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실패가 낙인이 되는 청소년들, 고립·은둔 막아야 한다
“어차피 안 될 텐데, 시작을 안 하면 실패한 것도 아니잖아요.” 진료실에서 만난 한 학생의 말이다. 실패를 곧 낙오로 규정하는 사회가 청소년에게 강요한 생존 전략은 고립 또는 은둔이다. 고립은 최소한의 사회관계는 있으나 도움을 청할 유의미한 인적 지지체계가 부재한 상태이고, 은둔은 방에서조차 거의 나오지 않아 사회적 관계가 사실상 끊긴 상태다.
청소년기본법의 정의에 따라 2024년 9~24세 고립·은둔형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된 첫 전국 단위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 1만9160명 중 고립청소년 12.6%, 은둔청소년 16.0%로 집계됐다. 대인관계 어려움(65.5%), 학업 관련 어려움(48.1%), 진로·직업 관련 어려움(36.8%), 가족 관련 어려움(34.3%)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복수응답). 이처럼 개인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청소년들은 고립·은둔 상태로 진입하게 된다.
신경생물학적으로 보면, 감정과 충동을 담당하는 뇌의 변연계는 상대적으로 일찍 발달하는 반면 이를 조절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은 미완성 상태다. 여기에 스트레스 반응을 담당하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이 예민하게 작동해 작은 실패나 거절에도 과도한 스트레스 반응이 일어난다. 그 결과 부정적 경험이 훨씬 크고 강한 위협으로 지각되어 뇌 회로에 강한 흔적을 남기며 장기화된다. 또한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능력이 덜 발달해 흑백논리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실패에 유독 취약한 청소년의 뇌
여기에 낮은 자존감, 사회성 부족, 반복된 실패, 가정과 학교에서의 트라우마가 더해지면 해당 청소년은 위협적인 세상을 피해 안전한 방으로 숨어버리게 된다. 이후 학습된 무기력이 서서히 만성화된다. 이들이 몰입하는 인터넷 게임이나 SNS는 뇌에서 강렬하게 도파민을 분비하게 하여 일시적 즐거움을 주지만 곧 내성이 생기면서 일상적 활동에는 흥미를 잃고, 나아가 평범한 일상마저 상대적으로 우울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사회적 분위기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는 실패를 겪은 청소년들을 고립·은둔 생활로 내몬다. 여러 번 도전하고 실패해도 안전하게 회복할 기회가 주어져야 할 시기임에도 한국 사회에서 실패는 곧 패배자의 낙인이 되어버린다. 회복탄력성을 강조하는 사회이지만, 정작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할 기회 자체는 청소년들에게도 주어지지 않는 셈이다.
고립·은둔 청년의 대다수는 청소년기부터 이를 시작했으며 청소년기 고립·은둔은 청년기 고립·은둔으로, 다시 노년기 우울·인지저하로 이어지는 생애주기 연속선상의 문제다. 조기에 개입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수록 회복 가능성은 낮아진다. 다행히 청소년기의 뇌는 학습과 경험에 따라 구조와 기능이 재구성되는 신경가소성이 뛰어나, 조기에 개입할수록 효과도 크다. 그래서 이 시기에 고립·은둔을 조기 발견해 사회로 이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분위기 변화와 조기 개입이 해법
서울시는 2023년부터 전국 최초로 고립·은둔 청년 정책을 가동했으며, 현재는 아동·청소년까지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학교 기반 조기 발견 체계, 또래관계 중심 사회기술 훈련, 부모 교육, 학습 지원 등 청소년기 특성에 맞게 차별화해 집중 지원하는 것이 고립·은둔 청소년을 돕는데 효과적일 것이다. 아울러 고립·은둔 심리전문가와 사례관리 전문가가 폭넓게 양성되어 청소년들에게 양질의 도움이 전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