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1대 국회, 국민안전 지키는 의무 외면말아야

2024-01-24 11:35:38 게재
목진휴 국민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이른바 '개 식용금지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우주항공청 설치·운영에 관한 특별법', '철도 지하화 및 철도 용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 등도 최근 통과됐다. 특별법 시행에는 논란도 많겠지만 특별법이 목적하는 사회적 변화가 서서히 나타날 것이다.

고준위방폐물 특별법 폐기 위기

반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은 폐기될 위기다. 국회가 법안 처리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이 법은 원자력발전소(원전)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용후연료의 관리 방안을 담고 있다. 사용후연료는 방사능 준위가 높아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관리하는 법이 없어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후연료는 발전소 내에 임시로 보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시시설이 2030년부터 포화된다. 그 결과 원전이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추가 임시저장시설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미래를 설계하는 '정책대응'이 아닌 '현실회피'다. 원전이 중단될 수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는 국회의 직무유기적 행태에 급기야 원전 주변의 거주 주민뿐 아니라 대학생들까지도 특별법의 신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되지 못하면 원전 수출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은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을 포함하면서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경쟁 상대인 프랑스는 처분시설 부지를 확보하고 인허가 단계를 밟고 있다. 사용후연료 처리의 첫걸음인 법제도 구축에 걸음마도 떼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가 된다.

원전산업 해외진출 기회 무산 우려

정부는 원전 수출에 강력한 의지를 보고 있고, 원전산업계는 기술 혁신과 인력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게 원전산업의 내적 성장과 해외 진출에 밝은 빛줄기가 보인다. 하지만 그 근간이 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를 위한 법과 제도가 조속히 마련되지 않아 원전산업의 재도약과 해외 진출 기회가 무산될 위기다.

1978년 고리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무려 반세기가 되도록 우리나라는 사용후연료 처리를 위한 국가적 방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이렇게 시급하고 중차대한 문제를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무책임하고 절대 불가의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중심에 국회가 있다.

21대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지 못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임시저장시설 포화, 원전 가동 중단은 현실이 될 것이다.

국내 전기의 약 30%를 생산하고 있는 원전이 순차적으로 전기 생산을 멈출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기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국민의 삶에 이렇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은 국민이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후연료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것으로 국민의 삶을 지키는 안전의무의 출발점이다.

그렇기에 이 법은 정치적, 정략적, 혹은 이념적 지향과 무관한 '국민생활법'의 일종이다. 국회는 마지막 남은 임기 동안 진정 국민의 삶을 지키는 일이 무엇인지를 엄중히 판단해서 오늘의 책임을 내일로 떠넘기는 역사의 오명이 함께 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