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만큼 유망한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2021-05-21 11:57:33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 “낡은 전기차는 미래의 새로운 원자재”


자동차 판매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급감했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전기차 판매량은 계속 늘었다. 리서치기업 ‘IHS마킷’에 따르면 2020년 전세계적으로 약 250만대의 배터리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팔렸다. IHS마킷은 올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70%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다른 리서치기업 ‘블룸버그NEF’는 2030년 길 위를 달리는 14억대의 자동차 가운데 약 8%가 전기차일 것이며, 2040년엔 이 비중이 3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이 흐름은 승용차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기화물트럭과 전기버스, 전기오토바이, 전기자전거, 전기스쿠터, 전기선박은 물론이고 전기항공기도 조만간 나올 전망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건 전기이동체의 내구연한이 끝날 때 생기는 재활용 문제다. 전기차 폐기물은 조만간 눈사태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에 따르면 가솔린이나 디젤차는 해체된 뒤 최대 95%까지 재활용될 수 있다. 재활용 기술이 자리를 잡았고, 또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일반 내연기관엔진차의 구성물 약 70%가 손쉽게 재활용할 수 있는 철을 함유하고 있다. 반면 전기차는 훨씬 다양한 재료로 구성돼 있다. 이를 분해해 분류하는 건 까다롭다. 특히 상당 비중의 구성요소가 복잡한 전자부품 내 고정돼 있다.

전기차 폐기물 추출은 노다지시장

하지만 전기차를 분해해 재활용할 수 있는 기업에겐 노다지 시장이다. 전기차는 값비싼 재료들의 보고다. 모터에 쓰이는 자석은 희토류금속으로 가득하다. 배터리엔 리튬과 코발트가 들어간다. 노르웨이 에너지 정보업체 ‘라이스타드에너지’는 전기차 제조가 늘어나면서 2020년대 말이 되면 리튬가격이 현재보다 세 배 이상 오를 것이라고 추산한다.

일반적으로 전기차 폐기물은 분류와 재가공을 거치기 전 덩어리째 해체된다.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는 불에 잘 탄다.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리튬배터리는 연소를 막는 용액이나 가스가 가득한 특수기계에서 별개로 해체된다. 이 과정에서 ‘검은덩어리’(Black Mass·블랙매스)라 불리는 게 생성된다. 이를 값비싼 부품을 뽑아내기 위한 과정에 투입한다.

여기서 두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하나는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건식제련’(pyrometallurgy)이다. 블랙매스를 하나의 광석으로 취급해 용광로에 넣어 제련한다. 금속혼합물에서 코발트 등 순수금속을 분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요한다. 또 배터리음극재인 흑연 등 값비싼 비금속 재료를 파괴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리튬을 분리하긴 어렵다. 리튬은 액체금속과 함께 생성되는 슬러그 형태로 여전히 혼합돼 있다. 별개의 과정을 통해 추출해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습식침출’(hydrometallurgy)이다. 리튬이 포함된 금속을 산이나 다른 용액에 담가 필요한 재료를 뽑아낸다. 이 방법은 에너지가 덜 든다. 또 흑연과 같은 비금속 재료를 재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습식침출은 건식제련보다 더 복잡한 과정이다. 그리고 폐수를 처리하는 추가 비용이 든다. 그러나 전반적인 이점이 커 미래의 대세 기술이 될 전망이다.

캐나다기업 ‘리사이클’(Li-Cycle)은 2016년 문을 열었다. 북미지역에서 리튬이온배터리 재활용기업 중 가장 크다. 애초부터 습식침출 기술에 투자했다. 이 기업은 전기차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배터리를 수집해 재활용하는 ‘허브-포크’(중앙처리장과 집하장) 시스템을 운영한다. 지리적으로 분산된 집하장(스포크)에서 배터리를 해체해 플라스틱과 구리·알루미늄, 그리고 블랙매스로 분류한다. 플라스틱과 구리·알루미늄 혼합물은 다른 재활용기업에게 판매한다. 블랙매스는 중앙처리장인 허브로 보내 주요 금속·비금속을 추출한다.

리사이클 최고영업책임자(CCO)인 쿠날 팰퍼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킹스턴에 소재한 허브에서 시범사업을 벌인 결과 코발트와 리튬뿐 아니라 비-리튬이온배터리의 주요 소재인 니켈을 추출할 수 있었다”며 “추출된 재료는 순도가 매우 높아 새로운 배터리를 만드는 데 즉각 활용할 수 있다. 배터리 구성요소의 95%를 재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뉴욕 로체스터에 첫번째 상용화 허브를 곧 완공할 것”이라며 “2025년까지 전세계 3개의 허브 공장을 더 지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습식침출 기술로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건 리사이클뿐 아니다. 미국 네바다주 카슨시티 소재 ‘레드우드 머티리얼즈’는 테슬라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낸 제프리 스트로벨이 2017년 창업했다. 레드우드는 건식과 습식 과정을 혼합해 사용한다. 이 기업은 일본 파나소닉과 닛산의 미국 공장에서 만들다 불량이 난 배터리를 재활용한다. 이제 일반 소비가전의 사용후 배터리를 재활용할 계획을 짜고 있다.

스웨덴 ‘노스볼트’ 역시 테슬라 경영진이었던 피터 칼슨과 파올로 세루티가 세운 회사로, 유럽 자동차시장을 겨냥해 리튬이온배터리를 만든다. 이 기업은 스웨덴 공장에 재활용 시설도 갖춰 폐배터리를 재활용한다. 배터리의 강철, 플라스틱 포장, 구리 배선은 수작업으로 제거하고 니켈과 망간, 코발트, 리튬을 습식침출로 추출한다. 노스볼트는 2030년 새로운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의 절반을 재활용 원료로 충당할 계획이다.

노스볼트처럼 생산과 재활용을 병행하면서 시너지를 추구하는 기업은 미국 네바다주 소재 ‘아메리칸 배터리 테크놀로지’다. 리튬을 채굴하고 처리하는 이 기업은 폐배터리에서 리튬과 기타 금속을 추출하는 재활용 시설을 공장 내 구축하고 있다. 여기서 추출된 리튬은 자체적으로 사용하고 다른 금속은 판매할 예정이다.

가장 큰 배터리 재활용 사업자는 중국에 있다. 전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 중국인 것을 고려하면 당연하다. 중국정부 역시 리튬이온배터리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전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인 닝더스다이(CATL)의 자회사 ‘브런프 리사이클링’은 6곳의 습식침출 재활용 시설을 갖고 있다. 브런프가 연간 재활용하는 폐배터리는 12만톤에 달한다. 중국이 현재 연간 재활용하는 배터리 양의 절반에 해당한다.

리튬의 생산과 재활용을 통합하려는 아메리칸 배터리 테크놀로지의 선구자는 전세계 최대 리튬 생산기업 중 하나인 중국 ‘강펑리튬’이다. 강펑은 장시성에 고도의 자동화 재활용 공장을 운영중이다. 또 리튬을 생산중인 멕시코 소노라주 공장에 또 다른 배터리 재활용 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전기차 유력기업 테슬라 역시 태평양을 넘나드는 야심을 갖고 있다. 이 기업은 상하이 전기차 공장에 배터리 재활용 시설을 구축중이다. 네바다주 배터리 공장에서 개발중인 시설을 보충하는 차원이다. 폭스바겐 역시 올해 1월 독일 잘츠기터시에 배터리 재활용 시범공장을 열었다. 다양한 브랜드의 전기차에 쓰였던 폐배터리에서 주요 재료들을 추출하기 위해서다.

생산시 재활용 고려하면 이점 커져

잘츠기터 재활용 시설은 폭스바겐의 브라운슈바이크 배터리공장과 아주 가깝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장은 연간 60만개 이상의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기 위해 현재 설비 확장중이다. 폭스바겐 배터리 헤드인 프랑크 블로메는 “배터리 공장과 재활용 시설을 인접하게 만든 이유는 무언가를 분해하려면 먼저 결합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재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설계하면 장기적으로 유익하다. 특히 배터리가 그렇다. BMW는 전기차 설계의 중요 목표로 재활용을 염두에 뒀다. 이 기업 이사인 프랑크 베버는 “BMW는 전기차 사업을 시작하면서 재활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엔 BMW가 2020년대 말 양산을 희망하는 전고체 리튬이온배터리도 포함된다. 전고체 배터리는 현존 전해질 배터리보다 더 많은 전하를 저장할 수 있다. 이 배터리는 전기차 1회 충전 주행거리를 2배로 늘린다. 또 화재에 취약한 전해질 배터리보다 안전하다.

하지만 전해질 배터리가 당분간 계속 사용돼야 한다면 이 역시 재활용 필요성이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전해질은 ‘리튬 헥사플루오로인산칼륨’(pf6)이다. 아직 전해질의 재활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배터리 재활용 과정에서 pf6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의 아난드 바트와 토마스 류터 팀은 특수용액을 사용해 pf6을 온전히 재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자부한다. 재활용 프로세스에 돌입하기 전의 블랙매스 상태에서 특수용액을 사용해 전해질을 먼저 추출할 수 있다는 것. 이들은 “추가적인 과정 없이도 새로운 배터리를 만드는 데 활용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호주 기업 ‘에코그래프’는 블랙매스에서 흑연을 추출해 음극재에 재활용할 정도의 순도를 갖추도록 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한국 제1의 배터리 재활용기업인 ‘성일하이테크’도 이 방법을 적용한 재활용 시설을 군산에 구축하고 있다. 과거 성일의 주요 사업은 플라스마 TV스크린을 재활용하는 것이었다. TV화면은 요즘 LED 버전으로 대체됐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플라스마 TV는 지나간 열풍이 됐다. 하지만 전기차는 계속 구르고 구를 것”이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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