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하회탈과 게이샤 마스크 외교의 이면
“전쟁은 외교의 실패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외교의 실패는 전쟁보다 가혹한 결과를 낳는다. 역사가 증명한다.” 현재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딱 그렇다. 전쟁 중에도 미중 정상회담은 열렸다. 외교 테이블은 마치 포커판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폭탄으로 블러핑하면 중국 시진핑 주석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응수한다. 결국 중국은 보잉을 찔끔 사주고, 미국은 대만과 동맹을 ‘협상 칩’으로 던졌다.
본디 외교에는 ‘노(No)’가 없다고 한다. ‘예스(Yes)’는 ‘아마도(Maybe)’를, ‘아마도’는 ‘아니오’를 뜻한다고 할까. 외교전에 승패도 모호하다. 그저 절반의 실패를 절반의 성공으로 포장할 뿐이다. 협상 결과가 이현령비현령으로 어정쩡한 이유이다.
시진핑은 트럼프가 떠나자마자 20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불러들였다. 그도 전쟁의 수렁에서 헤매는 중이다. 목하 중-미 중-러의 밀당 외교전이 뜨겁다.
그 한복판에서 한일 셔틀외교가 19일 안동에서 열렸다. 이번 정상회담에는 한일간 비슷한 듯 다른 문화도 드러났다. 술과 음식과 목욕의 DNA라고 할까. 한국은 마시고 자고, 중국인은 먹고 자며, 일본인은 씻고 잔다고 했다. 잠자는 곳 이름에서 본질이 드러난다.
한국은 주막이었다. 술집이다. 중국은 판디엔(飯店). 북경반점은 영어로 베이징호텔이다. 일본은 료칸(旅館)인데, 모든 여관이 온천탕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숙박 문화가 비즈니스에도 이입됐을까. 과거 한국에선 술집에서 비즈니스가 이뤄졌다. 함께 술잔 나누며 계약을 진행한다. 중국인은 ‘만한전석’ 같은 산해진미를 대접하며 ‘꽌시’를 맺는다. 일본은 사우나에서 ’쇼부’를 본다. ‘터키탕’이란 용어도 일본이 만들었다.
외교에는 단지 국익만 있을 뿐
정상간 비즈니스 외교도 그렇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12월17일 일본 큐슈의 가고시마현을 방문했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와 1박2일 셔틀외교를 위해서다. 회담 장소는 하쿠스이칸(白水館). 온천이 유명한 료칸형 호텔이다. 당시 일정에 ‘사우나 정상회담’이 있었다. 양국 정상은 회담 전 목욕가운을 입고 사진기자들 앞에 설 계획이었다. ‘씻고 자는’ 일본 문화의 외교적 활용이랄까. 하지만 옷 벗고 만나는 정상회담은 불발됐다. 노 대통령의 감기 기운 때문이라는 공식해명이 있었다.
안동의 한일 정상 만찬에는 안동소주 태사주와 일본 사케가 올랐다. 안동소주는 1260년부터 제조된 전통주다. 태사주 역시 1000년 역사를 자랑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일정이 있어 술 마실지 고민”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면서 “다음 셔틀외교는 일본의 온천도시에서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응수했다.
좋은 술을 권하는 것은 우리의 손님맞이 예법이겠다. 좋은 온천탕에 모시는 것은 일본식 응대겠고. 후일담이지만 노무현-고이즈미의 목욕탕 회담이 불발된 배경에 다른 해석이 있다. 일본측이 마련한 목욕가운을 펼쳐 보니 벚꽃 문양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는 거다. 그렇잖아도 까닥하면 ‘사쿠라’로 몰릴 수 있는 한일 외교가 아니던가. 벚꽃 문양 가운을 입은 사진은 두고두고 입길에 오르내릴 수 있다. 그래서 감기를 핑계로 댔을 거라는 해설이다.
여하튼 “국가 간에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했다. 1848년 영국 하원 연설에서 헨리 존 템플 총리는 “외교무대에서 의리나 감정은 사치이며 단지 국익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동맹도 적도 국익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거다. 반일정서를 무시할 수 없는 한국과 혐한정서가 짙게 깔린 일본 아닌가. 껄껄 웃는 하회탈과 미소 짓는 게이샤 마스크 이면에 외교의 냉혹한 얼굴이 가려져 있다. 서로 국익과 실용만을 노리는. 지난 정권이 표방한 ‘가치외교’는 방구석에서 외치는 정체성 외교이겠다.
한일 외교의 현안은 안보와 경제협력일 것이다. 못지 않게 역사를 직시하고 공유하는 자세도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역사 직시하고 공유하는 자세도 필요
마침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나라현에 ‘정창원’이 있다. 일본 황실의 보물창고다. 9000여점 소장품 중 백제 신라의 물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알려졌다. 궁내청 소속 ‘서릉부’는 도서와 그림을 소장한다. 여기에 신라 성덕왕 때 김대문이 저술한 화랑세기(花郎世記)가 있다는 사실이 필사본을 통해 밝혀졌다. 이밖에도 한국에 없는 고대 사료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일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또는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를 의식할 수도 있다.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했다가 영구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은 외규장각 조선의궤처럼 말이다.
현실적으로 반환은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학술차원에서 역사사료 사본이라도 공유하자고 요청하면 어떤가. 한국과 일본의 2000년 우여곡절을 학문적 양심으로 직시하면 진정으로 과거사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다음 셔틀 외교는 일본 온천탕도 좋지만 한일 고대사 공동연구의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