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미중 정상회담에 나타난 중국의 협상술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두 강대국이 극한 대립을 잠시 멈추고 전략적 관리 상태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두 지도자의 득실만 놓고 보면 트럼프는 뚜렷한 실리를 얻지 못한 반면 시진핑은 중국이 미국과 국제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대등한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트럼프의 고립과 미국의 국가 위상 하락을 직접 반영한 것이지만 중국이 오래전부터 활용해온 형세 조성의 협상술과 공산당의 협상원칙이 작동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천시 지리 인화 활용해 유리한 형세 만들어
중국은 협상장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형세를 만든다. 상대가 양보할 수밖에 없는 시간 장소 국내정치 국제여론의 조건을 조성한 뒤 협상을 시작하려 한다. 그래서 중국식 협상은 회담장의 논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다릴 수 있는 자와 조급한 자의 차이를 이용하는 시간의 정치, 회담장소와 의전을 통한 상징 연출, 도덕적 명분과 힘의 결합이 함께 작동한다.
이런 점에서 맹자의 천시(天時)·지리(地利)·인화(人和)는 단순한 고전적 수사가 아니라 오늘날 중국공산당의 ‘형세판단—주도권 확보—원칙 압박—부분 타협’이라는 협상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천시는 상대가 조급하고 자신은 기다릴 수 있는 시점이다. 중국은 관세정책의 부담, 중동문제, 국내정치적 압박 속에서 성과가 필요했던 트럼프의 상황을 활용했다. 그 결과 회담 의제는 단순한 양자 무역문제를 넘어 ‘미중관계와 세계 평화와 발전의 중대 문제’로 확대되었다. 중국이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트럼프의 조급함을 이용해 대만문제를 전례 없이 강하게 밀어붙였다.
지리도 중요했다. 중동의 불안정,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국 동맹정책에 대한 피로감, 글로벌사우스에서 확대되는 중국의 영향력은 중국이 유리한 위치에서 회담을 설계할 수 있게 한 조건이었다. 이는 2013년 시진핑이 오바마에게 “태평양은 미중 두 대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고 말하며 신형대국관계를 제안했으나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장면과 대비된다. 이번에는 중국이 훨씬 자신감 있게 미중의 공동 관리 이미지를 연출한 것이다.
인화는 내부 결속과 우호적 여론의 확보를 뜻한다. 시진핑은 대만문제를 중국의 핵심이익으로 제기해 국내 정당성을 강화했고 동시에 자신을 자유무역과 다자주의의 옹호자로 포장하며 ‘예측하기 어려운 미국’과 ‘안정적인 중국’이라는 담론 구도를 만들어냈다.
마오의 ‘담담타타’ 전통 현대적으로 활용
여기에 마오쩌둥의 담담타타(談談打打) 전통이 결합한다. 마오쩌둥은 협상을 투쟁의 연장선에 있는 정치수단으로 보았다. ‘협상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협상한다’는 원칙은 중국공산당 협상술의 중요한 유산이다.
이는 싸울 수 있어야 협상할 수 있고 원칙을 지킬 수 있어야 전술적으로 양보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시진핑이 대만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면서도 미국산 농산물이나 항공기 구매 같은 실무적 타협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이러한 방식에 가깝다. 원칙에서는 물러서지 않되 전술에서는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전외교 역시 이 협상술의 일부였다. 2017년 중국은 트럼프를 위해 자금성을 비우고 국빈 방문 이상의 의전을 제공했다. 당시의 목적은 트럼프 개인을 만족시켜 미중 무역갈등을 완화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트럼프를 달래기보다 중국의 문명적 깊이와 강대국적 대등성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천단(天壇)’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공간이다. 이 역사적 상징을 통해 중국 문명의 연속성과 국가적 위엄을 드러내는 무대가 되었다. 트럼프를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떠받드는 방식도 아니었다.
이는 1972년 닉슨 방중 당시 중국이 유지했던 ‘예로써 대하되,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는다’는 태도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장면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중국은 전략적으로 미국이 필요했지만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 했다. 이번에는 미국을 필요로 하면서도 미국의 조급함을 활용하고 대만문제와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 가능성을 거론하며 더 이상 과거의 약한 중국이 아님을 드러냈다. 이는 전형적인 담담타타의 현대판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은 구체적 합의가 제한적이었고 미중 전략경쟁의 구조가 해소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이번 회담의 형세와 의전, 담론 전체를 하나의 협상무대로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은 협상장에서만 협상하지 않는다. 회담 전의 형세, 회담장의 의전, 회담 후의 담론까지 모두 협상의 일부로 만든다. 미중관계를 읽으려면 중국이 무엇을 말했는가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상징을 통해 말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