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진의 미국 톺아보기

AI 혁신에 가려진 착시, 고금리·고물가 시대가 온다

2026-06-04 13:00:04 게재

최근 세계 경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화려한 자산시장과 팍팍한 실물경제 사이의 현격한 괴리감’이다. 자산시장의 대표주자인 미 증시는 여전히 인공지능(AI) 관련 기술 혁신 기대감을 동력삼아 쉼 없는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S&P500 지수 내 IT 및 통신 서비스 업종 비중은 이미 40%를 돌파했고,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 성장 전망치 중 절반이 AI 관련 투자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빅테크 주도의 장세는 실물경제마저 견고할 것이라는 시장의 착시를 불러일으켜 투자자들의 위험 선호 심리를 자극한다.

AI 호황 뒤의 금리 상승 경고음

화려한 주식시장의 이면에는 글로벌 자본 흐름의 기저를 형성하는 미 국채 10년물과 30년물 장기금리 상승이라는 이상신호가 함께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2026년 5월 말, 글로벌 채권금리의 기준점인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심리적 저항선인 연 4.5%를 넘어섰고, 초장기물인 30년물 금리는 연 5% 벽을 돌파하며 2007년 이후 20년 만의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시장이 미 국채 장기물 금리의 가파른 상승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지표가 자산시장과 실물경제가 특이점을 맞이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 국채금리는 모든 위험자산의 가격을 결정하는 ‘무위험 지표’다. 미 국채금리가 우상향하면 시중 자금 조달 비용은 연쇄적으로 증가한다. 장기 국채금리 상승은 유동성이 넘쳐나던 ‘공짜 돈’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최근 고금리의 원인이 고착화된 인플레이션, 즉 고물가에 원인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4~5월 확인된 미국의 주요 물가 지표들은 시장의 둔화 기대를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지수(PPI)는 물론, 연준이 주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역시 강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 3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간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미국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4.2%로 대폭 상향 조정하며, 중동분쟁 악화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이 인플레 압력을 장기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고, 4월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세계경제전망’을 통해 미국의 근원 물가는 여전히 2% 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있으며, 중동발 지정학적 갈등과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맞물린 인플레이션 재반등이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모든 보고서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이제는 ‘상수’가 되어버린 비용상승 압력도 나날이 위험을 더해가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란 무력충돌로 말미암아 글로벌 가치사슬(GVC)는 파편화되고 있다. ‘리쇼어링’ 또는 ‘프렌드 쇼어링’의 가속화는 필연적으로 생산단가를 높이는 것이다. 깐깐해진 국경 통제로 이민자 유입이 줄면서 생긴 단순 서비스 노동력 부족 문제와 임금상승의 악순환도 여전하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미국의 누적된 재정적자다.

세수 확보가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미 행정부의 포퓰리즘적 지출은 멈출 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미 연방대법원의 관세부과 무효 판결로 조금이나마 재정적자의 폭을 줄여주던 관세수입마저 줄어든 상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국채 이자 비용은 앞으로 미국의 재정 건전성을 더욱 심각하게 훼손하며 국채 발행 부담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일각에서는 AI가 가져올 생산성 혁명이 이 모든 거시적 난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AI 인프라 구축에는 천문학적인 자본 지출(CAPEX)이 뒤따른다. AI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데이터센터 건립, 전력망 확충, 첨단 반도체 확보는 현재 글로벌 자본을 블랙홀처럼 빨려 들이고 있다.

글로벌 자금 빨아들이는 'AI 블랙홀'

이처럼 전례 없는 민간의 막대한 자금 수요는 시중 유동성을 말려버리며 금리상승을 압박한다. AI가 촉발한 자본 수요가 금리를 끌어올리고, 그 높아진 금리가 다시 실물 경제를 압박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AI 기술이 단순한 인프라 투자를 넘어 실제로 기업 생산성을 전방위적으로 향상하는 실체적 혁신임이 증명된다면 노동 비용을 낮추고 재화·서비스 가격을 안정화하는 거시적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구조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완화되고 국채금리 역시 장기적으로 하향 안정화되는 긍정적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 다만 거시경제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과정에는 어쩔 수 없이 ‘시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생산성 향상의 경제적 과실이 실물지표로 확인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반면 천문학적인 인프라 투자 비용과 정부의 막대한 이자 상환 부담은 이미 당면한 현실이다. 혁신의 성과가 단기적인 자본 흡수와 금리 압박을 상쇄하기에는 시점의 뚜렷한 불일치가 존재한다. AI 기술이 이른바 ‘거품론’을 이겨내고 과연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여줄지,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가 관건인 것이다.

고금리·고물가 상황에서는 금리를 조절하고 물가안정을 최우선에 두는 중앙은행의 독립적인 긴축기조 유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난 22일 취임한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이 행정부의 압력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의 인선 과정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논란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막대한 부채 이자를 관리해야 하는 재무부의 절박함과 정치적 셈법에 트럼프정부의 바람대로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경우, 기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게 되고,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되는 미 국채 장기물 금리 역시 치솟아 미 국채와 기축통화에 대한 글로벌 신뢰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자국의 펀더멘털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벅찬 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다. 외교·안보적 지렛대를 활용해 일본 유럽 등 주요 우방국들에게 외환보유고를 동원한 미 국채 매입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는 자국의 재정문제를 완충하기 위한 패권국의 전략적 행보이기는 하나 각국 역시 자국 통화가치 방어와 내수관리에 급급한 상황에서 이러한 형태의 글로벌 국채 소화 릴레이는 머지않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은행(BOJ)이 장기간 고수해 온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을 완전히 종료하고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에 진입한 것은 글로벌 자본질서 판도를 뒤흔드는 신호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미 국채 보유국 중 하나다. 지난 수십 년간 초저금리를 기반으로 전세계 고수익 자산에 투자되었던 천문학적 규모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일본의 금리 정상화와 엔화 방어 기조에 따라 서서히 본국으로 환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일본 금융기관들이 단기간 내에 미 국채를 대거 투매해 시장이 발작을 일으킬 확률은 낮지만 올해 1월, 일본의 장기 국채 금리가 연 4%를 돌파하며 일본 기관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매도하고 일본 국내 채권으로 자금을 회수할 것이라는 시장의 관측만으로도 미 증시와 채권시장이 출렁였던 것만 보더라도 미국의 위기 대응 준비는 생각 외로 취약하다.

철저한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할 시점

현재의 글로벌 경제는 AI가 이끌 미래의 생산성 개선 기대감과 구조적 인플레이션 및 재정적자가 야기하는 현실의 고금리 장기화 압력 사이에서 위태로운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은 아직도 자산시장의 화려한 파티에 취해 있지만 저물가와 저금리에 기대 부채를 팽창시켜온 지난 십수년의 패러다임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막연한 기술적 낙관론에서 벗어나 새롭게 고착화되는 고비용 시대의 거시경제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펀더멘털에 기반한 철저한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