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6.3 지선 민심이 남긴 경고

2026-06-04 13:00:07 게재

맹자는 “하늘이 주는 때(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도 사람의 화합(人和)만 못하다”고 했다. 6.3 지방선거·재보선 결과를 이 세 단어로 읽으면 이번 선거의 의미가 오히려 선명해진다. 여권은 천시와 지리에서 압도적으로 이겼다. 그러나 인화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계엄과 탄핵, 이재명정부 출범을 거쳐 치러진 지방선거인만큼 승리의 무게는 무겁지만 그 승리가 품고 있는 경고의 무게도 그에 못지않다.

천시는 처음부터 여권 편이었다. 계엄·탄핵 이후 형성된 반내란연대와 이재명정부 1년의 안정감이 겹치면서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정권견제’가 아니라 ‘내란심판’으로 규정됐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줄곧 60%대 중반이지만 지지층 구성은 크게 바뀌었다. 30~40대와 중도층에서 빠진 자리를 60·70대와 보수층이 메웠고 대구·경북에서도 긍정평가가 두자리수 가까이 오른 것은 상징적이다.

그러나 천시가 한쪽 편만 들지는 않는다. 선거 초반 조작기소 특검법 논란과 장기보유특별공제 논쟁 등 여권의 강공은 보수층 결집과 정부견제론을 자극했고 그 기류가 실제 투표에서도 나타났다. 천시는 여권에 기울었지만 애초 기대했던 15대1은 고사하고 서울을 포함 4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패배할 만큼 절대적이진 않았다.

광역단체장 12 대 4라는 결과는 지리가 여권 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나마 국민의힘이 서울에서 승리해 영남지역당 처지를 모면했지만 그것도 당이 잘해서라기보다 오세훈 후보 개인기에 의거한 승리일 뿐이다. 선거구도 자체가 여권에 유리한 지형이었고 민주당은 이를 최대한 활용해 ‘내란심판·정권안정’ 프레임으로 선거를 이끌었다.

이명박·박근혜를 불러낸 야권, 인화를 잃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천시와 지리의 작용에도 불구하고 여야 모두 인화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야권의 실패는 더 뚜렷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심판론’과 ‘조작기소 특검’ 저지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이는 TK·PK 고령층을 묶어세우는 대신 중도층으로부터 더 멀어졌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전국 유세에 세운 전략은 일부 영남 지역에서 투표를 독려했을지 몰라도 수도권·청년층으로부터 ‘과거로의 회귀’라는 낙인이 찍히는 역효과를 남겼다.

인화의 언어를 선택해야 할 자리에 동원과 향수의 언어를 택한 결과 천시와 지리에서의 열세를 만회할 기회를 스스로 닫아버렸다. 선거 후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 전략의 실패를 인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패인 분석이 반성으로 이어지지 않고 계파 다툼과 책임 떠넘기기로 흘러간다면 야권의 인화는 다음 선거에서도 복원되기 어렵다.

여권의 인화도 완성과는 거리가 있다. 전북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이원택 후보가 무소속 김관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지만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다는 사실 자체가 경고다. ‘호남 민심이 민주당을 버렸다’는 서사는 힘을 잃었지만 ‘공천·계파운영에 대한 불만’이라는 이중 메시지는 살아있다.

선거 초판 불거진 조작기소 특검법 논란도 민주당이 눈여겨봐야 한다. 논란이 불거질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도층은 ‘정부지원론’에 힘을 실으면서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지지와 견제를 함께 보낸 것이 민심이다. 애초 예상과 달리 서울시장을 국민의힘에 내준 것은 보수층의 응집과 중도층의 냉소가 함께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이 이중 메시지를 ‘지지’만 읽고 ‘경계’를 흘려보낸다면 인화의 균열은 다음 선거에서 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

평택과 부산, 두개의 균열이 예고하는 것들

12 대 4라는 광역 지도가 말해주지 못하는 것이 있다. 경기 평택 을에서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당선됐고 부산 북구 갑에서는 한동훈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이 두 개의 작은 점은 단순히 의석 2석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한동훈은 정당 해체 이후에도 개인 브랜드가 조직력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향후 정치권 재편의 방향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맹자의 말대로라면 이번 선거는 천시와 지리에서 여권이 크게 이겼지만 인화에서는 누구도 최종 승자가 아닌 상태다. 천시와 지리는 선거 한번이면 바뀐다. 남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이다. 계엄과 탄핵의 시대를 뒤로 넘기고 다시 상식과 통합의 정치로 가겠다는 진정성을 먼저 보여주는 쪽이 다음 천시와 지리를 손에 넣게 될 것이다. 인화 없이 이긴 승리는 언제나 다음 패배의 씨앗을 품고 있다.

김기수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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