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 '비수구미 마을'
무공해 청정지역에서 10km를 걷다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 파로호 상류의 비수구미 마을을 찾았다. '비수구미(秘水九美)'는 '신비로운 물이 빚은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이다. 비수구미 마을로 향하는 호젓한 산길에는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짙은 녹음과 크고 작은 바위가 계곡을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다. 육지 속 섬이라 불릴 만큼 천혜의 자연으로 아름답게 보존된 청정지역을 걸으며 오랜만에 상큼한 힐링을 느껴봤다.

몇 가구만이 단출하게 남아있는 오지 마을
이른 아침, 잠실역 인근에 대기해있던 대형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에는 우리 일행 말고도 여러 그룹의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향긋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날 즈음 춘천 휴게소에 들렀다. 서울과는 전혀 다른 신선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그리고 3시간여 만에 도착한 곳은 비수구미 마을로 들어가는 트레킹 코스 진입로 부근.

입구 팻말에는 '비수구미 마을 6.0km'라고 쓰여 있고 여기서부터 산악 트레킹 코스가 시작된다. 우리는 모자와 운동화, 선글라스로 중무장을 한 채 능선을 따라 걸었다. 자갈이 많은 경사진 내리막길이어서 걷기가 쉽지 않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외지인들이 모여들어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비수구미 마을은 평화의 댐 일원에 조성된 평화의 종과 비목공원 등이 안보관광지로 부각되면서 일반인들에게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다.
육지 속의 섬이 된 마을
1970년대 초반, 화전이 금지되면서 원주민들은 거의 다 떠나고 지금은 몇 가구만이 단출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또 계곡의 끝자락에는 파로호 호반과 접해있어 낚시와 피서를 즐기려는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5월의 태양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간간히 그늘이 있긴 했지만 햇빛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피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즐기라고 했던가! 우리는 산속에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 꽃향기에 취하고 때론 이름 모를 야생화에 감탄하면서 행군을 이어갔다. 이렇듯 비수구미 계곡은 두 발로 걸으며 땀을 흘려야만 빼어난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계곡의 물소리와 시원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2시간 정도 걸으니 어느새 비수구미 마을에 다다른다.
마을 어귀에 동촌2리 마을안내도와 비수구미 생태 길을 자세히 설명해 놓은 표지판이 서있다. 비수구미는 화천댐이 들어설 때 육로가 막히는 바람에 육지 속의 섬이 된 마을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오지 마을을 찾는 방문객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파로호와 함께하는 호반 트레킹 코스


계곡의 건너편 산등성이에 드디어 해산 민박집이 보인다. 바로 우리의 점심을 책임질 산채비빔밥 식당이다. 개울가 옆 긴 식탁에 앉으니 아름다운 산세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드넓게 펼쳐진다. 무한리필로 제공되는 고사리, 곰취, 참나물 등 10여 가지 자연산 나물과 맛깔스러운 밑반찬이 식욕을 돋운다. 특히 빙어조림과 각종 장아찌가 일품이다. 밥과 국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떠먹을 수 있는 셀프서비스.
처음에는 나물을 반찬삼아 먹다가 중간쯤에는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볐다. 무공해 산나물로 차려진 식탁은 영양도 맛도 최고인 순수한 시골밥상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출렁다리를 건너 나무 덱으로 만들어진 오솔길로 들어섰다. 이번엔 호반 트레킹 코스. 몇 개의 구름다리를 건너 밑으로 내려가니 강 절벽을 끼고도는 완만한 경사의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지방도로와 만나는 삼거리까지 파로호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환상의 길이다. 그때 뽀얀 먼지를 풀풀 날리며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간다.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 쓴 자동차와 깎아지른 절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이색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평화 메시지
호수를 따라 한 시간 가량 걸은 후, 우리는 '평화의 댐'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평화의 댐’언저리에는 가곡 '비목(碑木)'을 주제로 한 '비목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비목 기념관과‘세계평화의 종'이 있다.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세계평화의 종’타종체험(1인:500원)을 했다. 우렁찬 종소리가 깊은 울림을 남기며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진동의 여운이 남아있는 거대한 종에 몸을 기댄 채 가슴 속 소원을 빌어보았다.


종 주변에는 달라이 라마, 투투 주교 등 10여명의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보내온 평화의 메시지가 적혀있다. 화해와 화합을 호소하는 그들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또 주변 야외전시장에는 이탈리아, 방콕 등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60여 개의 종들이 전시돼 있다. 그 옆에는 '평화의 댐 물문화관'이 있고, 넓은 잔디밭에는 멋진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다. 중앙에는 민족의 염원을 담는 '평화의 물그릇'이라는 조형물이 버티고 있다.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본 후 물빛누리 휴게소에서 시원한 음료수로 목을 적셨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어딘가 숨어 있던 달콤하고 나른한 피곤이 밀려온다. 어느새 배후령 터널을 통과한 버스는 서울을 향해 쌩쌩 달리고 있었다.
TIP/ 주요 관광지
-파로호 :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1944년 북한강 협곡을 막아 축조한 화천댐으로 인해 생긴 인공호수. 38.88㎢의 면적에 10억 톤의 물을 담을 수 있는 규모이며 상류에‘평화의 댐'이 있다.
-평화의 댐 : 화천읍 동촌리 애막골 일대 6,200여 평에 조성된‘평화의 댐’은 높이 125m, 길이 601m로 저수량 기준 소양강댐, 충주댐에 이어 3위, 높이로는 1위이다. 북한의 금강산댐 수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강 최상류 물줄기를 막아 건립했으며 주변 관광지가 개발됨으로써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비목공원 : 화천은 한국전쟁 당시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다. 그 후에 가곡‘비목’의 작곡자인 한명희 선생이 이곳 화천에서 군 생활을 했다고 한다. 군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계곡 사이에서 이끼 낀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발견했고 그 감회를 시로 표현한 것이 바로 '비목'이다.
-세계평화의 종 :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에서 수집된 탄피들을 모아 만든 종으로 평화, 생명,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1만 관(37.5톤)으로 만들어진 세계평화의 종은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고자 1만 관 중 1관을 분리한 9,999관으로 주조되었다가 통일의 날, 떼어진 1관을 추가하여 세계평화의 종으로 완성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