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중국외교의 세 얼굴 - 전랑외교 미소외교 명망외교
중국은 힘을 앞세우기보다 명분으로 천하를 통치하던 문명이다. 주나라의 예악(禮樂), 한나라의 유교, 명·청의 조공체제에 이르기까지 ‘덕으로 먼 곳을 복종시킨다(遠人以德服人)’는 이념을 중시했다. 강압으로 천하를 얻을 수 없고 도덕적 권위와 명분으로 자발적 복종을 끌어내는 통치철학의 역사적 DNA는 21세기 중국공산당의 외교에서도 묻어났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은 코로나19가 확산되던 2020년 이후에 ‘전랑(戰狼)외교’에 거세게 밀려났다. 코로나19의 중국 책임론을 회피하고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족주의적 정서를 이용하는 공격적인 외교로 변했다. 중국 관영매체에서 “호주는 중국 신발에 묻은 껌”이라고 한 막말이 대표적이다.
전랑외교의 결과는 참담했다. 퓨리서치센터의 2022년 조사에서 19개 선진국 국민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68%에 달했으며, 한국(80%) 일본(87%), 호주(86%)에서는 최악의 반중정서가 나타났다. 힘과 강압으로는 천하를 얻을 수 없다는 수천년의 교훈을 비싼 값을 치르고 확인한 셈이다.
전랑외교의 실패를 절감한 후에 경제력과 군사력에 기댄 강압이 아닌 매력으로 호감을 끌어내는 ‘미소외교(charm offensive)’로 전환했다. 리창 총리는 코로나 중국책임론을 제기했던 호주를 방문해 무역확대와 관계개선 의지를 전했다.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3%의 상계관세를 부과했음에도 보복 대신 협상카드를 꺼냈다.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를 중재하면서 중동평화의 조정자로 나서기도 했다.
미소외교는 전랑외교로 누적된 반중 정서를 누그러뜨리는 ‘상황타개형’ 외교였다. 외부의 적대적 환경을 누그러뜨려 경제성장 여건을 개선하려는 유화책으로 비쳤다. 조공질서에서 주변국에 교역의 혜택을 베풀며 자발적 복속을 유도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한국에게 비자면제를 베풀면서도 사드제재의 완전 해제는 거부한 것처럼 ‘선별적 전랑외교’로 보이기도 했다.
국제사회에 미국 대신하는 책임 대국 이미지
2025년 트럼프 2기 이후 중국 외교는 새 전환점을 맞았다. 미국은 국가안보전략서에서 ‘글로벌 공공재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사실상 포기’하고, 유럽을 ‘조건부·거래적 동맹’으로 격하하는 등 중국의 외교공간을 넓혀주었다. 캐나다 프랑스 한국 등 우방국 정상의 방중이 이어졌고, 중동전쟁 이후 미국이 ‘전쟁의 나라’로 비치는 반면 중국은 ‘평화의 설계자’ 이미지가 강화되고 있다. 중국이 ‘도덕적 권위와 책임 대국의 면모로 국제사회의 신망을 획득’하려는 시도는 ‘명망(名望)외교’로 불릴 만하다. 중화질서에서 문명의 중심을 자임하던 통치술의 21세기 확장 버전이다.
2025년 중국의 대외무역흑자가 1조달러를 돌파해 170개국 이상에 무역흑자를 기록한 것도 명망외교가 필요해진 배경이다. 심각한 내수부진을 수출로 메워야 하는 중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단기간 내 해소하기 어렵다. 수출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으로 국제사회에 미국을 대신하는 공공재를 제공하는 책임있는 대국의 이미지가 중요해졌다.
이러한 심모원려에서 중국은 발전(글로벌발전이니셔티브 GDI, 2021), 안보(글로벌안전이니셔티브 GSI, 2022), 문명(글로벌문명이니셔티브 GCI, 2023)에 이어 2025년에 거버넌스(글로벌거버넌스이니셔티브 GGI)를 제시해 중국식 국제질서의 청사진을 완결했다.
‘명망외교’의 표방은 현대 중국 외교사의 고비마다 반복되었다. 외교적 고립기의 ‘평화공존 5원칙’(저우언라이, 1954), 중국위협론이 고조되던 시기의 ‘화평굴기·화해세계’(후진타오),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던 시기의 ‘인류운명공동체’(시진핑)가 그것이다. 중국은 외교적 환경에 격랑이 칠 때마다 시대정신을 담은 새로운 버전의 ‘명망외교’를 제시해왔다.
중국의 15차 5개년규획(2026~2030)은 향후 5년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는 역사적 과정에서 전략적 주도권을 확보’해야 할 시기로 명시했다. 지금 중국이 펼치는 명망외교는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대전략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국이 내세우는 대의명분 맥락 파악 중요
역사는 명망외교의 이면에 대한 경각심도 함께 일깨운다. 과거 화이질서에서도 중국에 반하는 국가는 가차없이 힘으로 짓눌리곤 했다.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에 대해 중국 총영사가 “더러운 목을 베겠다”는 막말로 응수한 것은 그 현대판 사례다.
우리도 조공질서의 명분과 시혜 뒤에 엄격한 위계질서의 강요가 뒤따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중국이 내세우는 대의와 명분의 전후 맥락을 읽어내는 것은 한국의 대중외교에 요구되는 지혜이자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