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칼럼
쌀이 된 산업, 철과 반도체
산업의 발전은 핵심 자원과 기술•자본이 결합해 성패를 가른다. 한국이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이다. 제조업을 살리는 쌀은 철이다. 철이 없으면 공장을 지을 수 없다. 공장이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디지털 혁명과 인공지능(AI) 시대는 반도체가 중심이다. 반도체가 스마트폰,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모든 디지털 기기를 작동케 한다. 한국이 반도체로 디지털 혁명 시대를 주도할 기회 앞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2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인들과 서밋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인류의 공동 발전을 위한 ‘AI 기본사회비전’을 발표했다. 동시에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알리는 ‘대체불가 대한민국’ 비전을 공유했다.
그 광경을 보며 감동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세계는 지금, 반도체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더 엄중하게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할 때다. 세계가 언제까지 한국의 선도적 위상을 지켜보고만 있을까.
철과 반도체, 두 소재를 중심으로 한국의 산업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970년대 초,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제조업을 일으켰다. 철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그 시작은 1973년 박태준 회장이 주축이 된 포항제철 설립이다. 제철의 원료인 철광석을 100% 수입에 의존하는 환경에서 무모한 도전이었다. 당시 세계은행조차 사업성을 불신하며 반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이었다.
철이 생산되자 자동차산업이 성장했다. 조선업이 세계를 석권했다. 기계와 건설산업도 함께 발전했다. 철은 모든 제조업을 연결하는 혈관이다. 철이 산업을 살리는 생명의 쌀임을 증명했다. 이제 한국의 철은 쌀을 넘어 ‘산업의 산소’로써 제조업의 생명선이다.
반도체는 국가 공동체 운명 좌우할 자산
21세기는 반도체 시대다. 디지털 경제와 AI, 반도체가 산업의 쌀을 대신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는 1983년 삼성 이병철 회장의 결단으로 오늘을 만들었다. 경제발전사에서 또 하나의 큰 획을 그은 선택이었다.
당시, 반도체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 기업의 독무대였다. 막대한 생산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 비용을 후발국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그러나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와 꾸준한 기술 축적으로 오늘의 반도체 신화를 남겼다. 한국 반도체 신화는 ‘변화와 혁신’으로 쓴 역사다.
‘창조적 파괴’로 유명한 현대 경제학의 거장 조지프 슘페터는 ‘혁신’만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 주장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이 기존 산업을 대체하는 혁신을 만났을 때 경제를 한단계 도약시킨다”고 했다. 한국 반도체가 바로 혁신의 상징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기술, 우수한 인력,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기술 축적,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변화와 혁신을 가능케 했다.
그 결과, 한국 반도체는 기술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반도체는 두뇌이자 뇌세포다. 스마트폰 한대에는 수백개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AI 서버에는 수만개의 고성능 반도체가 장착된다. 전기차 한대에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다.
산업의 가치사슬 전체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와 첨단 패키징, 차세대 메모리, 양자반도체, 전력반도체가 새로운 승부처다. 기술 초격차를 지키기 위해서는 포기할 수 없다.
반도체는 끊임없는 투자의 연속이다.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기술, 연구개발 역량, 우수한 인재, 촘촘한 공급망이 결합된 산업 클러스터다. 경쟁력은 혁신 능력과 산업 생태계에서 나온다. 이는 다른 국가가 단기간에 모방하기 어려운 경쟁력이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세계는 AI 반도체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AI로 펼쳐질 새로운 문명의 미래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도 결국 반도체와 AI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또한 고성능 반도체의 설계와 개발, 확보 여부에 성패가 달려 있다.
과거에는 석유가 국제정치를 움직였다면 지금은 반도체가 세계질서를 좌우한다. 경제 안보와 국가안보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이제 반도체는 디지털 시대 국가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할 핵심 전략자산이다.
미래 위한 ‘도광양회’의 시간 필요한 때
세계는 언제까지 한국의 독주를 손 놓고 바라만 보지 않을 것이다. 반도체와 AI를 축으로 새로운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한다. 혁신국가로 도약을 위해서는 더 치밀하고 내실 있는 노력이 중요하다.
메모리 반도체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한국이 설계하고 주도하는 반도체 AI 생태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그것을 위해 조용히 미래를 준비하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간이 필요하다. 미래를 내다보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번영은 준비된 자의 몫이다. 준비 없이 한국의 시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