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반도체 최악의 날 무엇을 할 것인가
코스피가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등 초유의 혼란을 겪는다. 반도체 업황 고점 논란, 중동전쟁의 지정학적 리스크, 미국채 금리상승, 미국 기술주의 약세가 한꺼번에 겹친 영향이다. 그러나 이번 증시 급락을 단순한 투자심리 악화로만 해석해서는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시장을 크게 흔든 변수에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예상보다 빠른 추격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중국 최대 D램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상하이 증시 상장과 함께 중국 본토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성공이 아니라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여기에 중국이 자체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생산에 성공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글로벌 반도체 경쟁 구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위기감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됐다.
중국 반도체 굴기 시장 공포 더 키워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중국 메모리 산업은 한국을 위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고 있다. 2016년 설립된 CXMT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장악해 온 D램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역량을 집중하는 사이 중국은 범용 D램 시장을 저가 공세로 파고들었다.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생산량을 빠르게 확대하고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애플이 중국 판매용 제품에 사용할 메모리 공급을 놓고 CXMT와 협의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시장의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의 경쟁 방식이다. CXMT는 민간기업이라기보다 국가 프로젝트에 가깝다. 정부 보조금과 국가반도체펀드, 지방정부 지원, 알리바바·텐센트·샤오미 등 민간 빅테크의 투자가 결집된 대표적인 전략산업이다. 이번 상장으로 확보한 대규모 자금 역시 생산능력 확대는 물론 HBM 등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 산업 역량이 총동원되는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지나친 공포는 경계해야 한다. CXMT가 단기간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HBM과 첨단 공정, 수율, 첨단 패키징 기술에서는 여전히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중국산 DUV 장비 역시 생산 규모와 기술 수준을 감안하면 아직 ASML의 극자외선 노광장비(EUV)를 위협할 단계는 아니다.
이번 주가 급락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가 실제 경쟁력보다 과도하게 반영된 측면도 있다. 투자자들이 패닉셀에 나설 이유는 아니다. 그러나 ‘아직은 괜찮다’는 안도감 역시 위험하다.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는 이미 중국의 추격이 현실이 되고 있다. 지금처럼 초호황의 성과에 안주한다면 한국의 경쟁우위는 예상보다 빨리 약해질 수 있다.
1980년대 일본 반도체산업은 최절정이었다. 일본전기(NEC) 도시바 후지쓰 등 일본 기업은 압도적 기술력과 낮은 가격을 무기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했다. 수십 년간 이어질 것으로 여겨진 일본 반도체 전성기는 미국정부의 개입으로 막을 내렸다. 지금은 한국이 같은 시험대 앞에 서 있다.
40년 전 일본 반도체의 몰락을 기억해야
이제 필요한 것은 두세 발 앞선 기술개발 투자다. HBM 이후의 초고성능 메모리, AI 반도체, 첨단 패키징, 차세대 소재와 장비 분야에서 기술 초격차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기업의 노력과 함께 정부도 첨단 인재 양성, 연구개발 투자, 규제혁신을 포함한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산업구조도 보다 균형 있게 바꿔야 한다. 반도체가 성장과 수출을 견인하는 구조 덕분에 큰 성과를 거뒀지만, 반대로 반도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면서도 AI 소프트웨어,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에너지, 방산 등 새로운 성장축을 함께 키우는 산업 다변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번 증시 급락은 일시적인 시장 충격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의 추격은 일시적인 악재가 아니라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구조적 변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의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산업 경쟁력의 본질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반도체 패권경쟁은 이미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총력전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한국이 지금의 초격차를 지켜낼 수 있을지는 오늘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안찬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