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심리 급랭…코스피, 금융위기보다 큰 폭락
AI 투자 지속성·중국발 경쟁 심화 우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쏠림 완화 관건
코스피가 10% 이상 급락하며 장중 6000선마저 무너졌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폭락을 웃도는 낙폭이다. 이달 들어 코스피에서만 서킷브레이커(20분간 매매 중단)는 3번 발동됐다. 사이드카(5분간 프로그램 매매 중단)는 19거래일 중 13거래일이나 나타나는 등 초대형 위기 상황에서만 겪게 되는 폭락이 자주 발생했다. 시장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수익성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중국발 AI 경쟁 심화 우려가 맞물리며 반도체 투자심리가 급랭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아직도 AI 관련주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은 긍정적이지만 뚜렷한 반등 재료가 확인되기 전까지 높은 변동성 장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수급 변동성을 자극했던 단일종목 레버리지의 쏠림현상 완화 여부도 관건이다.
◆역대 4번째 낙폭=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일 코스피는 10.84% 급락하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10.57% 폭락을 웃도는 낙폭을 기록했다. 이는 ①미국·이란 전쟁(-12.06%) ②9·11 테러(-12.02%) ③IT 버블 붕괴(-11.63%)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큰 일일 하락률이다.
이날 급락은 엔비디아 순환 금융 우려와 중국발 공급 확대 등 AI 투자 지속성 및 경쟁 심화 우려가 커지면서 반도체 투자심리가 급격히 냉각한 탓으로 분석된다.
엔비디아가 오픈AI 데이터센터 투자와 관련해 2500억달러 규모의 금융 보증을 제공한다는 소식은 AI 생태계 내 순환 금융 우려를 재차 부각시켰다. 대규모 투자가 실제 최종 수요보다 과도한 수요 전망에 기반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확산되면서 AI 투자 사이클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엔비디아의 신용위험이 높아진 점도 투자자들에게 악재로 작용했다. 엔비디아의 7500억달러 규모 AI 관련 투자 계획 등에 대한 우려로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등한 것이다.
중국이 자체 개발한 이머전(침지) 방식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생산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장비 자립도를 높이고,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를 비롯한 중국 메모리 업체의 증설 병목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심을 자극했다. 중국의 메모리 생산능력이 확대될 경우 공급자 우위의 구조가 약화되고,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유입된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및 노광장비 분야 육성 소식으로 투자심리가 악화됐다”며 “현재로서는 중국 업체들의 심자외선(DUV) 장비가 ASML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나, 노광장비의 경우에는 반도체 경쟁을 일부분 심화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리서치회사 퓨처럼그룹은 “코스피가 사실상 반도체 지수화되면서 미국과 한국 간 상관관계가 상승했다”며 “한국 증시는 더 이상 미국 기술주 대비 분산투자 효과를 제공하지 못하고 지수 절반이 단일 경기순환 테마(반도체)에 연동돼 있어, 하이퍼스케일러 자본적지출(CapEx) 둔화 시 한국 주식시장이 여타국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반도체 주가 약세 = 전일 아시아 주식시장은 일본(-4.0%), 대만(-4.7%) 등 IT 업종 비중이 높은 시장을 중심으로 전반적인 약세를 나타냈다.
뉴욕증시에서도 반도체 업종은 강한 매도세가 이어지며 급락 흐름을 지속했다. 미국 상장 30개 주요 반도체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이날 4.5% 급락하며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마이크론이 8.9% 급락한 것을 비롯해 AMD(-8.2%), 인텔(-5.9%), 퀄컴(-4.2%), 마벨 테크놀로지(-7.8%)도 낙폭이 컸다.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는 8.98% 하락하며 3거래일 연속 급락세를 이어갔다. SK하이닉스 ADR은 공모가(149달러) 대비 약 13% 하락한 상태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일본 및 대만 반도체 주가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하이퍼스케일러의 자본지출과 관련된 수익성 우려와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 상장으로 불거진 중국 반도체 굴기 공포 심리, 미 연준의 금리인상 우려 등으로 인한 국채금리 상승 등이 반도체 주가 급락의 주된 요인”이라며 “여기에 가상화폐 시장까지 가세한 반도체 주가 관련 레버리지 시장의 급격한 팽창이 오히려 반도체 관련 주가의 변동성을 높이는 동시에 주가 하락의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레버리지 ETF 규제 효과 나타날까 =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향후 증시 반등의 트리거로 △실적 시즌을 통한 이익 신뢰성 회복 여부 △하이퍼스케일러 업체들의 수익성 개선 여부 등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현 연구원은 “국내 반도체 수출 지표 호조 및 국채금리 안정에 기반한 하이퍼스케일러의 CDS 프리미엄 상승세 둔화 등이 투자심리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국내 고유의 수급 변동성을 자극했던 단일종목 레버리지의 쏠림현상 완화 여부는 관건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숏감마(일일 리밸런싱에 따른 인위적인 추세 강화 부작용)가 여타 증시 대비 국내 증시의 변동성 출력을 높였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운용자산(AUM) 규모가 28일 현재 약 7조원 수준으로 최고 17조원에서 감소하고 있다. 코스피 거래대금 내 비중은 23.9%로 고점이었던 43.5%에서 갈수록 급감하는 중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거래대금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추후 단일종목 레버리지의 영향력이 계속 줄어든다면 국내 고유의 변동성 리스크와 수급 꼬임 현상은 이전보다 덜해지고 증시 전반에 걸친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코스피 강보합 … 코스닥 또 하락 = 한편 29일 오전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 지수는 전일 대비 65.45포인트(1.09%) 오른 6089.11로 출발했다. 하지만 오전 9시 36분 현재 코스피는 전날보다 26.24포인트(0.44%) 오른 6049.90으로 상승 폭이 줄어들며 강보합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 시각 현재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3178억원, 기관도 7065억원을 순매수 중이다. 개인투자자들은 홀로 1조388억원 순매도 중이다.
같은 시간 코스닥 지수는 8.49포인트(1.20%) 떨어진 697.36이다. 713.71로 개장 이후 하락 전환해 현재 700선을 밑돌고 있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393억원과 398억원 순매도, 개인만 홀로 762억원 순매수 중이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