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사-대학입학사정관, 원탁회의│② 학부모가 생각하는 수업, 평가, 기록은?
"현 입시제도로는 학생 성장과정 제대로 학생부에 기록못해"
대학, 눈에 보이는 것만 평가 … 부풀리기·셀프학생부도 숙제
입시사정관, 교사들에게 '교육과정 설계' '학생참여' 등 질문
대한민국 교육은 ‘대학입시중심교육’과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인재양성’이라는 갈등 구조를 안고 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지만 갈등의 골은 풀리지 않는다.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현장교사와 입학사정관들이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학생 성장과정을 중심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대학과 성장중심의 교육과정을 추구하는 교사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고교교사들이 입학사정관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성장의 판단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가장 중요(바람직)하게 생각하는 학생 성장의 기록형태와 분야는 무엇인지 알고 싶다” “학생의 발전가능성을 평가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교사들은 대학에서 학생성장과정을 평가하는 요소에 대해 아쉬웠던 점을 쏟아냈다. “스펙, 성적과 같은 결과가 아닌 발전가능성(과정) 중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의 성장시기와 속도가 다름을 인정해주셨으면…” “정성평가의 중요성을 인지하시고 확인해주세요” “고교 교육의 전반적인 방향이나 개별학교의 교육목표, 교육정책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을 좀 더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원탁회의에 참석한 고교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한 수업과 기록에 대한 감동 사례도 털어놨다. 자기주도적 활동의 기회가 있었을 때 창의적 문제발견과 해결력을 보여주었던 제자이야기. 사교육 도움 없이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 동아리 활동으로 성장하고 발전한 학생이야기. 조울증으로 교우관계가 힘든 학생이 적성에 맞는 활동(과학캠프)에 참여, 배움을 즐기고 자존감을 회복하고 대학에 합격한 아이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들도 고교 교사들에게 궁금증을 쏟아냈다. △고교에서 생각하는 학생 성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선생님들이 어떻게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학생을 참여시키시는지 △학생 개인의 성장 과정이나 노력에 대한 기록 부족 △자기주도적 성장과정 지원 폭 넓혀야 △학생이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도와주고, 진로에 맞는 지원시스템 부족 △학생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환경 조성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어 입학사정관들은 “학교교육 활동으로 자신의 생각에 변화가 일어났고, 이를 다양한 실천으로 연결한 학생이 인상 깊었다”며 “이를 통해 능동적으로 진로를 개척, 취업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수업과 기록을 맡은 교사와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서로의 입장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을 공감했다.
18일 두 번째 ‘원탁회의’가 그랜드힐튼서울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서울을 비롯한 인천, 강원지역 교사들이 평소 생각을 공감하고 나누는 자리다. 고교 교사와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수업과 평가, 기록의 내실화를 위한 소통과 공감의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원탁회의 덕분에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자리가 됐다며 현장소통에 전력질주 하겠다는 분위기다.
이날 두 번째 원탁회의 특징은 학부모 참여다. 평소 학부모들이 궁금해 하는 수업과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원탁회의에는 소통과 공감을 넘어 교육개혁 실패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학생성장 중심의 수업과 기록, 평가를 통해 그동안 교육개혁 실패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학교와 대학의 역할을 넘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역사회가 손을 잡고 학교문화를 바꿔나가는 꿈을 꾸고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는 게 참석 교사들의 설명이다.
◆ 진짜 학생성장은 무엇인가? = 이날 원탁회의에서는 △학생성장으로 공감하기 △학생성장을 위한 수업 평가 기록의 내실화 그 활용 △고교와 대학의 실천과 협력을 토론 주제로 삼았다.
‘교사가 생각하는 학생성장’에 대해 김세용(인천여자상업고) 교사는 “학생성장이란 학생의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어느 대학에 가는 게 아니라 무엇을 잘 하느냐의 문제”라며 “교사는 학생부에 더 많은 기록을 해야 하지만, 부풀리기나 셀프학생부 등 부정적인 걸림돌도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이어 “현 입시제도 중심 교육정책에서는 학생의 성장 과정을 제대로 기록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원탁회의 참석 교사들은 학생의 잠재 가능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해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대학이 학생들을 평가할 때 계량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주요한 요소로 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꼬집었다.
송희령(아주대) 입학사정관은 “학생성장이란 큰 의미에서 서로(고교교사와)의 생각이 같다고 말했다. 다만 대학은 선발의 기준과 인원 제한이 있어, 교사가 원하는 만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노력하는 교사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학생의 성장 기록에 대해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교사들은 수업과 기록을 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동도 전했다. 강원도 홍천여고 교사는 “건축학과를 지망했던 학생이 구제역 때문에 키우던 동물을 살처분 하는 것을 보고,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건축을 고민하면서 대학에 진학했다”며 “진로를 고민하는 깊고 폭넓은 과정을 학생부에 담았다”고 전했다.
황창호(명륜고)교사는 “고교 교육과정을 짜는 데 어려움이 많다. 문제는 입시와 분리해서 교육과정을 짤 수 없다는 점이다. 무엇을 해도 입시와 연결된다.”며 “2015개정 교육과정이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입시정책을 바꿀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석록 한국외대 입학사정관은 “학교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생활한 내용이 학생부에 기록 된다면, 그것을 통해 입사관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진정성, 열정 등도 함께 기록해 달라”고 말했다. 교사와 입사관들은 “고교 교육과정이 진정한 배움을 위한 과정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공감했다.
토론자들은 평가에 대한 종합적 의견으로 “배운 지식을 가치 있게 활용하여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살피고, 학생 한명 한명의 모습을 깊고 정확하게 평가하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토론에 참석한 김성근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개정교육과정을 통해 교실혁신을 추구하고 있지만, 여전치 입시중심에서 교육과정이 왜곡되고 있다”며 “그럼에도 고교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탁회의는 교육부가 주최하고 시도교육청과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한다. 특히 현장 교사 630여명이 참여하며 충분한 소통을 위해 전국 6개 권역 주요도시를 찾아다닌다. 경기도(4.4) 서울(4.18) 대전(4.30) 대구(5.10) 부산(5.22) 광주(5.30) 순으로 열린다.
이날 유은혜 부총리는 영상을 통해 “교육은 속도보다 방향성이 중요하다. 교육부는 학교생활기록부 개선으로 학교교육활동의 충실한 결과물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성장과 발달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교사들과, 학생을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의 다양한 의견이 소통하고 공감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좌담회 참석자(7명)
김성근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 김세용 인천여상 교사, 송희령 아주대 입학사정관, 이병헌 서울국제고교사, 이석록 한국외대 입학사정관, 이효재 관악고 학부모, 황창호 강릉명륜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