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생태계로 번지는 신용위험
GPU 판매 넘어 금융까지 떠안는 엔비디아…실수요 검증 시험대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의 최대 수혜자인 엔비디아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시장은 엔비디아가 얼마나 많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팔 수 있을지에 주목했지만 이제는 고객사의 투자와 빚까지 얼마나 떠안을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7500억달러가 넘는 AI 인프라 거래 논의가 알려지자 엔비디아 주가는 5% 급락했고, 채무불이행 위험을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사상 최대폭으로 뛰었다.
사상 최대폭 급등한 앤비디아 CDS
27일(현지시간)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뉴욕 증시에서 5% 하락한 196.51달러로 마감했다. 지난 6월 5일 이후 가장 큰 하루 낙폭이다. 엔비디아는 애플에 밀려 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도 내줬다.
신용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ICE 금융데이터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5년물 CDS 프리미엄은 장중 최대 0.2214%p 오른 연 0.82%를 기록했다. 지난달 중순 0.4%를 약간 웃돌던 수준의 두 배다. 엔비디아 채권을 5년 만기 부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비용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엔비디아는 지난 주말 SK와 5000억달러 이상의 포괄적 파트너십 추진을 발표한 데 이어, 오픈AI에 보증을 서는 방안까지 보도되자 AI 과잉투자 우려가 다시 불거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엔비디아의 SK하이닉스 메모리 구매와 SK그룹의 엔비디아 슈퍼컴퓨터 구매 등을 합친 5년간 사업 규모다.
양사는 한국에 2기가와트(GW)가 넘는 AI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했다. 약 150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SK텔레콤이 건설하는 첫 AI 팩토리는 내년 가동될 예정이다.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의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설계도 지원한다. AI 데이터센터 건설로 HBM 공급이 빠듯해진 상황에서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려는 포석이다. 시장의 우려도 SK그룹과의 협력보다는 오픈AI에 대한 대규모 지급보증에 집중됐다.
엔비디아는 대규모 적자를 내는 비상장사 오픈AI에 대한 막대한 지급보증까지 검토하고 있다. 최대 2500억달러를 보증해 오픈AI가 미국 오하이오주의 10GW 규모 데이터센터에서 컴퓨팅 자원을 임차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이다. 오픈AI 지원은 고객사가 임차료나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엔비디아가 부담을 떠안을 수 있는 금융 거래다. 성사되면 엔비디아가 고객사에 제공한 지급보증 가운데 최대 규모 중 하나가 된다.
엔비디아는 같은 프로젝트에서 오픈AI가 자사 칩을 구매할 수 있도록 3500억달러를 지원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전체 사업비는 5000억달러에 이른다. 협상은 초기 단계여서 조건이 바뀌거나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엔비디아가 보증을 서면 적자 상태인 오픈AI는 더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엔비디아는 데이터센터 건설과 GPU 판매를 앞당길 수 있다. 다만 시장은 대규모 적자를 내는 비상장 기업의 채무를 엔비디아가 사실상 떠받치는 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마련한 자금이 다시 엔비디아 칩 구매에 쓰인다는 점이다. 엔비디아가 자사 제품을 살 고객에게 돈을 대고, 고객은 그 자금으로 엔비디아 GPU를 사들이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실제 AI 수요와 금융 지원으로 앞당겨진 수요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영화 ‘빅쇼트’ 속 주요 인물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투자자 마이클 버리 등은 수개월 전부터 이런 순환적 거래를 경고해왔다. 엔비디아가 올해 발표한 유사 거래 규모는 오픈AI 신규 거래를 제외하고도 5400억달러를 넘는다.
AI 생태계 전반으로 번지는 신용 연계
엔비디아는 오픈AI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업체 코어위브, 아이렌, 네비우스그룹 등에 투자하거나 사업 계약을 맺었다. 27일에는 오픈AI 전 수석과학자 일리야 수츠케버가 공동 창업한 세이프슈퍼인텔리전스에 5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AI 투자가 계속 늘어난다면 이 구조는 선순환으로 작동할 수 있다. 고객사는 데이터센터를 확충하고 엔비디아는 GPU 매출과 투자 수익을 함께 얻는다. 그러나 AI 서비스가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거나 투자 열기가 식으면 고객사의 부실과 엔비디아의 매출 둔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서로 얽힌 기업들로 위험이 번질 수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올스프링글로벌인베스트먼츠의 게리 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엔비디아의 투자와 파트너십이 장기적인 AI 인프라 확충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순환적 금융 구조를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엔비디아 자금이 자사 칩을 살 미래 고객과 데이터센터를 키우는 데 투입되면서 실제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신용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픈AI와 앤스로픽은 사업 확장을 위해 막대한 현금을 소진하고 있어 자체 신용만으로 대규모 투자적격등급 자금을 빌리기 어렵다. 엔비디아나 브로드컴처럼 신용도가 높은 기업이 보증을 서면 데이터센터 채권은 더 높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고 이자 부담도 줄어든다.
반대로 보증 기업은 고객사의 위험까지 끌어안게 된다. 고객이 사업에 실패하거나 임차료를 내지 못하면 보증 기업의 현금흐름과 신용등급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엔비디아 역시 최근 사업보고서에서 이런 계약이 단기 현금흐름을 악화시키고 신용위험 노출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채권운용사 코히어런트의 살 나로 최고투자책임자는 “AI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자본적지출 규모가 막대하고 채권시장에도 관련 물량이 쏟아지고 있다”며 “불투명한 거래 구조와 부외거래, 기업 간 관계에서 비롯된 금융 연금술이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 경제분석팀은 엔비디아가 AI 호황으로 쌓은 재무력을 생태계 확장에 활용하는 대신 고객사의 신용위험까지 떠안는 ‘위험한 게임’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초기 AI 투자 열풍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알파벳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의 풍부한 잉여현금흐름이 뒷받침했지만, 투자 규모가 급팽창하면서 적자상태인 오픈AI와 앤스로픽은 엔비디아 같은 외부 후원자의 신용보강에 의존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로이터는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의 AI 투자가 2026년 875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엔비디아의 보증이 AI 인프라 확장을 앞당기는 동시에 고객사의 신용위험을 엔비디아 쪽으로 옮기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비슷한 방식은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브로드컴은 올해 초 앤스로픽의 AI 인프라 확대를 돕기 위해 35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금융 거래 대부분을 보증했다. 브로드컴의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차입 비용이 낮아졌고 해당 채권은 비공개 평가에서 투자적격등급 중간 수준을 받았다.
구글도 앤스로픽이 데이터센터 5곳에 지급할 임차료를 보증해 사실상 350억달러 규모의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소프트뱅크는 오는 10월까지 오픈AI에 약 65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규모 중 하나인 400억달러의 브리지론 계약도 체결했다.
AI 경쟁이 더 좋은 모델과 더 많은 반도체를 확보하는 싸움에서 누가 더 큰 자금과 신용을 제공할 수 있느냐의 경쟁으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기업이 고객에게 보증을 제공하고, AI 기업은 빌린 돈으로 데이터센터를 확충하며, 금융회사는 대형 기술기업의 신용을 믿고 채권을 사들이는 구조다.
만딥 싱 블룸버그 산하 시장분석기관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는 AI 인프라 구축이 현재 속도로 이어지기를 원한다”며 “투자가 단 6개월만 멈춰도 엔비디아에는 좋지 않은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엔비디아의 투자는 기업들이 최종적으로 조달해야 할 자금의 극히 일부라며 “순환금융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해왔다.
AI 투자의 다음 관문은 수익성
엔비디아의 금융 지원이 곧바로 부실이나 수요 조작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객사의 자체 현금흐름보다 엔비디아의 보증과 차입 지원에 기대는 투자가 늘어날수록 고객사의 사업 위험이 엔비디아의 신용위험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커진다.
시장은 이번 7500억달러 거래 논의와 CDS 급등을 계기로 AI 투자 경쟁의 다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천문학적인 투자비를 실제 수익으로 회수하고, 불어난 신용위험까지 감당하며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느냐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