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사-대학입학사정관, 원탁회의│③ 교사들이 생각하는 수업, 평가, 기록은?
"고교 교육과정, 진정한 배움을 위한 시간으로 바뀌어야"
교사-입사관 '학생성장 중심' 기록·평가 주문 … "대학은 평가 내면적 요소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대한민국 교육은 ‘대학입시중심교육’과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인재양성’이라는 갈등 구조를 안고 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지만 갈등의 골은 풀리지 않는다.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현장교사와 입학사정관들이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학생 성장과정을 중심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대학과 학생 성장 중심의 교육과정을 추구하는 교사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고교 3년간 폭풍 성장한 학생의 생활과정을 생기부에 충분히 담을 수 있을까요?” “이런 학생들의 수업과 기록,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교사로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원탁회의에 참석한 충남 특성화고 A교사가 성장과 판단기준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지난달 30일 세 번째 원탁토의가 열렸다. 대전을 비롯한 충청지역 교사 80여명과 시도교육청 담당자, 지역 대학에서 참여한 입학사정관 30여명도 토론을 이어갔다. 학생들을 위한 기록과 평가방안을 핵심 주제로 삼았다. 수도권과 달리 시도지역 교사들은 학생 기록과 평가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앞서 충남 특성화고 A 교사가 학생 성장과정을 발표했다. 최정은(가명)양은 중학교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보호기관에서 특별한 보살핌과 교육을 받았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특성화고에 입학했다. 보호기관 담임교사는 최 양에 대한 기록과 활동과정을 특성화고 교사에게 자세히 인계했다. “무한 가능성이 있으니 꼼꼼하게 보살피고 도와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특성화고 교사들은 최 양에 대해 적성검사와 맞춤형 진로교육을 진행했다. 책상에 엎드려 자던 최 양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1학년 때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3개나 취득했다. 이를 계기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학과 수업, 교육관계, 출석 등 학교생활이 크게 개선됐고 반장까지 맡았다. 스스로 지역 금융기관 공채모집에 응모 준비를 하더니 합격통지서를 손에 쥐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최 양은 고교에서 공부한 전공을 찾아 나섰고, 올해 국립대학에 합격했다. 교사들은 “최 양의 학교생활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생기부에 남긴 기록이 입학사정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회고했다. 교사들은 최 양의 학교생활을 어디까지 진단하고 어떤 내용을 생기부에 기록했을까.
◆교사, 학생한테 배우는 시간 = 토의에 참석한 교사가 “학생 생활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거꾸로 배움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고 말해 토론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성적하락이 있었던 반장 여학생이 복도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성적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중간고사 2주전 극단적 선택을 해 세상을 떠난 친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울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 성장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학생을 통해 배우게 된 계기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사들은 개별학생의 성장을 위한 수업과 평가를 소신껏 기록할 수 있는 실천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나눴다.
이날 학생 성장을 위해 교사가 실천할 수 있는 ‘수업-평가-기록’에 대한 의견과, 입학사정관의 관점에서 바라본 ‘수업-평가-기록’의 모습과 활용에 대한 입장이 모아졌다.
우선 교사들은 “교사의 올바른 평가권이 부여되는 교육환경 조성과 교사의 교육적 양심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이어 △학급당 인원에 대한 고민과 대안 △학생 개개인의 능력을 이끌어내고 성장할 수 있는 참여수업 방법 △학생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특이 사항을 메모하여 평가하기 △성취기준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 △학생활동중심의 교수·학습을 통한 충실한 기록 △학생은 주도적, 교사는 자율성을 보장하는 움직임이 살아있는 교실 조성 △진로가 반영된 학생 중심수업을 진행하고, 보고서나 발표를 통해 개인의 성장과정 평가와 기록하기 △학생의 개별화된 성장 기록과 평가과정에서 자율성 확보 △수업이 바뀌어야 알찬 평가와 기록 가능 △수업 변화의 방향은 나눔과 인성 중심으로 설정 등을 제안했다.
교사들은 “학생중심 활동 수업, 과정중심 평가와 기록이, 수능이라는 제도 속에서 부담으로 작용하며 발목을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입학사정관들도 의견을 쏟아냈다. 입사관들은 △교육과정 중심의 학생부 기재 △학생 개인에 관한 공정하고 정확한 기록 △활동을 통해 발전한 구체적인 모습과 개인적인 특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기재 △학생의 다면적인 자질을 파악하기 위해 개인의 스토리를 반영하는 내부 절차 강화 △고교교육 현실과 학생 성장을 고려한 평가의 신뢰성 확보 △교사별 기록 역량 차이 극복을 위해 학생부 특정항목의 개조식 작성 필요 △수업과정을 통한 기록의 구체화 및 차별화 △학교 교육 및 생활의 성실성 평가 등을 주문했다. 이어 입사관들은 “대학은 고교에서 작성한 학생부를 100% 신뢰한다”며 “아이들을 가르친 선생님들이 평가의 주체”라고 신뢰관계를 강조했다.
학생 성장 지원을 위해 학교와 대학의 협력과 역할도 주문했다.
교사들은 △학교는 제대로 된 ‘관찰과 기록’을, 대학은 공정한 ‘분석과 평가’ △고교-대학 간 원활한 소통의 장을 수시로 마련 △대학의 학과 특성 및 대학 생활에 대한 적극적인 안내와 지원 △△꿈을 찾는 진로교육, 인성교육, 학생 중심 수업 등을 추진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입사관들은 대학은 고교 수업(진로)에 대한 지원과, 투명한 입학 정보 제공을 제시했다. 대학은 스스로 평가 역량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교에서도 학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작성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고교-대학간 소통과 연계를 통해 기록자와 평가자가 눈높이를 맞춰나가자고 제안했다. 학생 성장을 위해 다양한 고교-대학 연계프로그램 운영도 제시했다.
◆ 고교-대학-사회 간 불신 해소 시급 = 토론과정에서 교사들은 ‘교사의 변화만을 요구하는 것 아닌가?’라며 교육부의 책임 있는 답변도 요구했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업무경감(교사)이 필요하다는 의견임을 잘 알고 있다”며 “수업, 평가, 기록, 생활지도를 잘할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차관은 고교 교장 경험을 토대로 답변에 나섰다. “교무행정보조 확대와, 담임교사는 업무를 제외하는 계획을 설계했다”며 시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의 관심과 노력을 당부했다.
정찬필 미래교실 네트워크 사무총장은 “교사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다른 교사들과 공감하는 ‘21세기 교육혁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대학도 학생 평가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기업도 갈수록 블라인드 채용 방식으로 간다. 그러나 대학이 만든 데이터를 기업이 신뢰하지 않고, 대학은 고교가 만든 데이터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안으로 대학에서는 평가의 내면적 요소를 실질적으로 안내할 수 있는 시스템 보완 프로그램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송경훈 김해 분성고 교사는 “그동안 실패를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수업 설계 시부터 미리 창의력, 발표력 등을 적어놓고 체크하는 방식으로 기록하는데 교사의 물리적 한계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가 수업, 평가, 과정을 기록하는데 이것만으로 대학에 보낼 수 있을까 우려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기록과 평가 과정에서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학생의 발전된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학생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고교와 대학이 실천하고 협력해야 할 중요한 과제’에 대해 좌담회를 마무리 했다. 박 차관은 “이번 토론회가 의미가 있다면 지속가능하도록 시도교육청에 건의해 주시기 바란다”며 “생활기록부 기재요령 책이 두꺼운 이유는 고교, 대학, 사회 간 불신의 원인이라 생각한다. 고교와 대학의 신뢰가 쌓여야 하고, 교육부는 신뢰를 구축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좌담회 참석자
이지형(한국전자통신책임연구원)
정찬필(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
송경훈(김해 분성고교 교사)
고유빈(대전시교육청 중등과장)
박혜숙(충남도교육청 교육과정 과장)
이석록(한국외대 입학사정관)
남부호(대전교육청 부교육감)
박백범(교육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