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증시 ‘긴급 F4’…“단기 지수방어 넘어 구조개혁 속도내야”
정부 29일 저녁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 개최 … 증안펀드 투입 준비
“시장 연착륙 미세조정 이어 거버넌스 개혁·밸류업 실효성 제고 필수”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와 지정학적 리스크, 대외 불확실성 증폭으로 최근 국내 주식시장이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며 시장 전반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단기간에 급락세를 기록하자 정부와 금융당국은 긴급 현장점검에 나서는 한편 시장 안정화를 위한 대응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신속한 구제책 마련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단기적인 지수 방어용 유동성 공급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국 증시의 구조적 약점(코리아 디스카운트)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정책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 개최 = 30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저녁 재경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 합동으로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는 구윤철 부총리와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등 F4 외에도 하준경 청와대 경제성장수석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최근의 증시 하락이 대외충격과 시장 내 심리위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또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적극 가동하기로 뜻을 모았다.
정부는 우선 24시간 종합 현장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해 주식·외환·채권시장 동향을 실시간 밀착 점검하기로 했다. 시장불안이 과도하게 확산될 경우, 이미 조성되어 있는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를 즉시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 태세를 갖추기로 했다. 더불어 금융기관의 과도한 반대매매로 인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 신용공여 담보비율 유지 의무를 한시 완화하는 방안 등 가용한 단기 안정화 조치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불법 공매도와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엄단 의지도 재확인했다. 금융당국은 변동성이 확대된 틈을 타 시장교란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밀착감시를 강화하고, 수급왜곡 현상을 방지해 개인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거래가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되자 개인별 투자 한도 설정 등으로 총량 관리에도 나선다. 당국은 개인별 투자한도를 설정 범위와 관련해 ‘총투자 금액의 20% 이내’를 예시로 들었다. 아울러 홍콩의 가변 레버리지 등 배율 사례 등을 감안해 긴급한 상황에서 당국이 시장 안정화 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들 조치는 즉시 추진한다. 당국은 앞서 단일종목 레버리지에 투자할 때 갖춰야 할 요건인 기본예탁금을 1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증액하기로 했으며 이를 3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중장기 체질 개선 병행돼야” = 경제금융 전문가들은 29일 발표된 정부의 신속한 시장 점검과 단기 대응 방향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단계별 정책 로드맵이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가 급락 국면에서는 무엇보다 시장의 심리적 불안을 차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정부가 즉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신속하게 시장안정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적절했으나 실제 유동성 공급 조치가 필요할 경우 실기하지 않고 즉각 집행할 수 있도록 준비된 카드의 실행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금융당국의 세심한 미세조정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영익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는 “최근의 폭락은 대외 변동성에 신용융자 잔고 축소 등 내부 수급 악재가 맞물린 결과”라며 “반대매매 완화 조치나 증안펀드 가동 준비와 더불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신속한 시장 안착 지원책이 실행돼야 주가 하락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단기 안정화 조치 이후 이어질 중장기 대응책에 대해서는 한국 증시가 근본적인 체질개선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단순히 증시가 떨어진다고 해서 돈을 풀어 지수를 떠받치는 임시방편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해 온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실질적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환원 확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제지원을 구체화하고 이사회의 주주 충실 의무 명시 등 기업 거버넌스 개선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 증시가 글로벌 충격에 유독 취약한 이유는 주주 권익 보호 부족과 투명성 이슈 등 구조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정부가 기업 거버넌스 개혁과 세제 개편 등 구조 개혁의 신호를 명확히 전달해 외국인과 장기 투자자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수 방어’에서 ‘시장 선진화’로 = 향후 정부의 대응 방향은 크게 2단계로 수립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1단계 단기 대응에서는 29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논의된 대로 △24시간 모니터링 강화 △증안펀드 투입 준비 △반대매매 유예 및 담보비율 유연화 △불공정 거래 엄단 등을 통해 시장의 단기 비이성적 투매를 차단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이어 2단계 중장기 대응에서는 단순한 시장 구제 관점을 넘어 체질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상장법인의 지배구조 개선 △소수주주 권익 보호 △실효성 있는 세제 혜택 기반의 밸류업 프로그램 안착 △연기금의 국내 증시 비중 유연화 등 시장의 체질을 바꾸는 정책이 신속히 이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재경부 핵심관계자는 “29일 긴급회의를 시작으로 시장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단기 시장 안정 조치는 물론 한국 증시의 장기적 체질 개선을 위한 정책 과제들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