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 30년물 국채금리 5% 돌파의 의미
글로벌 금융시장이 금리급등과 물가 재상승이라는 복합난제에 직면했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5.17%를 돌파하며 18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고, 10년물 금리도 4.67%까지 치솟아 심리적 저항선인 5%에 근접했다. 초저금리의 상징이던 일본 역시 30년물 국채 수익률이 장중 4.2%를 넘어서며 글로벌 고금리 기조의 고착화를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벤치마크 기능을 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의 급등은 자산시장 전반의 점검을 요구하는 경고음이다.
배경에는 중동전쟁에 따른 유가급등과 인플레이션 우려의 재확산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지난달 생산자물가(PPI)는 전년 대비 6% 상승해 2022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오름세를 기록했고, 소비자물가(CPI) 역시 3.8%를 나타내며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돌았다. 연준은 20일(현지시간) 공개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다수 참석 위원은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인) 2%를 지속해서 웃도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일정 수준의 통화정책 긴축이 적절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5달러에 이르고, 10년물 국채금리가 5%를 넘어설 경우 금융시장은 사실상 ‘극단적 위험’ 국면에 진입하게 된다. 인공지능(AI) 혁신 기대 속에 질주하던 증시가 최근 급격한 하방압력에 직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극단적 위험’ 구간에 진입한 글로벌 자산시장
이처럼 엄중한 시점에 제롬 파월의 뒤를 이을 케빈 워시 차기 연준 의장이 상원 인준을 통과했다. 그는 미국 현지 시간으로 5월 22일 공식 취임한다. 그러나 이번 취임식은 관례적인 연준 본부가 아닌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재로 열린다. 1987년 앨런 그린스펀 이후 39년 만의 이례적 장면은 시작부터 시장에 강한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통화정책의 핵심 가치인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워시 의장이 처한 딜레마도 만만치 않다. 그는 그동안 AI 투자 확대와 기업 생산성 향상이 물가를 안정시키고 자연스러운 금리인하 여력을 만들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왔다. 이는 경기부양을 위해 연일 금리인하를 압박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와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중동전쟁의 후폭풍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물가압력이 재차 커지면서 그의 ‘생산성 기반 물가 안정론’과 ‘절사평균 이론’은 출발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AI가 가져올 먼 미래의 생산성 혁신 속도보다 당장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초래한 공급망 충격과 원자재 가격 폭등의 속도가 훨신 빠르기 때문이다.
워시 의장의 첫 과제는 시장이 애타게 기다려온 ‘금리를 얼마나 빠르게 내릴 것인가’가 아니라 오히려 ‘다시 살아난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 트럼프 기대대로 금리를 내리자니 인플레를 자극할 위험이 크고, 고금리를 유지하자니 자신을 임명한 백악관과 충돌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제롬 파월 전 의장이 이례적으로 연준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워시 의장에게는 부담 요인이다. 매파적 통화정책과 정치적 타협 사이에서 그의 행보는 줄타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장기금리 5%가 증시 폭락의 전조인지, 아니면 AI 호황 속에서 감내 가능한 비용인지에 쏠려 있다. 지금의 가파른 금리상승이 과거의 역사처럼 증시 대폭락을 유발할지, 아니면 AI 기술 진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에 따른 일시적 진통일지의 갈림길이다. 시장의 분위기는 현재의 고금리가 즉각적 붕괴신호라기보다 과잉 유동성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경고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겉만 혁신으로 치장한 기업과 경쟁력 가진 기업 선별될 것
“물이 빠지고 나서야 누가 벌거벗고 수영했는지 드러난다”는 워런 버핏의 말은 지금의 시장 상황을 정확히 설명한다. 반도체와 대형 기술주들이 압도적인 실적과 현금 창출 능력으로 고금리 비용을 상쇄해낸다면 자본은 다시 이들 중심으로 결집할 수 있다. 결국 5% 이상의 자본 비용을 감당하고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기업만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뚜렷한 실적 없이 미래 기대와 AI 테마에만 의존해온 부실 성장주, 그리고 저금리 시대의 과도한 부채에 기대 연명해온 기업들에게 지금의 고금리는 이미 잔인한 심판이 되고 있다. 유동성 잔치가 끝나고 자본비용이 정상화되는 시대 시장은 이제 겉만 혁신으로 치장한 기업과 진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냉혹하게 가려내는 선별자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안찬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