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강신옥 변호사
"최태민 관계 못 끊어 박근혜도, 박정희도 망해"
"최순실 국정농단, 최태민과 닮은꼴 … 2007년에 정리했어야"
"10.26은 '유신철폐, 민주회복' 위한 '무혈 혁명' … 재평가해야"
1년 전 이맘 때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촛불시위가 시작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을 당해 구속됐고 '박정희 신화'도 무너졌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역사 속 인물이 있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그는 내란목적의 살인 혐의로 유죄를 받고 사형 당했다. 하지만 김 전 부장을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의로운 인물로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당시 김 전 부장은 박근혜와 최태민 문제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쏘게 된 동기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오랫동안 묻혔고, 결국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불러왔다.
촛불 시위 1년, 10.26사태 38년을 맞아 김 전 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를 만났다. 강 변호사는 "최씨 집안과의 관계를 끊지 못해 박근혜도, 박정희도 망하게 된 것"이라며 "모든 게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와의 인터뷰는 27일 서초동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10.26 사태가 일어난 지 38년, 촛불시위가 시작된 지 1년이 됐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사필귀정'이라 생각한다. 뒤늦게나마 정의가 실현된 것이라고 본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서 놀랐다. 최태민 때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최태민도 박근혜를 꼭두각시 삼아 기업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등 악행을 저질렀다.
2007년 대통령선거 때 이명박 당시 후보 측에 최태민 관련 이야기를 해줬는데 BBK 사건이 더 부각되면서 묻혀버렸다. 그때 다 까놓고 최씨 집안과 관계를 끊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해서 박근혜도 망하고, 박정희도 망하게 된 거다.
박정희 추모행사에서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위원장이 쫓겨났다는 보도를 봤다. 류 위원장 아버지가 박정희의 직계인 류혁인이다. 류혁인은 동아일보 기자를 하다가 박정희에게 발탁돼 공보처 장관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했던 인물이다.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다. 그런 류혁인의 아들이 쫓겨났으니 아이러니하다.
■어떻게 김재규 변호를 맡게 됐나.
판사로 있던 친구의 추천으로 박선호(10.26 당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으로 김재규와 함께 처형) 가족들이 먼저 사건을 부탁했다. 연이어 김수환 추기경이 김재규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김재규가 의로운 일을 했다고 판단해서 우리에게 변호를 의뢰한 것이다. 그래서 김재규와 박선호의 재판을 맡게 됐다.
■김재규가 말한 박정희 살해 이유는
유신철폐다. '유신의 심장을 쐈다'고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난 이후 박근혜와 최태민의 문제도 박정희를 죽인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 김재규의 발언이 다시 주목을 받았는데
1심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고, 항소이유서에 같은 내용을 써내기도 했다. 최태민이 아주 나쁜 사람이고 나라의 큰 누가 될 것이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흐지부지되는 것을 보고 박정희를 죽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하더라.
우리에게는 최태민에 대해 '교통사고를 내서라도 죽여도 괜찮은, 그렇게 나쁜 놈'이라고 까지 말했다.
■대중들에게는 차지철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과의 불화 때문인 것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건 지어낸 이야기다. '차지철하고 싸우다 지니까 욱해서 죽였다'는 건데 그게 김종필의 논리였다.
그걸 전두환이 이용했다. 차지철에게 당해서 청와대에 정보보고도 못하고 괄시당하니깐 처음에는 차지철만 없애려고 하다가 박정희까지 죽였다고 몰아간 것이다.
김재규가 법정에서도 '내가 육군대위하고 싸울 놈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차지철은 육군대위였고, 김재규는 중장이었다. 급이 달랐다.
김재규가 유언에서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만끽하시오'라고 하지 않았나. 김재규는 면회한 첫 날부터 일관되고 논리정연했다. 우리가 놀랄 정도였다니까. 처음 만날 때 조준희 변호사가 함께 했는데 조 변호사는 김재규의 말에 감동해서 눈물까지 흘렸다.
■하지만 당시 재판에서는 김재규에게 내란목적 살인, 내란미수 등이 적용됐다. 증거는 있었나
내란을 하려면 상당히 힘이 있는 집단을 만들고 폭력행사를 한다든가 그런 게 내포돼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런 걸 입증할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당시 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이 내란목적을 추가시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욕심으로 박정희를 죽였다'며 파렴치범으로 몰아간 것이다.
■당시 김재규 배후에 미국 CIA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어서 우리도 미국 대사관에 접촉해봤는데 딱 잘라버리더라. 만약 협조했다면 김재규를 살려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현장에 있었던 김재규의 부하들은 사전에 정말 몰랐던 건가
전혀 몰랐다. 당시 유신통치하에서 박정희에게 반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금의 북한 김정은 체제와 똑같다. 그러니 대통령을 죽이자고 상의할만한 상대가 없었다. 자기 혼자 해야겠다고 결심한 거다.
자기의 직계 부하인 박선호와 박흥주(김재규 전속부관으로 10.26사태로 사형당함)에게도 30분 전에서야 얘기했다. 혹시나 밀고할까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도 박선호와 박흥주가 김재규를 끝까지 따랐나
일종의 충성심으로 본다. 김재규가 마치 참모총장도 자기 편인 것처럼 해서 부하들이 따르도록 한 것도 있다. 김재규가 그날 참모총장에게 저녁을 하자고 불렀다. 현장에 갖다 놓은 거다. 부하 직원들이 '참모총장도 김재규와 같은 편인가보다' 생각하도록 위장한 거다.
실제로는 참모총장이 김재규와 뜻을 함께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전두환이 그걸 또 이용해서 참모총장을 잡아넣었다.
■결국 김재규 단독범인건가
김재규가 최소한의 희생만 치르려고 했다. 경호실 몇 명하고 박정희, 차지철만. 그 외 죽은 사람이 없지 않나. 5.16하고는 또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무혈혁명'이다.
김재규가 아주 절묘한 찬스를 이용했다. 박정희의 안전가옥에서 여성들을 불러 술을 먹는 시간에. 궁정동은 중정 관할이다. 당시 김계원 비서실장이 나와 있었지만 내부 위치도 모르고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강 변호사도 이 사건으로 고초를 치르지 않았나
변론이 끝나고 대법원에 재심 청구를 해놓고 나오는 길에 보안사 직원 2명에게 잡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갔다. 거기 딱 들어가면 옷 벗기고 군복으로 갈아입힌 뒤 일단 패는 게 하나의 '의식'이다. 또 조사하다가도 갑자기 불려나가 맞기도 했다.
그런데 특별히 나에 대해 조사할 것이 없지 않나. 그래서 박근혜와 최태민 관계를 폭로해 명예훼손을 했다, 김재규 구명운동을 해서 포고령을 위반했다 등 이런 걸 조사받다가 보름 만에 풀려났다.
■박흥주는 단심으로 선고하고, 김재규보다도 먼저 총살시켰는데
그때는 군법이 1심에서 끝나도록 돼 있었다. 변호사가 위헌이라고 제기했지만 기각당했다.
박흥주는 정말 아까운 사람이다. 공부도 잘했고, 청렴했다. 어찌나 청렴한지 행당동 하꼬방에 살았다.
당시 주범인 김재규가 사형을 받느냐, 안받느냐도 계류돼 있던 상황이었다. 그럼 기다렸어야지. 나중에 김재규가 무죄를 받으면 박흥주는 뭐가 되나. 그러니까 박흥주를 죽일 때 이미 다 예정된 코스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박근혜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까지 됐는데 피해를 보진 않았나
피해를 본 것은 없다. 다만 2002년 대선 때 정몽준 후보 캠프를 도왔는데 정 후보가 초등학교 동창인 박 의원의 도움을 받고 싶어했다. 박 의원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의사라고 하는 강신옥과 함께 하면서 어떻게 도와달라고 하느냐'고 했다는 말을 정 후보가 여러 차례 전하길래 캠프를 나오게 됐다.
■유신헌법도 그렇고 단심으로 끝내는 군법도 이제는 위헌으로 판결이 났는데 재심을 청구할 의사는 없나.
재심청구도 한 방법일 수 있다. 내란목적도 아닌 걸 집어넣었으니까 재심 청구 사유가 된다.
하지만 그보단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재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본다. 국민의 염원으로 역사의 방향을 바꿔나가면서 (김재규에 대한)평가도 다시 해야한다.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 사육신이 역적으로 있다가 충신으로 재평가 받는데 200년이 넘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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