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대법에 산재 처벌강화 요청

2020-06-04 12:33:38 게재

이재갑 “양형기준 높여야”

김영란 “적극적 논의하겠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형위원회를 방문해 김영란 양형위원장에게 양형기준 조정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 뒤 기념촬영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잇단 산재사망사고가 줄지 않는 주요요인으로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지적이 높은 가운데 정부와 사법부가 산재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3일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만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양형기준 을 높여달라고 요청했다.

이 장관은 “산안법 위반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개인의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와 달리 안전관리체계 미비 등 기업범죄의 성격을 가진다”며 “산안법 위반 사건을 독립 범죄군으로 설정해 양형기준을 논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내년 4월 26일로 끝나는 제7기 양형위원회에서 산안법 양형기준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답변했다.

지난 4월 29일 경기 이천 물류창고 산재사고를 계기로 12년 전 판박이 사고인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참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자 고용부가 이를 수용해 지난달 4일 양형위원회에 산안법 양형기준에 대한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그간 대형 인명사고 등 중대재해가 반복해 발생해도 기업이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적극적인 안전조치를 하도록 유도하기에는 형량이 낮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고용부의 2018년 ‘산안법 위반사건 판결분석 연구’에 따르면 2013 ~2017년 산재에 따른 노동자 상해·사망 사건 피고인(자연인) 2932명 가운데 징역·금고형을 받은 사람은 86명(2.9%)에 불과했다.

징역·금고형은 ‘6개월 이상 1년 미만’이 50.0%를 차지했고 벌금형의 경우 평균 금액은 자연인 420만원, 법인 448만원에 그쳤다.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문제의식은 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해 8월 일반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산안법 위반사건의 제재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양형기준인 ‘징역 6개월~1년6개월’에 대해 58.9%가 ‘적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 중 91.7% 는 ‘양형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사업주의 안전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 벌금 700 만원을 선고한 양형에 대해 75.7%가 ‘적정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 89.4%는 더 중하게 형을 부과해야 한다고 답했다. 최근에는 반복되는 산재사망사고를 막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사건을 계기로 28년 만에 산안법이 전면 개정돼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했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개정 산안법에는 사망사고시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대법원 양형기준에는 개정 산안법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현재 법관이 형량을 정할 때 판단기준으로 삼는 양형기준에는 산안법 위반은 ‘과실치사상 범죄군’으로 분류해 특별한 가중·감경 사유가 없으면 일반 형사범죄인 ‘업무상 과실·중과실치사’(기본 8월~2년)보다 낮은 형량(6월~1년 6월)을 정하도록 권고한다. 더욱이 사망사건 이외의 산안법 위반 범죄는 별도의 양형기준 자체가 없다.

또한 이 장관은 산안법 위반시 벌금형에 대한 양형기준 신설도 요청했다. 이 장관은 “(산안법을 위반한) 기업에 대한 제재 수단은 벌금형이 유일하므로 이에 대한 적정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정 산안법에서 법인 벌금형이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크게 높아진 점을 고려해 벌금형에 대한 양형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대형 인명사고나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가 난 경우 등에는 엄정히 처벌해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제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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