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규 변리사의 특허이야기 ⑬

걸음마 수준의 특허권 보호

2018-08-03 11:27:00 게재
최덕규 명지특허법인 대표 변리사

최근 삼성전자와 애플이 지난 7년간 벌인 특허분쟁을 마무리 짓기로 합의했다. 정확한 합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성이 애플에 6천억원이 넘는 손해배상금을 물어준 것으로 보인다. 이 분쟁 사건의 최초 배심원 평결이었던 2012년 평결에서는 삼성이 애플에게 1조 2천억원을 배상하라고 하였다. 최종 합의금은 최초 평결의 배상액의 절반 정도이지만 여전히 천문학적인 숫자다.

5년전 미국에서 1차 평결이 내려질 즈음, 우리나라에서도 삼성과 애플의 특허침해소송이 진행되었는데,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삼성에게 2,500만원, 애플에게 4,000만원의 손해배상을 각각 지불하라고 판결하였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의 이 판결은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었다. 아무리 시장규모가 다르다 하더라도, 미국이 1조 2천억원의 배상액을 평결할 때, 수천만원을 배상하라 판결한 것은 조롱거리 이상이었을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특허관리 자(子)회사인 카이스트IP는 2016년 11월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이 무단으로 그들의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고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미국 텍사스주(州) 동부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삼성전자에 "카이스트IP가 갖고 있는 핀펫 기술 특허를 무단 사용했기 때문에 4억달러(약 4400억원)의 배상금을 물어내야 한다"고 지난 6월 평결했다.

전문가들은 이 재판과 관련해 국내에서 특허침해 소송이 벌어졌다면 카이스트 측은 수십억원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특허법 관련 전문가는 "국내에서는 특허침해에 따른 피해를 카이스트 측이 증명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삼성전자의 기업비밀과 관련돼 증빙이 쉽지 않다"며 "법원으로부터 최소한의 피해만 인정받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배상액은 수십억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해당 기술에 대한 국내 특허를 보유한 카이스트 측은 국내에서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정부가 지식재산 4대 강국을 표방하고 있지만 특허권에 대한 보호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특허기술을 탈취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데다 특허권을 보유한 기업이 특허침해 소송에서 실질적인 보상을 받지 못하고 시간과 돈만 허비하는 일도 여전하다.

위 주장을 뒷받침하는 최근의 사건이 하나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6월 21일 쿠쿠전자가 쿠첸을 상대로 낸 특허권 침해 금지와 그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쿠쿠전자 측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쿠쿠전자의 특허권을 침해한 쿠첸이 피해액 35억원을 쿠쿠전자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특허침해에 대한 배상액이 35억원으로 내려진 것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이는 매우 큰 배상액에 해당한다. 이보다 훨씬 적은 수억원 또는 수천만원의 배상액이 수두룩하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특허침해에 대한 배상액이 외국에 비해 아주 형편없는 것은 특허기술에 대한 가치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특허침해로 인한 보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허침해에 대한 배상액이 올바로 내려진다면, 타인의 특허권을 함부로 침해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고, 그만큼 특허권은 정당하게 보호될 것이다.

그런데 특허권 보호에 있어서 배상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특허 침해여부에 대한 판단이 그것인데, 우리는 아직도 특허침해에 대한 판단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특허권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침해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별도의 절차가 있다. 즉, 권리범위확인심판이라는 것이 있는데, 특허권자가 주장하는 피의자의 침해물품이 특허권을 침해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일종의 소송 절차다. 그런데 이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특허침해가 제대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권리범위확인심판이 청구되면 피의자는 특허권의 하자를 이유로 무효심판을 청구하여 이전투구 식의 지리한 싸움을 시작한다. 조그만 하자라도 존재하여 특허가 무효로 되면 특허권자는 닭 쫓던 개 지붕만 바라보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모두가 특허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이다.

최덕규 명지특허법인 대표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