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전 30억원 투자받은 KAIST 대학원생 연창학씨

"지원 프로그램 많은 지금이 창업 적기"

2021-02-18 12:29:15 게재

1월 청년 실업률 9.5%로 고용위기 … 창업, 청년실업 돌파구로 주목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1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581만800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98만2000명이나 감소했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12월(-128만3000명)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취업 대신 창업으로 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연창학씨. 사진 KAIST 제공

청년층에 불어 닥친 고용한파는 더 심각하다.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9.5%로 2016년 1월(9.5%) 이후 같은 달 기준으로 가장 높다. 체감 실업률을 의미하는 확장실업률은 27.2%로 5.8%p 상승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최고치다. 확장실업률은 실업자와 더 일하고 싶어하는 취업자·잠재 구직자를 포함한 숫자다. 사실상 청년 4명 가운데 1명 이상은 실업 상태다.

청년실업이 사회문제로 부상한지도 오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하는 청년들도 꾸준히 늘고있다. 19일 오후 KAIST(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창업융합전문석사 학위를 받는 20대 청년 연창학(기술경영학부)씨도 창업을 선택한 사례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좋은 기업에 입사해야지"라는 말을 들으며 "왜 직원이 돼야 해요. 제가 회사를 만들면 안 돼요"라고 되묻곤 했다. 연씨는 포스텍(포항공과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를 졸업한 2016년 예정된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현장의 업무를 우선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 후 2년간 핀테크 회사 개발자와 IT 보안회사의 신사업기획·영업 등으로 실무경험을 쌓으며 자신감을 얻는 연씨는 본격적인 창업을 준비하다 KAIST 'K-School'을 알게돼 입학했다. 입학하고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연씨는 국내 유명 액셀러레이터, 금융기관, 대기업으로부터 2억원의 투자를 확정받았다. 이듬해 5월 그는 동기 두 명과 후배 한 명 그리고 전산학부 박사과정 학생 한 명과 의기투합해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인 '블록오디세이'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그는 중국에서 해마다 20만명 이상이 가짜 약을 먹고 사망하고 화장품 업계에서는 시장 전체가 아닌 특정 브랜드 한곳이 연간 4000억원에 달하는 위조품 피해를 입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씨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물류 과정을 추적하고 위·변조를 방지하는 '전자서명 삽입 QR코드'를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섰다.

기존 보안기술은 특수잉크·홀로그램 등을 제작해 진품에 부착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위조품을 방지하기 위해 정교하게 제작할수록 전문 감별사만이 구분할 수 있다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연씨는 소비자가 QR코드로 촬영하는 것만으로 상품의 진위를 즉석에서 파악할 수 있는 기술로 창업 1년 만에 아모레퍼시픽·LG전자·게르베 등 글로벌 기업들과 사업제휴를 맺었다. 또 국가 차원의 가품 방지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는 국가 유통 블록체인 사업을 수주해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2월 기준 블록오디세이의 누적 투자액은 30억원을 넘어섰다. 연씨가 창업을 위해 투자한 사비는 100만원 남짓의 법인 설립 비용이 전부다. 그는 "창업을 잘못하면 길거리로 나앉는다는 것은 이제 옛날얘기"라며 "정부와 투자자들이 다양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는 지금이야말로 창업하기에 최적인 시기"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학의 교육과정과 지원도 창업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든든한 지원군으로 생각한다. 2016년 국내 대학 최초로 개설된 K-School에서는 논문을 쓰지 않아도 창업 실적만으로 학위를 받을 수 있다. 연씨는 "비슷한 환경에서 창업을 공부하고 스타트업이라는 같은 꿈을 꾸는 동료를 찾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확신해 입학했다"며 "국내에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조직이 많이 있지만 이곳처럼 투자사 대표들이 직접 찾아와서 투자 가치가 있는 창업기업들을 발굴하는 곳은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졸업 이수 요건인 스타트업 현장실습을 통해 창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입주할 수 있는 스타트업 빌리지가 제공돼 인적 네트워크와 아이디어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점, 대학이 학부생을 인턴으로 채용하는 CUop 프로그램을 활용해 유능한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창업관련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다른 대학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연씨는 1000억원 이상의 기업 가치를 바탕으로 상장하는 단기 목표를 이룬 뒤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사업가로서의 비전이다. 이후 KAIST 캠퍼스에 창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공간을 조성해 후배들이 자유롭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기업가정신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KAIST(총장 신성철)는 19일 오후 2시부터 2021년도 학위수여식을 개최한다. 올 학위수여식에서는 박사 668명, 석사 1331명, 학사 713명 등 총 2712명이 학위를 받는다. 이로써 KAIST는 지난 1971년 설립 이래 박사 1만4418명을 포함해 석사 3만5531명, 학사 1만9457명 등 총 6만9388명의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배출하게 된다.

졸업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작년과 마찬가지로 온라인 중심으로 진행된다. 올해 학사과정 수석 졸업은 박현영씨(전기및전자공학부)가 차지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는다. 이사장상은 조예린씨(신소재공학과) 총장상은 김민재씨(바이오및뇌공학과), 동문회장상과 발전재단 이사장상은 각각 김경태씨(물리학과)와 정민우씨(건설및환경공학과)가 수상한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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