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리동결에 시장 불안↑…주식·채권 동반 급락
다우 15개월 만에 최대 ↓… 미국채 30년물 2007년 이후 최고치
채권시장, 어정쩡한 워시 의장에게 인플레이션 대응 나서라 경고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동결하자 시장 불안이 커졌다. 인플레이션에 뒷북 대응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촉발되면서 미 금융시장에서 주식과 채권 가격이 동반 급락하고, 국제 금 가격이 상승했다. 다우지수는 15개월 만에 최대 낙폭으로 떨어졌다. 미 국채 30년물은 2007년 이후 최고치로 급등했다. 채권시장이 어정쩡한 케빈 워시 연준 의장에게 적극적으로 인플레이션 대응에 나서라고 경고하는 모습이다.
◆인플레 재점화 공포 = 29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현 3.50~3.75%로 동결하자 미 장기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이날 미 동부시간 오후 20시 49분 현재 30년 만기 미국채 수익률은 5.21%에서 거래 중이다.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7월 이후 1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10년 만기 미국채 금리는 4.68%,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미국채 금리는 4.27%로 장단기물 모두 일제히 상승 중이다.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일보다 1153.18포인트(-2.19%) 하락한 5만1594.14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일대비 112.63포인트(-1.52%) 내린 7316.15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433.97포인트(-1.74%) 내린 2만4442.94에 각각 마감했다.
다우지수는 이날 하락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정책 발표로 시장이 크게 흔들렸던 지난해 4월 이후 15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나스닥 상장 100개 종목으로 구성된 나스닥100 지수는 이날 1.8% 하락하며 6월 고점 대비 11% 넘게 하락해 조정 구간에 진입했다.
연준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했다. 베스 해맥, 닐 카슈카리, 로리 로건 등 3명이 금리를 0.25%p 인상할 것을 주장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이날 회견에서 ‘Watchful Thinking’ 기조를 강조하며 경제지표를 종합적으로 확인한 뒤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현재를 ‘Watchful Waiting(단순히 기다리는 시기)’이 아니라 ‘Watchful Thinking(신중하게 생각하며 상황을 주시하는 시기)’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에 김유미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물가 둔화세가 지속될 경우 올해 기준금리는 현 수준에서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며 “다만 연준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감을 유지하면서 기준금리보다 시장금리를 활용해 금융 여건을 긴축적으로 유지하는 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향후 연준의 통화정책과 금융시장 방향을 결정할 핵심 변수는 미국 물가 지표의 흐름이며, 물가 둔화세가 지속될 수 있는지가 시장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성 키운 워시 연준 의장 = 이번 FOMC 회의 성명서는 전 회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 경제가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특히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하지 않겠다는 최근의 커뮤니케이션 기조를 이어가며 현재 경제 상황을 평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워시 의장의 기자회견도 큰 틀에서는 이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2% 물가 목표 달성을 최우선 과제로 재확인했지만, 이번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특히 금리 인상을 주장한 세 명의 위원에 대해서도 “그들의 논리는 직접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관련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 압력과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단발성일지라도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금융시장과 연준 내부의 목소리를 워시 의장은 애써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라며 “연준의 통화정책과 관련된 테스크포스 작업이 마무리되는 내년 1월까지 물가가 급등하지 않는 한 워시 의장은 금리인상 압력을 무시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두 차례의 FOMC 회의 기자회견 내용을 종합해 보면 통화정책 측면에서 워시 의장은 어정쩡한 스탠스를 유지할 공산이 높아 보인다”며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미 연준의 물가 목표치 달성을 강하게 강조했지만 물가에 대해 다소는 유연한 입장을 취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매파적 입장을 취하면서 비둘기적 모습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워시 의장의 어정쩡한 통화정책 스탠스가 유지되는 동시에 불확실성 리스크가 확대되고, 이 가운데 국채 금리가 추가 상승할 수 있음이다. 오락가락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이란 정책으로 유가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음은 물가 불확실성 확대와 함께 국채 금리의 추가 상승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 또한 ‘현재를 사는 FOMC’라는 보고서에서 “워시 의장은 미래 전망보다 현재 상황에 주력하고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 없이 금융 상황을 긴축적으로 돌림으로써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것은 10년물 금리 상승이나 주가 하락을 통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의 이런 해석은 금융 상황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향후 금리전망 엇갈려 = 국내 증권가에서는 향후 미국의 금리 경로를 두고 엇갈린 전망을 내놨다. 연준 위원 3명이 금리 인상 소수의견을 낸 데다, 케빈 워시 의장의 발언까지 시장이 곱씹으면서 해석이 갈리고 있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회의를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매파적 동결”로 규정했다. 연준이 보낸 신호를 해석하며 채권시장도 이례적인 반응을 보였다. 통상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되면 단기물 금리가 오르고, 향후 물가 안정 기대에 장기물 금리가 하락하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이날 미국 국채금리 수익률은 단기물 금리가 하락하고 장기물 금리가 상승하는 반대의 흐름을 나타냈다.
이런 장기금리 상승을 두고 증권가는 워시 의장의 의도라고 해석했다. 연준이 직접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시장금리가 스스로 오르면서 대출과 투자를 위축시키는 ‘긴축 효과’를 대신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는 전형적인 채권 자경단의 움직임이며, 워시가 이를 유도하고 있다는 판단”이라면서 “위시는 연준이 움직이지 않고도(No Hike) 장기 실질금리가 상승해 긴축 효과를 낸다면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는 정치적 압박을 피하면서도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워시가 판단한 묘수”라면서 “긴축의 주체가 시장이 되게 함으로써 향후 7월 고용, 물가 데이터 확인 전까지 충분한 긴축효과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견 속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도 엇갈렸다. 한화투자증권·NH투자증권·키움증권 등은 연내 금리 동결을 예상했고, 하나증권은 올해 9월과 내년 3월 두 차례, 한국투자증권은 9월 인상 개시를 유력하게 보되 최악의 경우 내년 상반기까지 세 차례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