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재정 한다더니 '총선용' 부자감세 정책 남발

2024-01-04 11:21:12 게재

상위 1% 세금 줄여주는 주식양도세 완화 이어 금투세 폐지 추진

약 60조 세수펑크 상황에서 두 정책으로 적어도 연 2조 세입감소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키로 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했다. 여야합의를 깨고 주식양도세 기준을 완화하면서 부자감세 논란이 채 마무리되지도 않은 시점이다. 두 정책 모두 상위 1%의 고액 자산가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내용이다.

정부는 "주식시장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개미(일반투자자)들을 위한 것"이란 명분을 폈다. 하지만 고액자산가들이 얻을 이익(절세효과)은 현실이지만, 일반 투자자들이 얻을 이익을 간접추정에 불과하다. 두 정책 모두 여야합의를 깬데다, 사회적 논의도 배제한 '일방정책'이란 점에서도 우려된다.

건전재정을 내세운 윤석열정부 정책기조와 배치된다는 점도 문제다. 부자감세 정책 과용은 곧 '서민복지예산 감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미 60조원 가까운 세수결손이 예고된 가운데 큰 짐을 더 얹는 꼴이다. 두 정책만으로 최소 연간 2조원대 추가 세수부족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정부가 감세정책을 줄줄이 내놓는 것은 선거개입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무리수 두는 정부 명분은 = 정부 논리는 두 가지다. '금융투자 활성화를 통한 국민 자산 증식 뒷받침'과 '한국 증시 저평가에 따른 일반 투자자 피해 최소화'다.

지난 2일 금투세 폐지 방침도 윤석열 대통령이 공식화했다. 윤 대통령은 "증시는 국민의 자산 축적을 지원하는 기회의 사다리다. 계층의 고착화를 막으려면 금융투자 분야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내년부터 주식·채권·펀드 등에서 얻은 총수익이 연간 5000만원을 넘으면 수익의 20%(3억원 초과분은 25%)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금투세를 도입 예정 1년 전에 거부한 것이다.

임명장 받는 최상목 부총리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부총리·장관급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문제는 금투세 폐지로 이익을 얻을 대상이 투자자 중 상위 1%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4일 기획재정부 분석에 따르면 금투세 과세 대상 추산자는 약 15만명이다. 개인투자자가 1400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1.07% 수준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초고소득자에 대한 대규모 감세 혜택"이라고 지적했다.

◆양도세 감세 대상자 9200명 불과 = 정부가 여야합의를 깨고 강행키로 한 대주주 양도세 완화 정책 역시 수혜자는 고액자산가다. 이 정책을 시행하면 과세 대상자는 70% 가까이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다. 10억원 이상 50억원 미만 주식을 보유한 '주식 부자' 9200여 명이 혜택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부자 감세' 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예탁결제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주식 양도세 과세 기준을 현행 10억원에서 50억원 이상으로 높이면, 대주주는 1만3368명에서 4161명으로 9207명(68.9%)이 줄어든다.

지난해 말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에서 한 종목 주식을 10억원 이상 보유한 대주주는 1만3368명, 50억원 이상 보유한 사람은 총 4161명인 점을 토대로 계산한 결과다. 다만 2개 이상 종목에서 10억 원 넘게 가진 동일인도 포함돼, 실제 대주주는 이보다 적을 수 있다.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은 2000년 종목당 100억원을 시작으로 50억원(2013년)→25억원(2016년)→15억원(2018년)→10억원(2020년)으로 강화돼왔다. 주식 거래로 부를 축적하는 이들에게 세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문제는 정책 효과다. 정부는 대주주 기준 상향 시 연말 시장 안정 효과는 어느 정도인지, 개미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물론 세금 감면이 어느 정도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추진 과정과 관련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여야합의를 일방적으로 깬 것이란 논란도 크다. 앞서 여야는 2022년 금투세 도입 시기를 당초 2023년에서 2025년으로 유예하는 대신, 주식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10억 원 이상으로 유지하고 증권거래세는 단계적으로 인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또 연기금 변칙활용해 재원마련? = 유례없는 '세수 펑크' 상황에서 추가 감세 조치를 내놓은 것이어서 재정부담이 가중될 우려도 크다.

앞서 기재부는 금투세 도입 시 세수가 연간 1조5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봤다. 금투세 폐지만으로 연간 1조5000억원의 세수를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대주주 주식양도세 기준 완화에 따른 세수감소도 연간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상장주식 양도세를 신고한 대주주는 5504명으로, 전체 주식 투자자의 0.04%였다. 이들의 주식 양도차익은 7조2585억원으로, 양도세 규모는 1조7261억원 수준이었다. 두 가지 세입을 모두 합하면 연간 최소 2조5000억원 최대 3조원 이상의 세금을 못걷게 되는 셈이다.

◆증권거래세는 어찌할 건가 = 정부가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면 개미들의 증권거래세 인하요구가 거세질 것이란 점도 추가부담 요인이다.

그동안 정부는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이미 증권거래세율을 인하해 왔다. 여야는 문재인정부 때인 지난 2020년 '금투세를 2023년 도입하되 거래세는 단계적으로 인하'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증권거래세는 이미 지난해 0.23%에서 0.20%로 인하됐고 올해부터 0.18%, 내년에는 0.15%까지 떨어진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2025년 금투세 도입을 않기로 하면서 이런 구도는 없던 일이 됐다. 정부 방침대로 금투세 도입을 없던 일로 하면, 세수 측면에서 거래세를 0.23%로 복구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미 세율이 낮아진 상황을 체감한 투자자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전체 주식투자자의 2.5% 수준인 금투세 과세 대상자 보호를 위해 97.5%에 달하는 일반 투자자를 희생시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거래세 인하를 계획대로 추진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만큼 금투세는 폐지하고, 거래세도 원래 계획대로 인하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세수부담이 최소 연간 2조원 규모로 커지고 재정건전성 훼손 비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주식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가 다른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낮아져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정부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자초한 셈이다.

경제개혁연대는 "금투세가 폐지되면 조세 형평성 제고, 금융소득 과세 합리화를 달성하지 못하고 고액 투자자의 세 부담만 덜어줘 세수 감소에도 일조할 것"이라며 "금투세 폐지를 마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책인 양 국민을 오도하고 선거에 이용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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