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급부상, 트럼프 불확실성 … 아시아 군비경쟁 불붙는다
FT "호주 역사상 최대 군비지출 … 군수업체들 호주행 러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26일자 보도에 따르면 세계적 규모의 군수업체들이 향후 10년 간 1470억달러(약 164조5000억원)를 들여 최첨단 무기와 장비를 획득하겠다는 호주 정부의 계획에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고 있다. 이는 호주 역사상 최대 규모 국방조달예산이다. 군수업체들은 정치인과 국방조달 관련 군 장성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수천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현지 사업소를 새로 만들고 있다. 호주 정부의 목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최고의 군대를 육성해 세계 10대 무기 수출국이 되겠다는 것. 현재 호주의 순위는 19위다.
호주 방위산업장관인 크리스토퍼 파인은 FT에 "현재는 수십년 만에 가장 불안정한 시기"라며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긴장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 10년 간 국방력을 현대화하는가 하면 영유권 분쟁이 있는 아시아 해양에서 영유권 입장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관련국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태지역에서 군비 경쟁이 확산되면 무력충돌 가능성이 커진다고 경고한다.
영국 레스터대학 교수인 제임스 존슨은 FT에 "빠르게 커지는 중국의 군사 경제 전략적 파워가 아태 지역에 공포와 불확실성을 드리우고 있다"며 "최근 이 지역의 국가들이 국방 현대화에 관심을 높이는 주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군비 확대의 규모와 추세를 볼 때 새롭고 불안정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연간 국방비 총액은 약 4500억달러로, 2000년대초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이 가운데 중국 국방예산이 2076억달러다. 호주 국방백서에 따르면 오는 2035년 전 세계 잠수함 절반이 인도양과 서태평양 해역을 오간다. 영국 군사정보 전문업체 IHS제인스는 "아태지역이 2029년이면 현재 세계 최대 국방비 지출 권역인 북미주를 앞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 일조한 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좌충우돌 외교다. 국제적 협약에서 잇따라 발을 빼는가 하면 유럽 동맹국에 국방비 지출을 더 늘리라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는 서방세계의 오랜 적국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나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는 온건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호주의 국방력 강화는 전통적 우방에 대한 재평가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호주는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ASEAN) 국가는 물론 일본이나 인도 등 지역 강국들과도 정치적, 군사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점증하는 경제적, 군사적 파워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호주국립대 전략연구학 교수인 휴 화이트는 "아태 지역 동맹국들은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이 말만 있고 행동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으며,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을 방어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저버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이트 교수는 "아태 국가들의 군비 증대 흐름이 계속 고조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건 섣부르다"면서도 "국방력에 대한 근본적 재평가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이전엔 생각도 못했던 것, 예를 들면 핵억지력 개발 등과 같은 구상이 다시 고려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많은 서구, 아시아 국가들이 국방지출을 줄였다. 반면 강한 회복탄력성을 보인 중국은 지속적으로 국방예산을 늘렸다. 한편 IHS제인스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은 전년 대비 3.3% 늘어 1조700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10년 만에 최대폭 상승이다.
국방비 증가는 다양한 이유를 배경으로 한다. 일단 전 세계 경제가 동반 상승했다. 동유럽과 아태 지역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국방비 대폭 증대를 공약하고 동시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에게 미국처럼 국방비를 늘리라고 요구하는 트럼프가 당선됐다.
미국은 2019년 7170억달러의 국방비를 책정했다. 전년대비 8% 늘렸다. 2011년 이후 최고액이기도 하다. 중국의 국방비는 올해 2076억달러에 달한다. 국방비 지출 세계 2위 위치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인공지능에서부터 항공모함 공격 미사일, 드론부대 등 첨단무기 투자를 크게 늘렸다.
아태 국가 전반적으로 지난 수년 동안 중국의 거대한 힘,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불가 행동으로 이전에 국방지출 늘리기에 회의적이던 나라, 이를테면 일본 등도 군사력 현대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은 5조1900억엔의 국방 지출계획을 짰다. 일본 국방비는 여전히 국내총생산(GDP)의 1%를 밑돈다. 하지만 F35 스텔스 전투기에 장착하는 순항미사일을 구매하면서 처음으로 북한과 중국의 육해상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대북 핵억지력을 갖춰야 하느냐'를 놓고 공개적 토론이 벌어졌다. 2017년 9월 캘럽코리아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5명 가운데 3명은 핵억지력 건설에 찬성했다. 반면 보도채널 YTN이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8%가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데 찬성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 아래서 핵억지력을 갖추는 문제는 논의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하지만 북미 핵협상이 좌초한다면 야당을 중심으로 핵억지력 논의는 다시 불붙을 개연성이 크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선임 연구원인 시몬 베제만은 "5년 전, 10년 전에 비해 전 세계적으로 군사적 옵션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반적 인식이 높아졌다"며 "그만큼 불안정성과 위협이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오랜 격언을 떠올리게 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베제만 연구원은 "군비지출의 증대가 실제 '무기 경쟁'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무기 경쟁은 각국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대응-맞대응하며 일어난다. 그는 "대다수 나라들의 군비 지출은 경제성장률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며 "각 국가의 GDP 대비 국방비가 냉전 시대만큼 높은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호주 2016년 국방백서에는 2000억달러에 달하는 획득 예정 물자가 나열돼 있다. 수많은 군사장비 중 무장 드론 부대를 처음 도입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 7월 호주는 BAE시스템즈로부터 9대의 구축함을 주문했다. 2040년대 말까지 호주가 자력으로 해군에 54대의 군함을 만들어 인도하겠다는 '구축함 건조-수출 프로그램'의 계획의 일환이다. 이는 신임 호주 정부의 일자리 창출 산업전략이기도 하다. 이 구축함에는 최신형 무기 시스템이 장착된다. 잠수함을 공격하기 위한 스텔스 기능도 갖췄다. 아태 해역을 잠행하는 잠수함의 식별과 대처는 호주를 비롯한 이 지역 국가들의 주요 전략적 도전과제다.
호주 정부는 2012년 GDP의 1.6% 수준에 그친 국방비를 2020~2021년 2%까지 올리기로 했다. 파인 방위산업장관은 "세계 역사는 국가안보를 지키려면 먼저 스스로 강해져야 함을 우리에게 알려준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은 호주의 군사 정치 엘리트에게 충격이었다. 트럼프가 NATO의 미래에 회의적인 데다 동맹국에 대한 약속을 내팽개치는 것에 경악했다. 호주는 재무장은 물론 아시아에서 새로운 동맹을 찾고자 하는 결의를 다졌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의 연구원인 리처드 맥그레고르는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문제를 새로 만들었다기보다 문제의 증상을 수면 위로 드러낸 것"이라며 "아태지역의 전통적 동맹 구조는 재고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에서는 미국과 1대 1로 동맹관계를 맺는 게 전통적 양상이었다. 그같은 동맹구조의 연원은 멀리는 2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오른다. 맥그레고르는 "하지만 이제는 지역 전반을 아울러 일본과 인도 호주 등을 묶어 중국에 대항하는 방파제를 건설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2016년 오바마 행정부는 베트남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를 해제했다. 중국의 점증하는 경제적 영향력과 전략적 파워에 대응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차원에서다. 그 결과 베트남은 베트남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군함에 항구를 개방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남태평양 소국들에게 개발 원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이 지역에 2006~2016년 최소 17억달러를 투입했다.
하지만 역설적 상황이 있다. 호주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국방 예산을 늘리고 새로운 무기를 살 수 있는 동력은 다름 아닌 중국이기 때문이다. 맥그레고르는 "이 지역 대부분의 나라들은 중국의 경제성장으로부터 오는 과실을 공유하고 있다"며 "달리 말해 중국에 대항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중국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