지 안보 청사진이 절실한 시점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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