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 금융회사에 배상책임 물린다

2020-06-24 12:11:04 게재

금융당국, 피해분담 기준마련 '사전예방 강화' … '범죄척결' 관계부처 TF 구축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고의·중과실이 없는 한 금융회사가 원칙적으로 배상책임을 지는 방안이 추진된다. 보이스피싱을 당하면 피해금을 돌려받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점에서 피해자 구제가 강화되는 것이다.

보이스피싱의 통로로 이용되는 금융회사는 사전 예방을 위해 '이상금융거래 탐지시스템'(FDS)을 구축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24일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강조한 이후 이같은 내용의 '보이스피싱 척결 종합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금융위는 보이스피싱 피해구제와 함께 사전예방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회사의 배상책임' 카드를 꺼내들었다.

◆의견수렴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 추진 = 현행 배상제도는 금융회사가 금융거래시 고객에 대한 본인확인을 하지 않았거나 수사기관과 금융감독원의 정보제공 또는 정당한 피해구제신청이 있었음에도 지급정지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만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인정된 사례는 거의 없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 등이 금융인프라 운영기관으로서 책임을 다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피해자의 고의·중과실이 없는 한 금융회사 등이 원칙적으로 배상책임을 지는 내용의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피해자가 사기·강박에 의해 거래를 허용했고 금융회사는 FDS 구축 등으로 사전예방 노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다만 배상액 산정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될 예정이다.

금융위는 전문가 의견을 받영하기 위해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며 입법예고 과정에서 금융회사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회사 등과 이용자간에 보이스피싱 관련 피해액이 합리적으로 분담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금융회사 등은 적극적으로 보이스피싱 의심 금융거래의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금융회사와 전자금융업자는 자체적으로 FDS를 구축하고 있다. FDS는 금융거래 과정에서 금융회사가 수집하는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상금융거래를 탐지하는 시스템이다. FDS시스템을 강화하면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뿐만 아니라 전자금융사고와 정보유출 등을 사전에 방지할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현재 금융회사 등의 FDS 구축과 관련한 별도의 법제도는 마련돼 있지 않다.

금융위는 금융회사의 FDS 구축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률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함께 △신용정보원 △금융결제원 △금융보안원 △신용조회회사 등 유관기관의 모니터링도 강화된다. 금융당국은 FDS 고도화를 위해 금융권과 공동 컨소시엄을 구축할 예정이다. 은행연합회와 금융보안원 등의 운영지원을 통해 금융회사간 공동으로 신종수법 사례를 분석하고 모니터링 기법·차단기술 공유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보이스피싱 의심계좌에 대해 금융회사가 자체 판단으로 지급정지를 지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 간편송급업자 등 전자금융업자에 대해서는 지급정지 등과 관련해 보이스피싱 방지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통신서비스 원천 차단 = 과기정통부는 보이스피싱에 이용되는 통신서비스의 부정사용을 원천 차단하기로 했다. 대포폰 악용 가능성이 높은 사망자와 폐업법인, 외국인 명의의 휴대폰은 조기 정리한다. 그동안 문제 회선이 존재해도 최장 6개월까지 휴대전화가 유지됐고 단기 관광 외국인이 사용하는 휴대폰에 대해서는 사후관리가 미흡했다.

과기정통부는 본인확인 주기를 4개월로 단축하고 외국인 단기 관광객이 출국하면 즉시 회선을 정지시키기로 했다. 또한 본인확인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선불·알뜰폰에 대한 관리·점검도 강화한다. 비대면 개통시 위조가 용이한 신분증 대신 공인인증이나 신용카드 등으로 본인확인을 하고 사용기한을 넘긴 선불폰은 주기적 검증을 통해 퇴출시키기로 했다.

해외에서 걸려오는 인터넷전화를 국내전화로 허위표시하거나 일반전화를 010번호로 허위표시하는 '변작' 행위에 대한 단속도 강화한다.

주요 통신사를 통한 전화번호 변작은 크게 줄었지만 회선설비를 임대하는 영세사업자를 통한 변작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영세사업자 대상 계도 및 집중단속을 병행하고 위반 사업자에 대한 과태료를 현행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보이스피싱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은 SIM박스에 대해서는 관세청 등과의 협업을 통해 밀수 단속을 강화하고 국내에 반입된 SIM박스는 수사기관 등이 단속을 통해 제거하기로 했다. SIM박스는 다른 번호의 유심(USIM)을 최대 256개까지 꽂아 중계장치 등으로 이용하는 기계로, 추적이 곤란한 인터넷전화와 해외발신 전화를 국내번호(010)로 변조할 수 있어서 보이스피싱에 악용되고 있다.

정부는 이달말부터 금융위, 과기정통부, 방송통신위원회, 법무부, 대검찰청, 경찰청, 금융감독원, 민간업자 등과 보이스피싱 관계부처 전담 TF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정부는 보이스피싱 척결 종합방안을 반영한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을 마련해 올해말까지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경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